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샘  

진실에 접하다   - 스즈키 히데코 수녀님

수도원의 수련과정은 선 (禪) 수행과 공통점이 있다. 스님들이 좌선(坐禪)을 하는 것처럼

수도자들도 매일 아침 기도하고, 성서의 어느 한 구절을 묵상한다. 묵상의 주제는 그 날의

성서 말씀 가운데서 특히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을 선택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다가오면 하루 종일 그 말씀안에 머물며 그 장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의미를

생각하기도 한다.

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은 내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는 것이다. 반드시

답을 낼 필요은 없다.

 성서 말씀을 하루 종일 묵상하고 마음에 담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 문득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면 말씀은 관념의 탈을 벗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 되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하혈병으로 열두 해 동안이나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재산도 모두 날린 채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병을 고쳐 줄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아니면 달리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예수께 다가간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군중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필사적이다.

 그녀는 예수의 옷자락을 스치기만 해도 자신의 병이 나으리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손을 뻗어 그리스도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 그 순간 그녀는 그리스도의 크신

힘이 자신에게 전달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출혈이 멎었던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멈추어 서시며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다.

“나에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곁에 있던 제자는 선생님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당신께 닿을 요량으로 밀고 밀리고

있답니다.“라고 말한다.

“아니다. 나에게 손을 댄 자가 있다”하고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시자 그 여자가 “접니다”

라고 말하며 머뭇머뭇 앞으로 나선다. 그러고는 예수 앞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이유와 자신의 병이 순식간에 치유된 경위를 이야기 한다.

그리스도는 인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여인이여.”하고 부르신 다음 “네가 믿고 있는 대로

이루어졌다. 믿음이 깊은 만큼 행복하게 살아라“하고 말씀하신다.

 그 자리에서 완전히 치유된 여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루가 8장) 접시를 씻을 때나 청소를 할 때나 하루 종일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그 안에

머물면,, 성서에 나오는 장면이 선명하게 되살아 나면서 ‘이런 의미로구나’하고 한순간에

깨닫은 수가 있다. 그 여자는 어떤 심정으로 예수님으 옷자락을 스치려고 했을까. 예수께서

말을 건네셨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치유의 힘은 어떤 것일까...

그러면 마치 자신이 그사람이 되어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리고

옷자락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며 색깔, 그곳을 떠돌던 공기의 냄새까지 느낄 수가 있다.

그때 느껴지는 가슴벅찬 희열은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때는 몸도 또한 충실감으로 가득 차다. 나는 지금 진실에 접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이것은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직관이 작용하는 것이다.

성서에 접한다는 것은 이러한 발견을 쌓아 가는 것이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거기에는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실감하는 것이다.

침묵의 샘   작성 s.사도요한

하느님은 인간을 어디로 이끄시는가/스즈키 히데코/생활성서 p.3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