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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20 조회수1,697 추천수13 반대(0) 신고
5월 20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마르코 10장 1-12절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요즘 결혼식이 참 많습니다. 이곳저곳 축의금 나갈 곳이 유난히 많은 달입니다. 저도 내일 결혼식을 주례하게 되는데, 결혼할 부부에게 무얼 선물해주면 가장 좋을까 고민하다가 반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혼인예식 때 신랑신부들이 읽게 되는 ‘혼인서약문’, 간단한 한 문장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찡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문장과 함께 간단한 제 부탁(앞으로 결혼생활 해나가면서 매일 한 번씩 그 서약문을 읽을 것)을 A4지에 썼습니다. 그것을 코팅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놓도록 당부했습니다.


“나(아무)는 당신을 내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주님 안에 혼인서약을 맺은 세상의 모든 부부들께서 매일 아침 이 서약문을 한번 씩 읽으며 매일 혼인을 갱신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즐거울 때, 성할 때, 일이 잘 풀릴 때, 잘 나갈 때만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의를 지킬 것이 아니라, 괴로울 때, 병들었을 때, 죽어갈 때도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의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면 좋겠습니다.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심각한 병으로 오랜 기간 병석에 누워있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수발하고 있는 한 남편을 바라보며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3년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병이 오래 가고 깊어지면서 간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지칩니다. 짜증도 납니다.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오랜 병고로 인한 주변 사람들이 괴로움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감님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계속되는 병수발을 하느라 영감님은 다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내의 짜증을 그저 조용한 미소로 수용합니다. 마치 갓난아기 대하듯 조심스럽게 부인을 달랩니다.


결혼서약문의 다짐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영감님의 삶을 보면서 참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해서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 시대 당시 ‘이혼장’이 악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신명기 24장 1-4절에 근거한 것이지요. 거기 제시된 율법에 따르면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쫒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야만 했습니다. 이 이혼장을 손에 쥔 여인은 전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장은 또한 재혼을 위해 필요한 서류였습니다.


모세는 너무도 문란한 결혼생활, 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이혼장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지만, 유대인들은 이 관습을 남용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이 관습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혼장은 점점 더 남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수치스런 일’이란 원래 아내의 불륜만을 지칭했지만, 후에는 그에 대한 적용이 더 확대되었습니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는 아내, 남편과 말다툼 하는 아내, 친척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아내, 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한 아내, 다른 남자와 말을 하는 아내, 고기를 지나치게 바싹 구운 아내, 국을 끓였는데, 간을 제대로 못 맞춘 아내, 가정사를 남에게 퍼트린 아내 등, 별의 별 이유를 들어 아내를 내쫒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혼장의 악용이 만연하는 가운데, 바리사이파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고 반문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합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


이혼장은 유다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고집 센 기질, 굳어진 마음, 문란한 생활, 끝도 없는 타락 때문에 겨우 예외를 허락해 준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입법자로서의 모세는 당연히 이혼을 금하는 법령을 제정하고 일관되게 밀고나갔어야 했는데, 히브리 민족의 윤리적 타락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숱한 이혼들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혼율을 보면, 또 이혼하는 행태들을 바라보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결혼생활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예외적인 규정을 정해 이혼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혼인은 성사입니다. 하느님 안에 이루어진 거룩한 계약입니다. 그저 한번 살아보고, 아니면 말지, 널린 게 사람인데 할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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