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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7) 염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13 조회수937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5월13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ㅡ사도행전25,13ㄴ-21;요한21,15-19ㅡ

 

              염려

                     이순의

 

어제밤에 어느 카페에서

 

 

 

 

 

최근에 아는 분께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인사(人死)사고가 발생을 하였다. 현장에서 형사적 책임이 발동을 하고, 말 한마디 들어보지도 못하고 유치장에 갖히게 되셔서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격는 당혹감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 소리를 들은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아이가 형사적 처벌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물어오는 것이었다. 어떤경우에는 현장에서 체포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하여 이것 저것 알고 싶은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생명에 가해가 된 모든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현장 체포이며, 생명에 관계가 없는 행위라도 누군가 내 시야의 반경안에서 목격되는 범죄 행위를 하고 있을 때는 즉시 체포할 수 있다고 말을 해 주었다. 그렇다면 교통사고도 살인죄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 또는 호적에 빨간줄이 그어지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엄마가 무슨 법률 자문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은 엄마가 만물박사인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식이 물어오면 아는 만큼은, 또 윤리적 이해 만큼은 답변을 해 주어야 하지를 않겠는가?! 일단은 가해행위가 이루어졌고, 그 행위로 인하여 국가가 실시하는 법률적 심판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하며, 크든 작든 형을 받았다는 것은 서류적으로도 기록이 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교통사고에 한해서는 심판의 형량보다는 시각의 차이가 관대하다고 말해 주었다.

 

도둑질이나 사기꾼 같은 가해행위는 교통사고 보다는 사고의 깊이나 피해 사실이 작을 수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고의성에서 전혀 다르게 평가 된다. 교통사고는 가해할 마음의 고의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사기꾼이나 도둑놈은 그 행위를 실현하기 위해서 계획하고 음모를 짜서 실행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량이 낮은 사기꾼이나 도둑놈이 형량이 높은 교통사고 가해자 보다 사회로 부터 홀대 받는 경우는 더 확실하다. 

 

아들아이는 그렇다면 본의 아니게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직장에서도 많은 차이점을 두느냐고 물어왔다. 역시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다. 물론 전혀 무사고인 사람과 사고의 경력이 있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할 것이나 고의적인 범죄행위자들에 비하여 훨신 관대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확실하다. 살인행위자들의 경우는 법정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에서 사형까지 집행이 되지만 교통사고의 경우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까지는 집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통사고라고 해도 절대로 인사사고의 책임을 너그럽게 보아주지 않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솔깃해진 아들아이는 금방 질문을 해 왔다. 그곳은 신학교이다. 신의 영역인 창조의 결과를 상하게 하는 어떠한 행위도 허용하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신학교이다. 좀 더 가혹하게 설명한다면 신학생의 경우는 정당방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의 생명을 지켜야하는 성직의 길에는 내 목숨을 지켜내기 위한 정당방위가 없어야 한다. 나 살자고 남을 해(害)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순교만이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정당방위라는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기를 살려내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라고 보아야한다. 그런데 그런 본능마저도 이탈하여 신의 이름으로 범죄의 현장을 인정하고 순교를 택해야 하는 절명한 순간은 성직자라고 해서 모두가 다 해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만큼 신학교에서는 강도있는 조건과 사명과 정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의 신학교에서는 신학생들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신품을 받은 뒤에 군대를 갔었다. 그런데 신품을 받고 군대를 갔던 그 시대에는 이 나라의 문맹율이 높았고 의식의 수준도 상당히 낮았었다. 거기에서 오는 군대식 서열의 고난은 신품이라는 가치관으로 10여년씩 훈련되어져 온 백지처럼 순결한 신부님들이 견디기에는 쉽지 않은 장소였다. 7성사 안에서 맺어지는 풀어질 수 없는 품을 어긋나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교회는 신학생때 군대를 다녀 오는 것으로 제도 변경을 한 것이다.

 

적어도 품을 지닌상태로 환속을 해야하는 부자연스러움을 탈피할 수 있었고, 신부님 보다는 신학생 당사자에게도 다른 인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생명의 관점은 교회 안에서 그렇게 절명하게 중요한 것이다. 본능에서 오는 한 번의 정열! 순간의 쾌락! 그 인간성의 나약함 조차 교회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한 번의 몇 분 또는 몇 초가 신의 섭리를 거부할 수 없는 생명의 결과라는 것에 대하여 인식해야만 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결국 성의 유혹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와 용서는 있을 수 있으나 그 유혹을 떨구지 못했을 때는 자기 몸에서 나오는 생명의 씨에 관한 자기 양심의 성찰은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신부님이 군대를 가지 않고 신학생때 군대를 가도록 제도를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시대에 사제가 환속하는 경우는 그 시절보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교회의 제도개선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시대의 유혹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노출되어지는 반면에 사제들의 심성이나 신심은 나약한 기초를 두고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성장하는 어린 사람들의 심성에 생명존중이라는 의식을 뿌리내리도록 방어막이 되어지지 않고있다. 치성을 드려 공을 쌓는 부모님네도 드물어졌으며, 서로 누비고 사는 동급생들의 관계도 그만큼 허물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방어란 제도나 사회의 흐름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아니라, 자기가 신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결단이 있을 때는 그것을 지키려는 자기 마음의 신념이 중요할 것이다. 그것의 기초는 언제나 생명이어야한다. 참생명! 이렇듯이 사회에서 실시하는 형사상의 법률적 판단보다 더 엄격한 생명 중심의 판단력을 강조하는 곳이 신학교이다.

 

요즘 시대에 사제를 지망하는 사람은 어쩌면 한 잔 술에 취하고 싶은 자유조차도 불허할 지도 모른다. 온갖 영상매체의 발달로 의식이 혼미한 신학생의 옥체가 어느날 포르노 사이트에서 현란한 구경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 책임 또한 자신의 몫이다. 시대를 방어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한다는 것은 손 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만큼도 수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신을 똑바로 세우고 하늘을 바라보자. 그 하늘 앞에 떳떳하므로 굳이 손바닥을 펴서 하늘을 가려야 하는 모순을 만들지 않도록 정진해야 할 것이다.

 

아는 사람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또 촛점은 신품을 받은 사람들의 생명론에 관하여 비중있는 대담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다 듣고 나서 아들녀석이 하는 말은

"걱정말어.

 나는 신학교에 갈 인간이 아니고 서울 대학에 갈 인간이거든.

 인물 잘났지, 학교좋지, 든든한 빽 있지, 참 공부는 보통이지?! 

 여자들은 줄을 지어섰구, 돈은 평야를 이루며, 권력은 하늘을 찌를 건데.

 엄마는 무슨 염려를 그렇게 허세요?

 더구나 나는 본능적인 인간이라서

 정당방위를 절대적이루 필요로 하는 인간이거든.

 어휴!

 더구나 순교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나이다. 오마니.

 토끼같은 새끼랑 여우같은 각시랑 지지고 볶고.....

 생각만 해도 행복헌디 워째서 머리골 땡기게 살은당가요? 오마니.

 염려 붙들어 매세요. 오마니."

 

하하하하하하!

"그려 내아들이 서울대학 갈려면 빨랑 1등 한 번 해야지.

 그놈의 성적이 말썽이다. 잉?!

 잘난 내 아들의 포부도 몰라주고 성적이란 놈이 문제다.

 모두가 내아들 탓이 아니고 성적이란 놈 탓이여. 그려!

 개구장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쩝!"

 

ㅡ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요한21,15-19ㅡ 

 

 

하늘의 뜻은 모두에게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해 주셨습니다.

예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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