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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57) 동충하초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7 조회수1,11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6월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ㅡ고린토2서 11,18.21ㄴ-30;마태오6,19-23ㅡ

 

             동충하초

                         이순의

 

 

짝궁이 공직에 있거나 또는 회사원도 아니라서 싼 양말짝 하나라도 들어올 일도 나갈 일도 없이 맑은 사람이다. 살다보면 관계라는 것이있고, 그 관계 안에서 주고 받을 일도 있을텐데 우리 부부가 사는 일은 줄 일이 없어서인지 들어오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 때로는 신간이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또 부러운 입장도 되었다가, 사람이 생긴대로 살을진데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허전함으로 일렁일 때가 있다.

 

절친한 지인으로부터 동충하초를 받았다. TV에서만 동충하초를 보았지 내가 동충하초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겨울에는 충, 그러니까 벌래였다가 여름에는 초, 풀이다는 말이다. 벌래의 몸에 포자가 생겨서 버섯같은 것이 자라는 약재를 이르는 말이다. 노리끼리하고 징그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징그럽지가 않고 예쁜 실버섯들이 꽃을 피운 것 처럼 생겼다. 모르긴 해도 아마 상당히 비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받으면서도 좀 알딸딸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분께서도 명절에 선물로 받은 것이니 나누어 먹자고 하시며 선뜻 내어주셨다. 작은 살림의 내가 그분께 드릴 것이 마땅치 않아서 죄송했지만 주셨으니 설명을 듣고 받아 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언제 먹느냐가 관건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귀하고 좋은 것인데 나 혼자만 아들하고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우리 가족이 언감생심 일부러 그것을 사서 먹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짝궁이 집에 있는 날에 같이 먹고 싶었다.

 

짝궁이 집에서 최소한 3박4일은 머물러 있어야 그것을 끓이고 나누어 마실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짝궁이 집에서 고스란히 여러 날을 머문적이 없었다. 아! 있기는 있다. 옻닭을 먹고 그 독성에 고통스러워 할 때! 그러나 그때는 도저히 동충하초를 끓여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독한 독성에 시달리는데 여리디 여린 곤충의 풀에서 나오는 효험이 무슨 기를 펼 수나 있었겠는가? 그래서 모처럼 집에 있는 짝궁에게 그것을 끓여주지 못했다.

 

사람의 간은 해독의 한계가 있다고 한다. 정상적인 음식을 해독하여 저장하는데 쓰라고 만들어진 간은 약이 들어 오거나 다른 무엇이 들어 오면 노동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약물에 주사에 수 없이 시달리고도 아직까지 양호한 간을 위해 가급적이면 많은 섭취를 절제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걸 알면서 짝궁에게 극약과 같은 처방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달여서 나누어 마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동충하초가 냉장 보관 된지가 족히 몇 해는 되어버렸다. 짝궁도 없이 나와 아들이 둘이서만 마시기에는 짝궁의 자리가 너무 안타까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때 그분께 받지 말고 그분이나 드시라고 확실하게 거절하지 않은 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이든지 나누어 주려고 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짝궁과 함께 하려다가 너무 아까운 마음에 못 먹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분은 모르실 것이다.

 

어느 때는 한없이 서러울 때도 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사람이 누리면 얼마나 누린다고, 사람이 벌어서 쓰면 얼마나 쓴다고 저 세월을 저토록 밖으로만 떠도는 인생이라는 말인가?! 방안에 머물러 있기를 업으로 삼아 사는 내가 아니었다면 저러고 사는 짝궁이 이만한 가정이라도 발 딛고 들어설 둥지를 지니고나 살을 수 있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건강을 타고나지 못하여, 가난하다고 박차고 나가 세상에 뛰어들어 철의 여인으로 살아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으기도 하다.

 

냉장고 안에는 아직도 동충하초가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의 쓸쓸함을 느끼느라고 이제는 그 동충하초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내 가슴에 아프다. 언제 끓여서 짝궁이랑 나누어 마실 수 있을지?! 그것을 나에게 주신 분께는 아직도 그것이 냉장고 안에 있다고 알려드릴 수는 없다지만 마음 한 구석의 송구함이 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짝궁은 늙어서 무엇을 추억하며 살을 것인가? 나는 또 긴긴 기다림만 하소연하며 노후를 맞을 것인가?!

 

사람의 삶이 사람의 뜻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라지만 저 작은 동충하초 하나를 끓여서 함께 마실 여유도 없이 살아오면서 왜 이리도 궁색하다는 말인가?! 이제는 저 동충하초를 끓여서 마시는 것 만이 꼭 영약은 아니었을 것이다는 생각도 해 본다. 저 동충하초를 두고 이제나 저제나 짝궁을 기다려 지극지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참고 기다리는 정성이 명약이 되지 않았을까? 각복한 짝궁이 약의 효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편단심이라는 지극한 마음의 효험으로 저만큼이라도 당당한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인께서 그 동충하초를 주시지 않았다면 떠돌이 나의 짝궁에게 내가 좋은 것을 먹이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지를 어떻게 절실한 마음으로 가져볼 수 있었겠는가?! 그분께는 한 없이 감사하고 죄송하지만, 어쩌면 유효기간이 지나서 못 먹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동충하초를 내가 홀로 먹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대로 바라보며 그 영약보다 특효한 심성의 명약을 달여서 짝궁에게로 짝궁에게로 보낼 것이다. 인생은 끝이 있는 법! 영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돌아와 쉬는 날이 있겠지.

 

그때까지 동충하초는 냉장고에 두지 뭐! 

 

ㅡ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내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마태오6,22-2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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