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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 강림 대축일 복음묵상(2005-05-15)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15 조회수1,147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1-22)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오늘로서 50일간의 부활시기가 그 막을 내

 

리는데, 우리는 부활시기 내내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그 핵심의 알맹이가 영원한 생명임

 

을 알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의 대축제인 과월절(뻬샤

 

흐)을 부활절로, 오순절(샤부옷)을 성령강림절로 지내게되는데, 유다인들

 

에게 과월절이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물리적 해방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부활절은 예수부활을 통하여 인류가 죽음으로부터 생명에로 해방되었음

 

을 기념하는 것이고, 오순절이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야훼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한 것을 기념함으로써 율법을 통한 물리적 해방

 

의 영적인 지속을 의미한다면, 성령강림절은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시는

 

협조자이시며 진리이신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로 마련된 영원한 생

 

명을 깨닫고, 선포하며, 실제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강림대축일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으로서

 

성령을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

 

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부활의 완성이며 충만입니다. 성령강림은 부활

 

절의 열매로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비록 승천하여 오셨던 곳으로 가셨으

 

나, 약속대로(마태 28,20) 예수께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무는 지속적 현

 

존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은 부활시기의 마무리를 고

 

하는 사건이 아니라 진정한 부활의 시작을 의미하는 사건이며, 진정한 의

 

미에서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은지 사흘만의 부활과 발현, 40일간 지상체류와 승천사건은

 

아무래도 스승 예수의 산 증인들인 제자단(11제자와 여인 제자들)에 한정

 

된 효과적인 사건입니다. 이들은 단지 몇 명으로 조직된 소수의 집단이었

 

고, 스승의 죽음에 직면한 집단의 태도는 차라리 조직이라 할 수 없을 정

 

도였습니다. 그들은 승천하시는 스승으로부터 지상 최대의 복음선포와 세

 

상으로의 파견을 명령받았습니다.(마르 16,14-20; 마태 28,18-20) 마르코

 

복음은 예수의 승천직후 제자들이 사방으로 나가 복음을 전했다(16,20)고

 

하나 이 대목은 후기 편집에 해당하고, 당시의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사명

 

을 수행할 능력과 용기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어쩌면 루가복음의 기록

 

대로 제자들은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

 

라"(24,49)는 스승의 명을 따라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24,53)과 하늘의 능력을 기다리는 일로 소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이 되었을 때, 한곳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렸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의 은사로 가득 차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밖으로 뛰쳐나가 여러 가지 외국어를 구사하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

 

고(사도 2,1-11), 성령을 듬뿍 받은 사도 베드로는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사도들이 모두 그 증인

 

이다"는 요지의 논리적인 설교를 했으며, 이 설교에 믿음을 얻은 사람들

 

중에 그 날에만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사도 2,14-42) 드디어 소수

 

의 제자단에 한정되어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강림절은 세상을 향한 교회공동체의 탄생일

 

이며, 동시에 제2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인 셈입니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의 복음은 지난 부활 제2주일에 들었던 요한복음

 

(20,19-31)의 첫 부분(20,19-23)입니다. 이 대목의 서술적 시점은 예수께

 

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던 그 다음 날이며(19절), 내용상으로는 부활하

 

신 예수의 발현과 제자들의 부활체험(20절)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이 대목

 

을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의 복음으로 선택한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불어주심"과 "파견"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발설하고 있

 

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요한 14,16; 16,7) 아버지를 통

 

하여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 하고 말씀하신 후 제자

 

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

 

라"(22절)고 하시면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23

 

절) 하고 말씀하시는데, 왜 예수께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에게 곧바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말씀 안에는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죄와 용서에 대

 

한 "자유처분권"이 엿보입니다. 물론 죄에 대하여 "단죄"와 "용서"를 선포

 

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 성령뿐이지만(16,8-11), 예수께서는 성령의 활동

 

을 제자들의 활동 안에서 보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협조자로서의 활동

 

과 진리로서의 활동을 제자들의 증거행동과 복음선포활동을 묶어 두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데, 그

 

세상은 바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배척하였으며(요한 1,10-11),

 

예수와 더불어 제자들을 미워하였고(요한 17,14), 결국에는 예수를 죽였습

 

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그러한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죽음이었

 

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그 세상에로 파견됩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가장 먼

 

저 해야 할 일은 "죄 많은 세상"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용서 없이는 복음

 

선포도 있을 수 없고, 구원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강림은 예수님을

 

죽인 세상의 죄를 용서하는 사건으로 자리잡는데, 물론 사도들이 용서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돌아가신 예수님의 영이

 

신 성령께서 사랑의 용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恩賜, 카리스마)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직과 신앙의

 

증인에로 불림을 받습니다. 이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받은 일반사제직의

 

성숙인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더욱 완전

 

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

 

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며 옹호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

 

다고 가르칩니다. 복음전파와 믿음의 수호는 신자의 의무와 책임인 동시

 

에 복음의 증인으로서 가지는 권리이며 자랑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느

 

님 성령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인데, 이는 "다시 거두어 가시지 않는(로마

 

11,29) 하느님의 선물 전체"를 뜻하기도 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지고(로마 5,15-16) 또 영원한 생명이 되는(로마 6,23) 은총의 선

 

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은총으로 충만

 

하게 하고"(에페 1,6) 우리에게 "온갖 종류의 선물을 베풀 것"(로마 8,32)입

 

니다. 이 선물들 중에 첫째가는 것은 성령 자신으로, 성령은 우리 마음 안

 

에 내려져서 우리 마음에 사랑을 심어 주게됩니다.(로마 5,5).

 

지난 '대사제의 기도'중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공동체의 일치를 바라셨

 

고,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구성원 모두의 강압적이

 

거나 획일적인 추종은 원치 않으셨는데, 즉 내가 이러하니 너도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획일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서로의 비교나

 

경쟁 등, 우열의 가림을 통한 획일적인 시도의 발상이 적지 않게 있습니

 

다. 자신의 신심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의 신심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믿음의 공동체가 각별히 경계해야 할 부분인데, 이런

 

생각으로 남을 험담하면 그것은 일치를 깨는 일이며 분열을 조장하는 일

 

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자기를 비추어 보고 그 안에서 남을

 

위해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이는 일치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어

 

떤 모양으로 살던 삶은 자신의 몫입니다. 그저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데 익숙해야 할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은 무릇 각자의 몫이겠

 

지만, 천상의 삶은 공유하는 삶입니다. 거기에는 차별도 열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에서 이미 천상의 삶을 공유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여기

 

에는 오시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이

 

시여,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불태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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