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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복음묵상(2005-05-24)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24 조회수1,019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르 10, 29-30)

 

오늘 복음은 어제에 이어서 추종의 자세,그리고 추종에 따른 포기와 보상

 

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여정은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

 

고, 죽음을 향한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군중과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

 

였습니다. 인생의 여정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

 

입니다. 그런데 그들은은 과연 예수님을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을까요? 당

 

신께서는 예루살렘의 골고타에서 자기 생애의 최후를 십자가 죽음으로 맞

 

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동행자도 예수와 똑같은 방법으로 십자가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동행은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나,

 

추종은 당신을 따르는 것, 즉 당신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흔히 추종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자기부정입니다.

 

자기부정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인데, 이는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친

 

구까지 미워하는 것으로 비약됩니다.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

 

다.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자기 십자가"입니다. 다른 누구의 십자가를 지

 

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추종의 기본정신인 자

 

기부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리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가

 

진 것을 모두 버리라고 해서 버릴 것을 그저 물질적인 재물이나 재산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님을 따르는데 무엇을 버려야 할 지를 곰곰

 

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명예와 권력, 고집과 아집, 이기심

 

과 욕심, 위선과 착취, 취미와 재미, 때로는 재물과 재산, 정말 아끼는 소

 

유물,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그것이 그리

 

스도의 이름을 달고 예수추종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조건 때문에 곤혹스러운 분들을 위해 가족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우선 예수님은 효도를 강조합니다.(마르 7, 10-12; 10, 19) 그러

 

나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마르 9, 20-21. 31-

 

35; 루가 11, 27-28) 즉, 혈연관계보다 추종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마르

 

1, 16-20; 루가 9, 57-60. 61-62; 12, 51-53) 그리고 가족을 떠난 제자들

 

에게 종말 축복을 약속합니다.(29-30절) 이상에서 보듯 자기부정이 인간

 

관계나 혈연관계를 부정한다기 보다는 예수추종의 필수조건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을 추종하려는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방법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부자 청년이 추종을 거부하자  베드로가 예수께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28절)라고 말씀드리자, 예수께서 말씀

 

하시는데, 공동번역 성서의 표현보다는 200주년 신약성서에서 그 뜻이 더

 

잘 드러납니다. 즉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릅니다. 나 때문에 또한 복음 때

 

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

 

으로서 그 백 배를 되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현세에서는

 

박해도 당하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되받고

 

또한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200주년 신약성서 마르

 

10, 29-30) 여기 나오는 현세와 내세의 보상은 예수께서 약속하셨다기 보

 

다는 초대교회 유랑 전도사들이 자기네 체험과 소망을 써넣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상의 시작인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라는 표현은 마르

 

코복음서에만 나오는 표현으로서 복음작가가 덧붙였을 가능성이 있습니

 

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절대로 현세의 보상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보상을 거론하실 때에는 언제고 종말의 보상을 약속하셨기 때

 

문입니다.(루가 22, 28-30; 마태 19, 28) 그래서 현세의 보상은 초대교회

 

유랑전도사들의 체험과 소망의 기록으로 보아야합니다. 즉, 그들은 여기

 

저기 전도하러 떠돌아다니면서 박해도 많이 받지만 이미 현세에서 보상도

 

많이 받습니다. 즉, 자기 집을 떠났더니 집들(교우들의 집)이 생기고, 자기

 

어머니를 떠났더니 어머니들(어머니 같은 여교우)이 생기더라. 그리고 제

 

형제자매를 버렸더니 교형자매를 얻게 되고, 자녀를 버렸더니 대자 대녀

 

를 얻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당신을 따르고 당신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의 모

 

든 것과 단호히 결별해야 합니다. 물질과 소유, 인연에 얽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아침에 당신을 따르기 위하여 물질적 삶을 떠나 반

 

대편으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을 따른다고 하면서 때로

 

는 마음은 가는데 몸은 그대로 있고, 때로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들

 

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당신을 따라 가는 도중에 우리는 조금씩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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