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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묵상(2005-05-22)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22 조회수915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 16)

 

우리는 지난 주일 성령강림대축일을 기념함으로써 50일간의 부활시기를

 

마감하면서 교회는 한 해의 전례주년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경축하였습니다. 교회는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와 성령 강림절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과 성자의 강

 

생과 부활을 통한 실제적 구원성취,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한 구원은총의

 

배분과 그 효과를 실제 눈으로 보듯 체험합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

 

령, 각 위격의 고유한 업적을 시기적으로 기념한 교회는 오늘 인류구원업

 

적의 총체적 주체이신 하나이신 하느님과, 그러나 동시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고유한 각 위격의 일치를 고백하는데, 즉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고백

 

하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성령을 선물로 받은 교회

 

가 부활시기를 마치고 연중시기를 속계하는 첫 주일에 삼위일체의 하느님

 

을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합리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란 믿을 교리로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로 성령강림 대축일 후 첫

 

번째 주일에 지켜지는데, 4세기경 삼위일체 이단설을 주장하던 아리우스

 

파에 대한 교회의 반박에 그 기원이 있으며, 리에즈의 주교 스테파노에 의

 

하여 주장되었습니다. 이는 특히 영국에서 널리 지켜졌는데 이는, 성령강

 

림 대축일 후 첫 일요일에 캔터베리 대주교로 축성된 성 토마스 베케트가

 

바로 그 날을 영국에서 삼위일체를 기념하는 축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334년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이날이 교회

 

에 도입되어, 1910년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대축일로 선포되었고, 전

 

세계 모든 교회가 의무적으로 이날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이 논하는 하느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 de Deo uno et trino)의

 

신비는 겉으로 보기에 한 분이신 하느님은 그 안에 세 개의 위격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인데, 철학적 신론의 성과는 존재하는 모든 것 중 최고의 절대

 

자가 필히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 존재가 바로 하느님으로서 유일신, 즉

 

유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신학적 신론은 철학적 신론의 성과인 유일신

 

을 바탕으로 삼위격의 하느님을 피력하였습니다. 하나이신 하느님에 대한

 

삼위격적 고찰은 순전히 예수님 덕분인데, 육화된 말씀이신 예수께서 하

 

느님 내적 생명의 원리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삼위격적 하느님

 

에 대한 계시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값을 치러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대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을 잘 묵상하여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계시된 삼위일체를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구

 

원경륜적 삼위일체"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구약성서)과 실행, 사람

 

이 되신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성취, 성령을 통한 구원은총의 배

 

분과 효과라는 전체적인 구원경륜(oeconomia salutis)의 역사를 통하여 계

 

시된 셈입니다. 구원경륜의 총체적인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히 계셨던 바로 그 하느님과 같

 

은 분입니다. 이 대목에서 신학적 신론은 "내재적 삼위일체"를 언급하는

 

데, 내재적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원초적이고 본성적인 내적 삶의 구조이

 

고, 따라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는 곧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

 

일체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같습니다.(칼 라너)


 

오늘 복음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중에 인간 구원의 복음이 잘 요약된 구절

 

입니다. 즉,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

 

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16절) 이 말씀은 모든 복음서와 성서 말씀의 요약이며, 결론입니

 

다. 요한은 자신의 서간에서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는데(1요한 4,9-

 

16), 세상의 구원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졌

 

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게 되는 동기는 바

 

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구원의 방법으

 

로 하느님은 '외아들을 보내주시고',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목적은 곧, '그

 

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

 

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자기 외아들까지 보내어 세상을 구

 

원하려는 동기인데, 그 동기가 바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심입니다.

 

하느님께서 그토록 극진히 사랑하시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곳입니

 

다. 온갖 악과 불의, 고통과 죽음이 한데 뒤섞여 있는 곳입니다. 사실 세상

 

은 비구원적 상태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비구원적 세상에 대한 인간의 경

 

험은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자연발생적으로

 

주어지거나 툭하면 죄에 빠져 허덕이는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

 

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그러한 착각에 빠져 있다

 

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고도로 수련한 삶을 통하여 적

 

어도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

 

써 자신을 구원할 수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너나 나

 

만의 구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비구원적 상태에 빠져있는 세상의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하느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며,  세상이 벌어들인 것은 사실상 하느님의

 

분노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

 

은 사랑이시기 때문이고(1요한 4,8), 그 사랑이 세상을 창조하였기 때문이

 

며, 이 사랑이 하느님 스스로를 사람이 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만이 자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자기에

 

게 파견된 외아들을 믿는 일 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만, 이 판결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불신 그 자체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 내리는 판결입니다. 
 

사랑으로 결합되어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

 

합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

 

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모든 믿는이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느님께 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에서 평화와 기쁨속에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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