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0주일 성서 말씀 묵상-김정수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작성자유용승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05 조회수792 추천수1 반대(0) 신고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 고마워해야 합니다!

주일 모든 말씀에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합시다!


<제1독서> “유다야,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너희 사랑은 아침 안개 같구나.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구나.”(호세 6, 4). 시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는 안타까운 질문을 주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지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호세 6,6)라고 하십니다.

<제2독서>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로마 4, 35). 우리 죄를 다 지시고 죽으셨는데 이유는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복음>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 12-13). 이 말씀에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 죄인인 인간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씻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은 회개가 하느님이 먼저 베푸시는 호의라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먼저 하느님이 우리를 어여삐 보셔야 합니다. 하느님의 호의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우리의 회개이며, 그 다음이 씻어주는 정결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시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의 호의를 받으니까 우리도 자비를 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 마음이 생기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베푸시려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먼저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것은 우리 머리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비에서 온 것이라면 결과도 예수님이 내실 것이다. 그래서 내가 회개할 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죄가 슬픔으로 드러납니다. 죄에 대한 참된 슬픔은 어떤 것입니까?

내가 가진 슬픔인데 기본적인 슬픔은 하느님께 잘못을 저지른 슬픔에서 비롯된 절망과 고통입니다. 그 슬픔 속에서 회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로 바꾸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다.”(요한 14,6)라고 하신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참 슬픔 속에서 진리로 바꾸는 과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데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회개의 은총을 말하는데 사실 회개의 은총만큼 큰 은총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2)  여기서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적지 않지만 고통이나 절망이 예방의 중요성이라고 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예방해 주시기 위해서 백신을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내 영을 너와 함께 나누니까 나의 참다운 길을 갈 때 고통이나 슬픔이라는 것이 하찮은 것으로 바꾸어지면서 내가 주는 참된 행복의 길로 인도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다릅니다. 성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나는 네게 세상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의 영원한 천상의 행복은 정말 네가 있을 자리다.”하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미래를 향해서 가는 참된 순례자적 삶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인데 그래서 오늘은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서 가기 위한 전초기지입니다. 이 전초기지에서 슬픔과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수용되면 그 다음에 어느 고통, 슬픔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난, 병 등이 지금은 어렵과 참기 힘들어 하느님께 고백하고 낫게 해달라고 빌지만 하느님이 곁에 계셔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곁에 계시면서 함께 아파해주시고 함께 고통을 받아주시는 것이 십자가의 고통에 합치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느님은 나를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버리시는 것이 지옥이지 하느님과 함께 하면 지옥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해서 시야를 조금 넓게 펴면 그런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잃어버린 자의 아름다움, 그러나 하느님으로 가득 채운 복됨을 지니므로 우리는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3)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슬퍼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슬퍼해야 할 자료로는 시시 때때로 다르게 느끼게 되지만 외로움, 돈 없음, 가난,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이 될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재물은, 외로움은 어떠하며 내가 슬퍼하는 이 마음이 어떤 것인가 물으면서 하느님의 참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하나하나 지워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가장 쓸데 있는 것,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에게 하느님이 그렇게 사랑을 베푸시는 데 호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큰 슬픔입니다. 작은 슬픔은 하느님의 마음에 비치니까 정말 사소한 것이라 느껴지더라도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이제 죄인인데도 우리를 부르러 오신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시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다는 것은 슬픔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더 많은 신부님의 말씀을 보시려면 이곳(주례본당 홈피 )을

                                                                                           클릭 하세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