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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좋습니다. 아버지!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5-28 조회수1,140 추천수14 반대(0) 신고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토요일-마르코 11장 27-33절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좋습니다. 아버지!>


아직도 갈 길이 먼 제 자신의 모습, 제 한계, 제 비참한 실상을 수시로 확인하며 스스로를 용납 못하는 제게 한 위대한 영적스승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더군요.


“내가 지체장애인라면 지체장애인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늘이 우중충하면 우중충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늙었다면 늙은 그대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내 주변 그대로, 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영원으로부터 내게 제시하시는 신비로운 요구이자,

내게서 응답을 기다리시는 부름이다.

거름더미 위에 주저앉아 날을 보내야 했던 욥의 눈뜨고 못 볼 처지도

하느님께로부터 온 요구였을 것이다.

<우리 아들은 소아마비입니다.>

<우리 마누라는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는 여편네올시다.>

<저는 타고난 돌대가리인걸요.>

<친구들이 도무지 날 몰라준 단 말입니다.>

이 모든 한탄이 실은 영원으로부터 나를 기다리다 드디어 내게 닥쳤고,

그래서 나는 그 처지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아닐까?

장애인 아들을 수용소에 버릴 수는 없다.

아내를 바꿔칠 수도 없는 일이다.

알콜중독에 걸린 아버지를 저주할 수도 없는 것이고,

윗사람의 멱살을 잡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를 둘러싼 상황을 받아들이며, 현실을 하느님이 제시하신 요구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서 현실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카를로 카레토, ‘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바오로딸 참조)


오늘 복음에서 성전정화를 끝낸 예수님께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정답은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한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행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면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 나오려니 기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즉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진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할 시간을 주십니다. 그들 스스로 한번 깨우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께 종속되었던 예수님, 아버지의 품을 단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었던 예수님이셨기에 가장 자유로운 삶, 거침없던 삶, 올곧은 삶을 끝까지 영위할 수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모든 일상사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는 일, 우리가 수시로 겪는 시련들 안에서 아버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 매사를 아버지와 연관시키는 일,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 일은 진정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 순간은 우리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비참한 우리 인간조건, 지루한 일상, 끝도 없는 괴로움, 그 안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현존하시며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결국 구원된다는 것은 그런 갖은 고통으로부터 탈피한다는 것이기보다는 그런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유혹 중에 큰 유혹이 내가 뭔가 한번 해보고 싶은 유혹입니다. 내 이름으로, 내 능력으로, 내 사람들과 함께 크게 한건 이뤄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내 영역을 확보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보란 듯이 내 이름을 날려보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조금이라도 뭔가 권한이 주어진다면, 역할과 책임이 주어진다면, 영역이 확보된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공동선을 위해서 쓰라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용하라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선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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