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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르시고 응답하고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04 조회수1,022 추천수7 반대(0) 신고

부르시고 응답하고

 

-그림:박항률-
 

    “나를 따라 오라!” 예수께서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오를 부르신다. 마태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주님을 따른다. 병아리는 안에서, 어미 닭은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깨뜨리며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졸탁동시(卒啄同時)’란 바로 그러한 순간일 것이다.

  

   자신을 부르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 그 부르심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오랫동안 그런 부르심을 그리워하고 기다려온 자일 것이다. 자기 처지의 비참함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껴왔던 자일 것이다. 자신의 목표가 빗나갔음을 알고 되돌아가고 싶은 원의를 품고 있는 자만이 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고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마태오도 그랬다.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던 세리. 그의 주변엔 모두 그런 사람들뿐이다. 소위 올바르다는 사람들은 그와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는 마음 깊이 병이 들고 외로움 속에 매몰되어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속마음을 나눌 사람을 절실히 그리워했다. 그런데 그분이 그를 부르셨다. 그분은 그의 집에 머물며 음식을 나누셨고 친구가 되어 주셨다. 마태오에게는 바로 그것이 치유며 구원이었다.

  

   실상 주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도 없고, 온전히 성한 사람도 없다. 다만 그것을 깨닫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의인이란 도대체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 죽고 부활하신 그분 덕택으로, 우리를 올바르다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만 믿고 그분께만 희망을 둔 아브라함이 올바르다고 인정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 약속을 믿고 바랄 뿐이다. (제2독서).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 편에서 먼저 그분을 믿고 희망을 두고 기다려온 것도 아니다. 그분은 아브람을 불러내올 때처럼, 모세에게 사명을 주실 때처럼, 수많은 예언자를 시켜 인간을 부르시고 또 기다리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분의 사랑을 아침 안개같이,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같이 허무하게 되돌려 드렸다. 그러기에 그분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오로지 그러한 당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뿐이었다(제1독서).

  

   이제 이 죄인들의 거처에 그분이 직접 찾아오셨다. 어김없이 동터 오는 새벽처럼 그는 오셨고, 단비가 내리듯 봄비가 촉촉이 뿌리듯 그렇게 오셨다(호세 6,3). 마태오를 부르셨듯이  오늘도 우리의 죄와 허물 속에서 그분은 부르신다. 우리의 못난 모습을 인정(고통)하고 그릇된 삶의 방식과의 결별(죽음)을 통해 우리의 실현(부활)을 오늘 여기서 이루라고. 이러한 부르심에 매일같이 응답하여 매순간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여정이 아닌가? 이러한 삶이 그분께 진정으로 올바르다 인정받는 삶이 아닌가?

 

   -2005. 6. 5. 연중 제10주일 복음 묵상-

 

(이번 주, 수원교구 주보에 실린 글입니다.

졸문이지만 오랜만에 여러분에게 인사겸,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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