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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복음묵상(2005-06-15)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5 조회수751 추천수2 반대(0) 신고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마태 6, 1)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통용될 새로운 "의로움"을 6개

 

의 대당명제(5,21-48)를 통하여 선포하셨습니다. 대당명제는 구약의 율법

 

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피력되었으며, 이 새로운 해석은 율법

 

주의적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법의 형식논리를 넘어 법의 정신을 구현하고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구약의 의로움이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

 

들은 구약의 율법을 글자 그대로 준수함으로써 예수로부터 위선자로 책망

 

받기도 했으나 그들의 "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구약의 율법 자체가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약의 모든 율법과 규정의 근간이 되는 "십계

 

명"(十誡命, Decalogue)이 건재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께서 도

 

래한 하느님나라를 위해 선포하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나은 의로움이 십계명의 기본 정신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인간다운 삶의 위대한 가치를 계시해 주며, 인간과 집단과 백성

 

의 기본권리를 편들어 감쌉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십계명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공동번역성서 - 일과놀이)    

 

1. 오직 야훼만이 하느님이시다!

 

파라오나 왕의 억압체제와 독재체제를 정당화해 주는 종교제도가 내세우

 

는 하느님의 모습은 우상일 뿐이다. 종교와 신앙은 반드시 억압당하고 착

 

취당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힘과 세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2.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거짓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와서는 결코 안 된다. 즉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해방자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서

 

는 안 된다. 억압자인 지배권력자와 착취자인 부자를 편들기 위하여 신앙

 

을 조작하거나 오염시키지 말라.

 

 

3. 안식일을 지켜라!

 

안식일에 쉼으로써 노동의 목적이 이익을 얻는 데 있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목적은 사회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평등한 행복에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노동자를 일정하게 쉬게 하고 노동의 가치 및 노동자

 

의 인격존엄성을 존중하라.

 

 

4. 부모를 존경하라!

 

하느님의 뜻을 일러 주는 부모의 권위를 지켜 주고, 사회공동체를 하느님

 

의 뜻대로 인도하는 지도자를 지지하라.

 

 

5. 살인하지 말라!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존중하라. 사람을 굶주리게 하지 말고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게 하지 말라. 산업재해와 동해로 사람을 죽게 하지 말

 

라.

 

 

6. 간음하지 말라!

 

다른 인간을 자기 욕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지 말라.

 

 

7. 도둑질하지 말라!

 

부자들이 더 이상 돈을 쌓아 놓지 못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저생

 

계비와 안정된 주거공간을 마련해 주라.

 

 

8.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교묘한 궤변과 거짓논리로 진리를 뒤틀지 말라.

 

 

9 와10, 남의 것을 빼앗지 말라!

 

사회 불의에 대항하라.

 

다소 의외지만 "십계명"이라는 단어가 모세오경에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단어는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오경에

 

는 "증거판"(출애 31,18; 32,15; 신명 4,15), "훈계와 계명의 돌판"(출애

 

24,12; 25,16), 또는 "두 돌판"(신명 5,22)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께서 선포하시는 새로운 의로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약에 주

 

어진 십계명(출애 20,2-17; 신명 5,6-21)의 참 뜻을 하나하나 새겨들어야

 

합니다. 십계명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께서 그분이 선택하시는 백성과

 

맺으시는 계약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을 의미하며, 인간의 응답에 대하여 하느님은 자유와 해

 

방을 선사하며, 이것으로 인간은 자신의 품위를 회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십계명 전부를 열거하여 각각의 계명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모든 가

 

르침과 행적은 십계명에 대한 충분한 풀이로 간주됩니다. 우리가 보았던

 

마태오복음 5장의 여섯 개 대당명제는 우선 십계명의 5계명부터 10계명까

 

지의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4일간 평일미사의 복음으로는 산상설교의 둘째 부분

 

(마태 6장)이 봉독됩니다. 마태오복음 6장은 대당명제와 같은 비중의 율법

 

에 속하지는 않지만 신앙인으로서 지녀야할 성덕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십계명의 응용"인 셈인데, 예수께서는 신앙인의

 

성덕으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제시하십니다.

 

그렇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이미

 

유대교 안에서 널리 수행되었던 덕목들이며, 예수님 당대에는 특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선행을 쌓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수단들입

 

니다.

 

 

그렇다면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새로움은 무

 

엇일까요? 일단 이러한 선행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위

 

한 목적"(1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행이 일부러 남들

 

이 보는 앞에서 수행되거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이미 상을

 

받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선

 

행지침을 엄수해야 하는데, 즉,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

 

이 모르게 할 것"(3절)이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할 것"(6

 

절)이고, "단식할 때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할 것(17

 

절)"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숨을 일까지 모두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답해 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내리시는 선행지침을 글자그대로 따르라는 것은 아닙

 

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모든 선행이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숨을 일도 다 보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선행을 행하면

 

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

 

성에 속합니다. 조그만 선행을 하고도 크게 불려서 나팔을 불며 떠벌리고,

 

남이 몰라주면 오히려 섭섭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선

 

행을 남들이 알아줄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으로 받을 상

 

을 다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과 신뢰심과

 

겸손의 마음입니다. 신앙인은 이웃에 대한 자선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게

 

되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신뢰심을 얻게 되며, 음식과 육정을

 

절제하는 단식을 통하여 겸손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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