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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52) 수녀님 전상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0 조회수1,014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6월10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ㅡ고린토2서4,7-15;마태오5,27-32ㅡ

 

                수녀님 전상서

                                  이순의

 

 

추운 겨울 날에

수련소앞 저수지 가에서

반쪽만 얼은 물을 바라보며 그려주신 묵상!

 

 

찬미 예수님

 

수녀님!

여기는 간밤에 시작된 비가 종일 촉촉히 고요히 오십니다.

자정 무렵에는 앞집이 소란하여 골목에 나가 보았더니

강력계 형사들이며 검정색 강력반 차량과

퍼런 경찰차들이 소란스럽고

무슨 일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공연히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요.

 

새언니께서 차를 주셨습니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상당히 단호한 결심이었을 것이라고

감히 제 수준에서 짐작하여 봅니다.

 

수녀님!

그런데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여서 왜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닌지요?

비싼걸 받았으면 기뻐야 하는데

꼭 기쁘지만은 않아요.

새언니 곁을 떠나 19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는데......

이런 내 모습에 관한 정체성의 초라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처음으로 아들을 태워주었습니다.

아이 아빠가 바빠 주민등록증을 보내줄 시간이 없어서

차량 이전을 아직 못하고 있는터라 태워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타 보고 싶어해서 태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감을 물었습니다.

<어때? 엄마가 운전하는게 근사해 보여? 신기해 보여?> 라고.

 

그런데요. 수녀님!

아들녀석의 대답이 얼마나 가슴을 아프게 하든지요?!

<엄마가 운전을 하는 것은

  면허증이 있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집에 차가 생길 줄은

  상상을 해 보지 않아서 그게 더 신기해요.>

 

수녀님!

참으로 아비 어미의 능력이 못나서

지질이도 못나서

자식도 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대하여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아빠의 능력으로, 아빠의 보람으로, 아빠의 여유로움으로

차를 사 주었다면

아들의 마음도

얼마나 홀가분한 행복이었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녀님!

아들의 가슴 한 편에도 저처럼

꼭 좋은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들의 마음에 담고 있었던 불가능한 소유가

가능해져버린 이유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이

주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기에 이런 배려를 하시는지를.....

 

수녀님!

그리고 오늘 아침에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차가 있어서 기동성이 넓어지고

 너의 학교 버스노선을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된다면

 좀 변두리로 이사를 해도 될 것 같아!

 여기 근처에서는 큰 돈이 있어야 이사가 가능하지만

 변두리로 가면 아빠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이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하느님의 목적일지도 몰라.

 외삼촌과 외숙모의 크고 선하신 배려에도  

 반드시 주님의 목적이 개입이 되셨을 것이야.

 그러니 믿고 기다려보자.>

 

수녀님!

저 사느라고 바빠서

큰오빠도 새언니도

친정엄마까지도

저희집에 오시는 것을 수 년만에 허락했습니다.

작은 언니가 아파서 문병을 오시게 되었으므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정가족들의 방문은 짐작했던 대로

가슴 아파하느라고.....

이렇게 밖에 못 살은 저는 죄송해서 가슴이 아프고

제게 주어진 인생을 어찌해 줄 수 없어서

가족들은 가족들 대로 가슴이 아프고.....

 

제게 차가 왜 필요한지는 의문이 나시겠지만

남편의 일로 인하여 야간에 시장에 나가 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사려고 했었는데.....

수 년만에 제 집에 오신 오빠는

그 자리에서 차를 사 주시겠다고.....

당연히 저는 부담스러운 호의를 거절 하였고......

그렇다면 새언니 차라도 받으라고......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

저는 오빠보다도

새언니께 짐이 되는 시누이가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었습니다.

제가 살아 본 맏며느리의 자리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해서 

새언니를 힘들게 해 드린다는 것은

동병상련의 많은 가책을 동반할 것이니까요.

더구나 아직 엄마가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라도

인생을 실패한 작은 오빠를 봐서라도

나까지 새언니께 짐은 되지 말자는 게 저의 각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언니의 신세를 물심양면으로

너무 크게 져버린 인생이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수녀님!

요 몇 일동안

차로 인하여 참으로 깊이 주님의 뜻을 찾고 있습니다.

차를 소유하려고 마음 먹었을 적에는

시장에 나가볼 요량이었는데

예측 할 수도 없었던 동생들의 불손이 터지고

19년동안 긋지 못한 선을 긋기로 남편의 결심이 선 것 같고

제가 야간에 시장에 나가야 할 일은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는 생겼고....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차를 소유할 계획은 엄두도 내지 못 하였을 텐데.....

 

작은언니가 아프고,

친정식구들이 오시게 되고,

만났으니 사노라고 벅찬 안부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일사천리로 차는 나에게 주어졌는데......

목적이었던 시장 일은 사단이 나버린 것 같고.....

 

모든 것을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가 워낙에 여러 해 동안

성당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이사갈 여유조차 없다보니

기름에 물 돌듯이, 물에 기름 돌 듯이 사는 제 모양이

처량하여서

주님께서 차를 마련하여 버스 노선 문제를 해결하시고

집 값 싼 동네로 라도 옮겨가게 하시는지는

좀 더 시간이 흘러 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수녀님!

이렇듯이 우연히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를 수용하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주님이신 그분을 떠올려 뜻에 순종할 것을,

찰라가 그분의 이루심이라고 수긍할 것을

다짐한 뒤에야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받는다는 것이 꼭 기쁨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함과

넉넉하게 살아내지 못한 면구스러움까지

동원하여 가슴이 아리는.....

 

제가 큰오빠와 새언니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운..... 

 

그래요. 수녀님!

이 또한 주님의 뜻이며 배려일 것입니다.

다만 제가 갚아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큰오빠랑 새언니께서 늘 건강하게 살으셔서

행복하시고 번성하시기를 기도해 드리는 일과

내 친가의 버팀목으로 손색없는

그 든든함에 감사드리는 은혜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깊은 상념들이 교차했던 시간들을 보내고

오늘은 제법 마음의 평정을 찾고 있습니다. 수녀님!

 

오시는 비가 달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산에 농작물을 키우던 남편이 

비가 오시지 않아 고생이 많다더니

해갈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바빴는지?

주민등록증을 보내 주어야 차량 이전을 한다는데도

그 틈을 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고생하는 사람을 기다려 줘야 하는 몫이 또한 저의 본분이겠지요?!

 

수녀님!

새언니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시합니다.

맏며느리라는 심성은 저와 같을 수 있으나

저 보다는 생경하게 다른 삶을 살아오신 터라

삶의 방식이나 가치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으실테니까요.

그러므로 더욱 새언니의 너그러움에

제 자신이 송구할 뿐입니다.

 

끝으로

저로 인하여 항상 무거운 친정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창밖에는 차분한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습니다.

강력계 라고 써진 차량의 흔적은 간데 없고

밝은 대낮의 골목에서는

<밤고구마 있어요. 오이 감자 있어요.

  굵은 양파가 3000원.........>

트럭의 바퀴소리와 녹화된 확성기 소리가 

지금 막 생존의 건재함을 알리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제 생각이 떠오를 때면

안전운전을 비는 화살기도를

팡팡팡 쏘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녀님!

 

ㅡ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고린토2서4,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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