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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55) 맞춤법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4 조회수1,227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5년6월14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ㅡ고린토2서8,1-9;마태오5,43-48ㅡ

 

       맞춤법

              이순의

 

 

묵상글을 쓰다가 보면 간혹 나를 너무나 많이 아껴주시는 마음의 벗님들께서 글의 오류에 대하여 안타까운 조언을 하실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내 자신이 면구하여 몸둘바를 모를지경에 이른다. 컴퓨터상이니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잘은 모르시겠지만 당혹스럽고 송구하여 부끄러움에 안절부절 못할 때가 많다. 작가 이외수 선생님은 문법과 맞춤법 뿐만 아니라 점 찍는 것 하나에도 원칙에서 벗어난 글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글이란 글을 쓰는 사람에 의해서 보호되고 지켜져야 할 보물이라고 여기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가치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아마도 퇴출에 감옥살이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하여! 묵상글을 쓸적에 한글 맞춤법에 놓고 작성하여 굿뉴스에 옮겨 보았더니 그게 또 잘 맞지를 않아서 굿뉴스에 직접 전화를 하여 수정을 부탁해야하고, 불편사항이 적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일히 맞춤법에 맞추려고 신경을 썼더니 이번에는 글의 맥이 끊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가방 끈이 매우 몹시 긴 사람은 아니다.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질병과 싸우느라고 공부를 많이 했다기 보다는 주로 책을 읽거나 쓰는 게 더 많은 나의 공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육신에 비하여 정신은 늘 추구하고 있었던 바가 컸으므로 그 생각들을 열거하는 게 취미가 되었고, 습관이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생활이 되어버린 것이다. 항상 내 자신의 진솔한 세계를 적어 두거나 편지를 써서 보내드리고 싶은 분에게 보내 드리는 것이 내 습작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니 특별하게 기교를 부릴 일도, 아름답게 꾸밀 일도, 규격에 맞추려고 각을 다듬을 일도 없이 그냥 써 두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늘 내 자신의 부족한 가방 끈에 대하여 확실하게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문학의 틀에 대하여 욕심을 지니지 못했으며, 작품활동에 대하여는 자신감도 용기도 없었다. 다만 시를 쓰는 친구만이 나의 글을 인정해 주었고, 안타까워했으며, 자주자주 권장사항으로 문예지에 참여해 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어디에 글을 보내야 하는지는 물론, 어떤류의 글을 어떤 방향으로 써서 응모를 해야하는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 그만큼 나는 그쪽 방면에 철저한 문외한이며, 아는 것도, 아는 사람도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럴싸한 어떠한 기술이나 솜씨는 물론, 지식이나 상식마져 갖추지 못하고 내 마음 쓰이는 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 나다. 언젠가 친구의 문학활동을 구경 삼아서 몇 차례 따라다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게 매우 몹시 불편한 자리였다.

 

내가 읽어서 알아낸 것을 빼고는 현재의 동인지나 문인들에 대하여, 또는 정보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을 다닌적이 없었으므로 문학 동기가 되어줄 지인은 전무 하였고, 그런 쪽의 수상경력에 대하여 어떠한 지식도 갖추지 못했으므로 대화 자체가 나와 어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다가 습작만 하였을 뿐, 그것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법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내가 밖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우울증 때문이었다. 일찌기 섬마을에 살을 적에 신부님께서 서울가면 문화센타 같은데 가서 조금만 배우면 대성할 글이니 꼭 그렇게 하라고! 그러나 나는 신부님의 권유를 그 자리에서 거절 하였었다. 그 이유를 5년이 지난 후에야 신부님께 서찰로 알려드렸었다. <그 때 그렇게 거부한 이유는 나는 나의 색깔을 잃기 싫었다고 해명하고 싶습니다. 빛을 보지 못하고 영원히 숨어 있을지라도 나의 진실이 아닌 기교에 물들까 봐 겁이 났고, 그 기교로 내 피요 살인 분신을 팔아 풀칠하려는 육적인 흑심을 품을까 봐 내 자신을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

 

그런데 생활이 정신세계를 따르지 못하고, 정신을 버리고 생활에 목을 매자니 건강이 뒷받침이 안되고, 나는 점점 우울해져 갔다. 주변환경은 너무나 차이가 극심한 극과 극의 상황을 조성해 갔고, 현실은 시가를 따라 살고있으나 정신은 친가를 따라서 우러르느라고 고단한..... 그래서 마음을 분산시켜 볼 요량으로 수 년동안에 걸쳐 교회가 장려하는 다양하고 질 좋은 교육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건강상의 이유로 간신히 간신히 학교를 마친 나에게는 그런 공부들이 엄청난 자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습작을 해 오던 모든 언어들이 생명이라는 옷으로 때때옷을 입기 시작했다. 신앙의 언어로 색동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때로는 교수님들의 권유를 받기도 하였지만..... 나의 현실이 일하는 짝궁의 업무를 도와 주어야하고, 또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욕심을 낼 수가 없었으며, 가장 큰 이유는 수면 부족에 늘 시달리기 때문이다. 늘 통증을 갖고 살아서인지는 모르나 잠을 자지 못할 때는 여러날을 못 자다가도, 잠이 들어버리면 몇 일이고 잠만 자는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글 쓰는 사람의 기본을 정식으로 갖추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컴퓨터가 생기고!

 

묵상방에 쓰는 글은 격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꾸지람을 듣는 곳이 아니며, 더구나 심사에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말도 안되는 문장을 옮기지는 않는다. 신부님께 드렸던 소식처럼 나의 색깔을 다른 문인이나 동인에게 맞추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오로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 나의 일상을 봉헌하면 되는......! 그런데 가끔은 묵상글을 문학적으로 호평을 해 주시느라고 사랑이 넘치는 벗님들께서 내가 갖추지 못한 이론적인 것들을 지적해 오신다. 감사하여, 송구하여, 부끄러워서, 처음 얼마 동안은 그것 때문에 엄청난 시간과 고민으로 갈등을 하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어려서 부터 해 온 일이었으므로 밤을 새서라도 쓸 수 있는데 그 글을 어떤 틀에 집어 넣는다는 것은 내가 글을 쓰는 그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었다. 결국 나를 너무도 잘 아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속 마음을 털어 놓았고, 묵상글을 그만 쓰고 싶다는 나약한 말씀을 드리고 말았다. 그런데 학교때 교지 편집을 해 본 경험도 경험이라고 그 생각이 떠 오른 것이다. <그래! 맞아! 맞춤법은 출판 할 일이 있어지면 교정하시는 분들이 하면 되고, 나는 그냥 아버지 하느님께 내 마음을 오롯히 봉헌하면 되는 것이야.>

 

그렇게 결심을 하며, 그것이 주님의 응답이라고 단호한 믿음을 갖추고 났더니 비로소 멍애에서 해방된 송아지의 마음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좋은 것을 주신 아버지께서 또 내 편이 되어주신 것이다. 나에게 사랑의 열정을 아끼지 않고 쏟아 부어 주신 벗님들께 무엇보다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긴 장문의 생활묵상글을 쓰므로 맞춤법의 섬세함 보다 글의 영감에서 연결 되어지는 문장의 흐름에 바퀴를 달고 약 세 시간 여의 고속 질주를 하고있다. 중간에 작은 돌맹이 하나가 발견되어 그 돌맹이를 치우려고 멈추다 보니 글은 글대로 탄력성을 잃게 되고......

 

그냥 그 돌맹이를 그 자리에 두고 질주하기로 했다. 맞춤법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질서일 것이다. 그러나 글씨를 전공한 국문학과의 학생들이 모두 작가가 된다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글씨를 제대로 쓰는 사람들도 창작이 어려워 거의 대부분 작가의 길을 가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렇다면 창작을 하는 사람이 꼭 글씨를 정확히 쓰지 못한다고 하여 큰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창작이라는 대열에 설 것이다.

 

이제 나는 고속질주 하던 바퀴에 급브레이크 제동장치를 달지 않는다. 굿뉴스에서는 문법이라는 형식만으로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굿뉴스가 좋다. 묵상글은 사랑이라는 눈으로, 사랑이라는 가슴으로, 사랑이라는 맞춤법으로 읽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색깔이 분명한 색동옷을 입고 좋으신 아버지 하느님의 딸로서, 사랑이신 주님의 어린 양으로서, 능력이 충만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자신도 알수 없었던 풍성한 꽃을 피우고 있다. 가방 끈이 짧았어도 은총으로 이루고 있지를 않는가?!

 

하느님께 영광!

굿뉴스께 감사!

벗님들께 사랑!

 

ㅡ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오5,45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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