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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8주간 금요일 복음묵상(2005-05-27)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27 조회수812 추천수6 반대(0) 신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또 물건들을 나르느라고 성전 뜰을 질러 다니는 것도 금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마르 11, 15-17) 
 

일찍이 마르코는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서 하룻동안 하신 일을 엮은 바

 

있는데(1,21-39), 마르코복음 11장을 예루살렘에서 사흘 동안 하신 일로

 

구성합니다. 즉, 예수께서는 매일 베다니아를 출발하여 낮동안 성전에서

 

활동하신 후에 날이 저물면 베다니아로 돌아오십니다. 첫날은 베다니아에

 

서 출발하여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영광스럽게 입성하신 후에 성전을 돌

 

아보시고 돌아가십니다.(1-11절) 둘쨋날은 성밖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

 

주하시고,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낸 후에 다시 돌아가십니다.(12-19절)

 

세쨋날은 무화과나무를 지나 유대교 지도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음

 

(20-33절), 성전을 떠나 올리브산위에서 성전파괴와 이스라엘의 파국을

 

예언하십니다.(13,1-3)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내용은 자연을 상대로 한 이적사화이기에 이해

 

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 징벌에 대하여 많은 설들

 

이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동조하는 가설은 다음의 성서 구절이 참고가 됩

 

니다. "아, 답답하구나. 여름 과일을 따러 나섰다가, 포도 송이를 주우러

 

나갔다가, 먹을 만한 포도 송이 하나 얻지 못하고, 먹고 싶던 맏물 무화과

 

하나 만나지 못하듯, 이 나라에선 하느님의 은덕을 보답하는 사람 만날 수

 

없고 정직한 사람 하나 찾아 볼 수 없구나. 모두가 피에 목말라 숨어서 남

 

을 노리고 저마다 제 겨레를 잡으려고 그물을 친다."(미가 7,1-2) 또는 "내

 

말이니 잘 들어라. 이 백성 가운데 행여나 쓸 만한 자가 있는가 찾아 보았

 

지만, 포도 덩굴에 포도 송이 하나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열매 하나

 

없이 잎마저 말라 버린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시켜 불살라 버리

 

리라."(예레 8,13) 
 

열매가 없어서 저주받아 말라죽어 버린 무화과나무는 우리에게 주시는 따

 

끔한 경고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어 길손의 허기를 채워주라고

 

그 자리에 있었지만, 불행히도 잎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 만약 우

 

리의 삶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버리게 될 때, 마침

 

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말라 비틀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들에게 주어지는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열심히 살아서 우리 삶이 풍

 

성한 열매를 맺게 해야합니다. 사랑, 인내, 용서, 기쁨, 평화, 온화함과 같

 

은 열매들이 사람들의 정신적인 갈증과 허기를 채워주고, 이 세상을 더 좋

 

게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는 네 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는 사건입니

 

다.(마태 21,12-13; 마르 11,15-18; 루가 19,45-46; 요한 2,13-22) 그런데

 

공관복음서들이 이를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전하고 있

 

는 데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두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사건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발생했던

 

간에 그 내용은 같은데, 요한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공생활 서두

 

에 둠으로써 성전정화의 의미가 공생활 시작과 큰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

 

고, 공관복음은 성전정화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재촉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18절)

 

 

예수께서 열정으로 정화하시는 예루살렘성전은 이스라엘의 종교와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궤가 모셔

 

져 있었고 이는 야훼 하느님의 현존과 그들의 선민과 구원을 상징하였습

 

니다. 그러나 성전의 참된 상징은 장사꾼들의 지나친 상혼에 가려있었고,

 

그 뒤엔 제사장들의 권력과 결탁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강도의 소

 

굴'이 된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는 성전이 예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17

 

절)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전, 바로 그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56,7)고 했습니다. 더럽혀진 성전이 상인들을 쫓아내는

 

것만으로 다시 성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화는 기도로 이루어지며, 예수

 

님의 현존과 말씀을 통하여 성전은 자신의 잃어버린 거룩함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이는 적어도 예수께서 계시는 동안만은 가능하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 스스로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신약의 새로운 성전이요 하느님의

 

집이 되실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빗자루를 손에 들었습니다. 이는 유대교를 말끔히 청소하기 위

 

함입니다. 구약을 폐기하고 신약을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신약의 참된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바치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예

 

수님의 몸입니다. 신약의 성전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들의 몸입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1고린 3,17)이기 때

 

문입니다.물론 신앙의 공동체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며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성당 또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은 인

 

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전은 무

 

엇보다 기도하는 곳입니다. 기도가 없는 성당은 성전이기보다 하나의 건

 

물이 되고 맙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드렸던 기도, 예수님의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선포하셨던 말씀과 성사, 이것이 없는 성당은 하나의 건물이 되

 

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물론 신자들도 예수님처럼 자주 손에

 

빗자루를 들고 우리의 성전과 마음의 성전을 정화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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