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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달빛 아래 공동묘지를 지나가면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8 조회수1,345 추천수15 반대(0) 신고
연중 제12주일-마태오복음 10장 26-33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



<달빛 아래 공동묘지를 지나가면서>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오시면서 체험하셨던 가장 큰 두려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저는 체질상 소심하기에 또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어서 꽤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때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던 죽음에 대한 공포, 때로 하느님으로부터 잊혀 졌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 자신이 도대체 어디로 튈 줄 모르는데서 오는 걱정, 너무나도 강한 이웃에 대한 무서움,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오던 두려움과 싸워나가느라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청년시절, 한 깊은 산중에 위치한 외딴집에서 몇 달간 홀로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민가까지는 적어도 십리 이상 떨어진 외딴집, 완벽히 세상과 차단된 그런 집이었습니다.


낮에는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청정한 공기, 쉼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 노래처럼 들려오던 계곡 물소리,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그곳은 정말 천국 같았습니다.


그러나 밤만 되면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꿈을 별로 꾸지 않는 편인데, 밤이면 밤마다 어김없이 귀신이 등장하는 꿈을 꿨습니다.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고 가위에 짓눌렸습니다.


한번은 생필품을 사러 읍내까지 내려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가게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 버스를 놓치다보니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큰 일 났다’ 싶어 걸음을 재촉했지만,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산길을 접어들기도 전에 벌써 분위기는 괴기영화 분위기였습니다. 옅게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초승달이 가늘게 떴습니다. 소쩍새소리가 멀리서부터 음산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을 떨쳐보려고 아는 노래는 다 불렀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쯤에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는 정말 모든 머리카락이 다 일자로 서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몸의 세포가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거의 뛰다시피 하여 겨우 공동묘지를 벗어나는 순간, 기겁을 할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초스피드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죽었다 생각했는데, 아무 일이 없기에 겨우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이게 또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하얀 물체가 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혼비백산해서 또 왔던 길을 뛰어내려오다가 공동묘지 생각이 났습니다. 애라 모르겠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갑자기 평소에 잘 안하던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오더군요. 한결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다시 산길을 오르면서 저를 두렵게 했던 그 원인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묘지 근처에서 들리던 갓난아기 울음소리는 들 고양이들이 짝짓기를 하는 소리였고,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하얀 물체는 낮에 굿을 하고 내려간 사람들이 버리고 간 흰 종이들이며, 잡동사니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쓸 데 없는 두려움이나 걱정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많은 저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원인은 자아존중감이 약한 까닭인 듯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자아존중감이 무척 낮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자신감이 결여되었고, 남 앞에 서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지. 어려워도 당당하게 한번 직면해 보는 거야!” 하는 마음보다는 “나는 역시 안 되. 내 까짓게 뭘 할 수 있겠어?” 하며 지레 겁을 먹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좀 더 자신을 존중하고 긍정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지닐 것을 요청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 앞에 진정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진정 우리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넘치도록 하느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분 손길 아래 숨 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한 평화의 사도로 존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오늘 복음의 권고말씀처럼 육신보다는 영혼에 우위성을 두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주, 그리고 많이 버리는 일입니다. 더욱 자주 떠나는 일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욕망도 버리고, 슬픔조차 버리고 버렸다는 그 마음조차 버릴 때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진정한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버리고 버려서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어지는 그 순간, 그 버린 공간에 주님의 참 평화가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만물, 모든 존재, 매순간의 사건들은 그 자체로 은혜로움과 감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결국 두려움이 극복된 진정한 평화의 원천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고통과 절망, 두려움과 의혹 그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오직 주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께 우리 존재 전체를 내어맡길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한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딜 가도 서정적 영화나 배경이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는듯한 완벽한 평화란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굳건히 자리 잡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놓는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평화입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인해, 그분이 우리 인생의 중심이 됨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위로, 그것이 참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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