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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일 주일말씀 묵상---김정수대건안드레아신부님---
작성자유용승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8 조회수1,083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12주일                               주례 본당               05. 6. 19


  1) 예언자는 어떤 분들이며, 무슨 직능, 사명을 가진 분들이고, 지금까지도 이런 예언자들이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요청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언자는 너무나 강력한 분이고 특별한 분이다. 어떤 영적인 것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자이다. 주님의 꼬임에 넘어가기 싫다고 하였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예레 1, 6).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예레 20, 7).


  예레미아 예언자는 눈물의 예언자, 고통이란 고통은 다 짊어진 예언자이다. 욥 성인과 비슷하다. “저주받을 날, 내가 세상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복과는 거리가 먼 날,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한 그 자도 천벌을 받아라.”(예레 20, 14-15). 이렇게 고통을 당하신 분인데 그 고통이 참으로 굉장한 힘을 가지고 아팠던 만큼 고통이 마침내 사명으로 바뀔 때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이 크심을 알게 된다. 참으로 희한한 무순이기도 하지만 지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행하면서 겪는 과정에 있어서도 하늘나라의 약속은 물론이지만 예언자는 그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면서조차도 나중에는 큰 기쁨을 얻었으리라 여긴다.


  예언자들은 율법이나 전승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이 말씀 하신 것을 듣는 것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얻는다. 시대의 깨우침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개인적인 특별한 깨우침, 체험을 소리 높여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언자의 몫이니 그 예언의 몫을 발설하더라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체험이 아니라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해야 하니 개인적인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가짜야, 저것은 거짓말이야.”하고 민중은 예언자를 판단하였다. 그들이 모르거나 그들 입맛에 맞지 않고 그들과 관계가 없을 때 받는 질책과 질타를 예레미아 예언자가 가장 강력하게 많이 받았다. 하느님의 엄청난 일을 하려면 그런 것에도 불구하고 자기 체험이 너무나 강력해서 어쩔 수 없이 예언자의 소명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주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예레 20, 7-9).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현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2) 제1독서에서 가난한 사람을 언급한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악당들의 손에서 빼내 주시는 분이시다.”(예레 20, 13) 정말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먹지 못하고 굶주린 사람을 속칭하는데 그것 뿐 아니라 그들은 인간 자체가 가난하다. 제2독서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내실 때 아담과 조상들의 원죄 이야기를 하신다. 원죄가 강력하게 대물림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너무 강력해서 죽음으로 끝장을 보았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 12).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서 인간을 새롭게 조직 개편을 하셨다. “하느님의 은총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많은 사람이 풍성한 은총을 거저 받았습니다.”(로마 5, 15). 유전자 개조를 하셨다. 사람과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님의 부활에서 인간 고리의 연결성이 있다. 연결성이 얼마나 중요하냐고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이 내셨으니 이것에는 특별한 관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연결되어 있는가? 하나가 사라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사라지게 된다. 파멸이 온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내신 것에서 그분의 존엄성, 자비로 그것을 부활시키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생명이 이어진 것이다. 부활이라는 말만큼 중요한 단어가 없다.


  기원전의 시대에는 아담의 죄로 인해서 죽음이 전해져 왔지만 그리스도 탄생 이후,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어 오셔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부활 신앙은 하느님의 새로운 존재 법칙, 새 틀이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義이다. 그래서 생사도 구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 중요하다. 죽음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할수록 참으로 많이 성숙해진다. 실지로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화되는 것이 인간사(人間史)이고 인생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좋은 토양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죽음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해야 한다. 묵상은 무의식 세계에 들어가서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샘에서 물을 퍼 올리는 것이다. 죄의 역사에서 은총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그것이 오늘 복음서의 말씀이다. 


  3) 우리가 받은 체험, 예컨대 성령 묵상회에서나 기도를 깊이 하고서 하느님으로부터 떨림을 받은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따라온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만 보여주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 다음에 오는 무엇이 있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해서 올바르게 전하라 하고 하느님의 일로서 엮어주시는 것을 명백히 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름 아닌 배반이 되니 오히려 은총이 두려운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은총의 두려움이 커다.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 기쁨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은총이 주는 소명에는 개인이 따르기 힘든 요소가 많이 있으므로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말씀처럼 이야기해야 한다.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고 비밀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드러나는 것은 내용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느님의 비밀도 드러난다. 하느님의 비밀은 어떤 것인가? 바로 선택받고 알아듣는 귀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발설하게끔, 만인이 듣는 데서 알려 주게끔 하는 소명을 갖는다. 하느님의 비밀도 드러나야 되고 하느님 신비도 사실은 드러나야 된다. 정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하겠지만 자기에게 드러난 하느님을 모른다고 한다면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마태 10, 33)고 하신 말씀과 같다.


  이 시대의 예언자는 누구인가?  시대적으로 하느님의 의(義)와 법(法)에 기준을 두고 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 의를 바르게 알고 그 의를 바르게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대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현대의 어떤 사건도, 상황도 하느님의 의는 드디어는 하느님성, 신성(神性)이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느님의 존재 법칙이므로 그 법칙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 두려워 할 줄 알라는 말과 연결된다. 하느님을 경애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말씀이다.


  안다는 것, 안다는 증언, 선포하라는 사명,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것 이런 말씀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들이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묵상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결과가 있어야 행위를 한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 다름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을 받는다. 샬롬, 평화의 은총을 받는다.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것이지만 미리 그분이 주시는 평화의 가치는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인간을 참으로 거룩하게 만든다. 거룩한 사람은 생사를 따로 보지 않고,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며, 흑백이나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심처럼 우리의 폭도 넓어져서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수용력과 포용이 생길 때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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