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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56) 가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6 조회수1,07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5년6월16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ㅡ고린토2서11,1-11;마태오6,7-15ㅡ

 

             가위......

                       이순의

 

 

솟대!

솟대는 장승과 함께 고을 입구에 세우고

고을의 무탈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토속적인 풍습이다.

나도 오늘 그런 의미로 솟대를 세워본다.

<송파구청 1층에서 촬영>

 

 

 

<오매 오매 오매 어찌까? 어찌까? 어찌까?>

그만 가위에 눌려서 벌떡 일어났다. 안심이다. 시계를 보니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런데 요즈음 가위에 눌려서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고, 벌렁벌렁 요사를 떨다가, 그래도 좋은 마음에 가라 앉히고 가라 앉히고 마음자리를 다스리느라고 조심스럽다. 세상의 모든 운전자들이 초보일 적에는 다 그러했을까?

 

연수할 적에는 옆에 앉은 선생님을 믿은 탓에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는데 막상 차가 오시고 나니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짝궁이 바빠서 이전을 서둘러 주지 않았기 때문에 행여라도 큰오빠께 이중으로 손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을 할까봐 불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살살살! 엉금엉금! 내배 째! 라는 식으로 감각을 익히려고 조금씩 움직여 보는데, 워째서 꿈에서는 뭐든지 현실하고 달라서 그만......!

<오매 오매 오매 어찌까? 어찌까? 어찌까? 으아악!>

 

얼마나 다급한지 어려서 썼던 사투리들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고! 온 몸이 굳어서 나무토막처럼 빳빳한 게 숨구멍조차 워째 작동을 안하는지? 생신가? 꿈인가? 분간이 안될지경이었다. 창문을 열고 가로등 밑에 정차되어 있는 차를 내려다 보았다. 차는 무탈하다. 그런데 내 몸은 무겁고 아직도 꿈결에 있었던 미숙운전으로 가슴이 쿵쾅거린다. 꿈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운전을 하시는 모든님들이 이런 고초(?)를 격으면서 그렇게 능숙해지는 것일까? 

 

오늘은 나도 축성을 받았다. 어느 분께서 헌차도 축성받느냐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어느 새차보다도, BMW나 뭐 에쿠스라고 하든가? 그런 어떤 고급차 보다도 최고의 고급차이며, 더구나 내 새언니가 쓰셨고, 내 새언니의 냄새와 손때가 묻어있으니 어느 값비싼 차와 견주겠는가?! 더구나 큰오빠랑 새언니께서 차를 주셨으니 차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더욱 안전하여야 한다. 만약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큰오빠랑 새언니의 가슴에 후회와 아픔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라도 끝까지 안전해야만 한다.

 

그래서 유일하며 가장 든든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방법이 최고의 안전벨트라고 생각했다. 짝궁이 오셔서 이전을 마치는 대로 훌렁 떠나버렸고, 오늘은 나 혼자서 성당으로 차를 몰고가서 축성을 받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이 가난한 자의 예물은 예쁜 카드 한 장에 멋진 감사가 전부다. 그래서 아침이 바빴다. 카드를 만드느라고 바쁘고, 목욕재계하여 싸구려 옷이라도 다리미로 다려서 의대를 갖추느라고 또 바빴다. 그리고 가위눌린 꿈은 잊어버리고 신바람이 나서 흥얼흥얼......

<뛰뛰이 뛰뛰이 뛰뛰 빵빵! 뛰뛰이 뛰뛰이 뛰뛰 빵빵!>

 

미사는 끝나고! 사무실로 내려오니 할아버지 주임신부님께서 앉아 계시고.....! 나는 신부님께서 사무실에 계시면 절대로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였다. 발이 불편하신 주임신부님께서 축성을 해 주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축복의 마음은 몽땅 다 받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이라도 안전을 빌어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면 그 또한 얼마나 보시기에 좋은 행사인가?! 사무장님의 신호가 떨어지고, 미사가 끝나고 교우들과 인사를 마친 보좌신부님께서 축성을 하실 것이었다.

 

미리 차 옆에서 기다리는데 신부님께서 오시고, 역시! 언제나 그렇듯이! 축복을 비는 기도문에는 좋은 말들을 총 동원하여! 성수도 뿌리고! 또 강복과 운전자의 안전을 청하는 안수까지! 우와~! 기쁨도 신바람이 나는데, 나의 마음이 하자는 대로 차를 축성하기를 잘 했다는 만족감에 배가 뿔룩 튀어나오는 듯 하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운전자들과 색다른 요청을 신부님께 하였다.

<신부님! 제가 매일 차량일지를 쓰는데요. 좋은 글이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오늘은 신부님께서 그 일지에 싸인 좀 해 주세요. 훗날에 좋은 볼거리가 되고, 신부님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신부님께서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써 주셨다.

<차 축성

  주님의 은총과 항상 함께 하세요.

                            2005.6.16

          이동원 야고보 신부 (싸인)>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작은 십자가를 주셨다. 주님께서 항상 지켜주실거라고! 그런데 나는 엉뚱하고 생뚱맞는 말을 뱉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신부님께서 십자가를 안주셨으면 저 엄청 섭섭했을거예요.

  저희 새언니께서 새언니네 신부님께서 주신 십자가가 소중하셔서 떼 가셨거든요. 그러니까 신부님도 제 차에 십자가를 달아주셔야 하거든요.>히히히히히히! 그리고 인사는 이렇게! <신부님! 이 차의 수명이 다 하는 날까지 신부님을 기억할께요.> 참! 우리 신부님 기쁨이 짱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란 사람은 좀 둔치라서 그 십자가를 모시고 다니면서 신부님께서 같이 타고 다닌다고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신부님들은 그런 만족으로 사실 것 같기도 하다. 새언니는 새언니 대로 축성해 주신 신부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동행하며, 안전운전을 하셨을 것이고, 또 얼마나 많은 교우들은 교우들 대로 소중한 신부님과 동반의 운행을 하며 주님을 모실 것인가?! 앞으로 나는 나대로 야고보 신부님을 기억하고 동행하며 주님을 태우고 안전을 이룰 것이다. 그것이 신의 영역이고, 종교가 믿음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며 보람일 것이다. 

 

새언니를 지켜주시고, 새언니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 자리에 빈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나를 지켜주시고, 나와 함께 하실 예수님께서 자리하셨다. 아마도 짝궁이 돈을 벌어서 새차를 사는 날이 온다고 해도 이렇게 흥분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있어서 마련되어지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언니가 주신 지금은 내가 가질 수 없는데 마련되어진 자선이다. 그 송구함도 크지만 송구함이 크기 때문에 그 덕에 감사하는 깊이도 애절할 수 밖에 없다. 진심으로 애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사용법이 서툴러서 브레크 오일이 부족하다는 등이 자꾸 자꾸 켜졌다. 초심의 두려움에 겁이나서 정비소로 달려 갔다. 오일통을 열어보니 맑고 깨끗한 브레이크 오일이 가득하다. 큰오빠께서 막내에게 차를 주시려면서 얼마나 얼마나 정확히 점검하고, 채우고, 손질했는지 감동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정비소에서는 주차 브레이크가 아래까지 꽉 눌러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알려주시고, 차는 안전하고 깨끗하니 그냥 가라고 했었다. 차를 타는데도 차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차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면 나도 차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아 드려야 할 것이다.

 

오빠가 차를 놓고 가시던 날부터 차량일기를 따로 기록하고 있다. 몇 일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읽어 볼만하다. 내가 운전을 능숙 능란하게 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 일기를 읽어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겸손해 질 것이다. 또한 아들이 운전을 하게 될 때에도 좋은 자료가 되어 도와 줄 것이다. 오늘 밤에는 가위에 눌리지 않고 잠을 잘수 있을 것이다. 은총은 덤으로 온다던가?! 축성을 마치고 레지오 회합 때문에 주차차량이 많아서 차를 꺼낼 수가 없었다. 차를 성당 주차장에 두고 볼일을 다 본 후에 돌아왔을 때에도 주차장은 만차였다. 할 수 없이 만남의 방에서 커피를 한 잔 하는데......

 

짝궁과 아들의 견진 대부님이신 바오로 대부님의 아내이며, 나의 애우(愛友)인 베로니카를 만났다. 그런데 이제야 이전을 한 탓에 큰오빠네도 우리를 기다리느라고 이제야 할 일이 분주하셨던가 보다. 구청에 가야하는 서류 한 장을 부탁하셨는데, 초보 주재에 감히 누구에게도 태워다 준다는 말은 언감생심 발설할 자격도 없으면서 <방향이 같아서 태워다 줄께요.>라고 용감을 떨었다. 초보운전은 안타겠다더니 그래도 타셔서 백화점 앞에까지 모셔다 드렸다. 축성을 하고 첫 승객이 대모님이 되실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새언니의 전화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아니지! 레지오 회합이 아니었다면, 아니지! 내가 처음부터 주차를 출입구 쪽에 했더라면, 물에 기름 돌듯이 기름에 물 돌듯이 성당을 빠져나갔을 텐데, 커피를 마시려고 만남의 방에 들어가기나 했을 것인가?! 이래저래 아버지께서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하시는 바람에 축복이 덤으로 덤으로 배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토록 좋은 관심과 이토록 넓은 아량과 이토록 섬세한 계획이 어찌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겠는가?!

 

가위 눌려 새벽 잠에서 깨었을 때도 나는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것도 몰랐다. 마냥.....!

<오매 오매 오매 어찌까? 어찌까? 어찌까?> 라고 소리만 질렀을 뿐이다. 그런데 하루가 축복에 축복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내가 원하는 구역에 거주자 우선 주차 배정이 하루라도 빨리 마련 되기를 청하여 본다. 그래야 집 주인이신 전도사님과 아래층 식구들에게 덜 미안 할 것 같다. 그 또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요즈음 가위에 눌려서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고, 벌렁벌렁 요사를 떨다가, 그래도 좋은 마음에 가라 앉히고 가라 앉히고 마음 자리를 다스리느라고 조심스럽다. 세상의 모든 운전자들이 초보일 적에는 다 그러했을까? 오늘은 축복과 안수를 받았으니 가위에 눌리지 않고 잘 자겠지?!

<운전하시는 분들! 처음에는 다들 그러셨나요?>

 

ㅡ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마태오6,8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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