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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시간 동안 흘러내린 눈물의 의미 (신원식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16 조회수2,552 추천수12 반대(0) 신고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요한 20, 21)

 

5월 15일(일) 가톨릭 출판사에서 있었던 미사에서 예수회의 신 원식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 말씀입니다.

 

며칠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연락이 끊긴지 거의 10년이 다 되었던 분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너무 반가왔습니다. 일본에 계신분인데 한국에 오시면 식사 대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었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줄줄 흘렀습니다. 저 자신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처음에 생각나는 것은 "나도 갱년기가 시작되었는가보다."...

 

그 눈물이 왜 나는가?

그분이 어떤 분인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신학교 시절에 필리핀에 갔었습니다. 필리핀에 체류하는 중간에 시골에 2, 3 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가난하게 사는 동네였습니다. 성당이 없는 공소였는데 새로 성당을 짓기 위해 기둥을 세워 놓고 돈이 없어서 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왔다니까 일본 사람인줄 알고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일본에 가서 모금을 해 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성당이 한 두푼 드는 것도 아니지만 약속을 하였기에 지점장들, 상사 주재원들에게 일일히 찾아 다니며 모금을 하려고 하였지만 돈 많은 사람중에 아무도 도와 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한인 성당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제게 전화 한 분이 지나가다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다릅니다. 이분은 남편이 돌아가시자 일본에 와서 야간에 주방일을 하시며 힘겹게 살아가고 계신분이었습니다.

 

이 분이 지나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호스테스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거금을 모아왔습니다. 소문에 소문을 듣고 많은 분들이 모금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돈을 낸 사람들은 밑바닥에서 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결국은 필리핀의 시골에 성당을 멋지게 지었습니다. 전혀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도와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니까 되는 것입니다. 전혀 불가능한 것 같으나 되었습니다.

 

그 분이 일본의 피정집에서 피정을 하였습니다. 다른 신부님이 지도 해 주셨는데 지도 신부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피정이 끝나고 커다란 위로를 받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자매님은 아들 3 명이 속 썩이고 아주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피정이 끝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옆 사람에게 조금 스쳤는데 젊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귀싸대기를 때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감정을 억압하는 냉철한 일본 사람이 이런 행동을 보이자 순간적으로 전철안은 얼어붙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뺨을 맞았는데 조금도 무섭다거나 챙피하다거나 당황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피정이 끝나고 그 기쁨과 평화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자기도 놀랐습니다. 더 놀란 것은 그 청년이었습니다. 맞은 사람이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고 연민의 마음으로 부드럽게 너무나 편안하게 바라 보는 것입니다.

 

당황한 그 청년이 다음 역에 서자 마자 총알 같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제가 사제로 살아가면서 그분의 모습은 모범이 되고 힘이 됩니다. 눈물의 의미는 너무나 반갑고, 내가 그런 분을 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 미안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그분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송하고 미안하였습니다. 

 

저희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완덕으로 나아가는데 구체적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구체적인 힘이 되어 줍니다. 지금은 70이 다 되신 분으로 저에게는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분이었던가! 그 분을 생각하면 굉장히 위로를 받습니다.

 

2, 3 분 통화해서 1시간동안 울게 만드는 것, 대단한 능력입니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신부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발가 벗기어 두드려 맞고 아버지를 원수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아버지를 안아주고 화해를 합니다.

 

온 집안이 죽이니 살리니, 친가쪽으로 외가쪽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한 사람이 영적인 체험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자 온 집안이 변화 되었습니다. 서로 싸우던 이모와 삼촌이 화해하고 이것이 연쇄반응처럼 일어났습니다.

 

모든 경우에 시작은 똑같습니다. 문제는 관계에서 일어나는데, 내 안에 평화가 주어지면 한 사람이 진짜 평화를 체험하면 그 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전파됩니다.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끊임 없이 따라옵니다. 이 때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집착하고 촛점을 맞추지만 제 체험으로는 100이면 100 안 됩니다.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이 주시는 주시는 평화, 성령을 우리 마음 안에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내 안에 자리 잡으면 다 해결됩니다.

 

우리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하느님께 온 마음을 드리고 끊임 없이 하느님께로 가고 예수님께로  갈 때 해결됩니다.

 

금방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끝이 없습니다. 깊은 하느님의 평화가 내 안에 주어질 때 성령께서 자리 잡을 때 해결됩니다.

 

끊임 없이 하느님께 가고, 하느님께 봉사하고, 하느님의 뜻을 끊임 없이 알아듣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해야합니다. 그 평화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평화는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갑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고통이 없는 편안함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고통과 불편함이 있어도 편안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내가 신앙적으로 어린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적으로 어른이 되면 늘 편안합니다.

 

2000년전 제자들도 예수님의 수난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도 그랬습니다. 40 일이 지나고 제자들이 마음을 열고 성령을 받아들였을 때 모든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성령을 받고, 기쁨이 넘치고 죽음도 두렵지 않고, 모든 사람이 일치하게 되어 커뮤니케이션이 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분열이 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것은 일치입니다. 말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성령을 받아들이려면 내가 쥐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주십니다. 간절히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훨씬 재미있으니까... 성령을 모시게 되면 그런 것은 저절로 놓게 됩니다.

 

정말로 내가 성령을 원하는가? 우리의 일반적인 반응은 "원한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재미있는 것을 조금 더 하고."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평화를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말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그런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도 제자들이 체험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증거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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