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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부님까지 이러시면 안되지요!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19 조회수1,473 추천수15 반대(0) 신고
6월 20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마태오복음 7장 1-5절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신부님까지 이러시면 안 되지요!>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제가 겪은 몇 가지 일입니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가까운 슈퍼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이었는데, 저는 무심결에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가 뜸한 곳이기도 했지만, 날씨도 더운데 횡단보도까지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막 중앙선을 넘어가려는 순간 아이가 그러는 겁니다. “신부님까지 이러시면 안 되지요!”


저녁 먹고 아이들과 축구시합 할 때도 마찬가지로 또 한방 먹었습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력이 딸리니까 어쩔 수 없이 공을 빼앗기고, 그러고 나자 자존심이 팍 상했습니다. 제 공을 낚아채간 ‘얄미운’ 아이의 옷자락을 끄집어 당겼습니다. 그 순간 하필 “애들아,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언제나 페어플레이를 하도록 해라”고 언젠가 강론시간에 제가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요.


죽어도 패스하지 않고 개인기로 일관하는, 그래서 팀플레이를 망치는 한 아이를 보고 오늘도 속으로 엄청 욕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공만 잡으면 패스할 생각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한골 넣어보겠다고 기를 쓰고 단독플레이로 일관하는 제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수도자가 제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강요하면서 저 자신은 절대로 그렇지 않은 모습을 봅니다. 수도자로서 영적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아느냐? 미사나 기도 시간, 묵상시간에 제발 졸지 말고 집중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면서도 저는 묵상시간에 세상모르고 쿨쿨 잔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저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유대 문법에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과장법이 자주 사용되곤 했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과장법을 많이 사용합니까? 좀 더운 걸 가지고 불볕더위니 용광로속이니 하며 과장합니다. 손이 남보다 좀 큰 걸가지고 솥뚜껑만 하다는 과장합니다. 키가 좀 크면 전봇대 만하다고 합니다. 좀 보고 싶은 걸 가지고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꽤 센 과장법을 사용해서 남의 결점에 목숨을 걸기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숙하고 반성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른 나무(crossbeam)를 의미합니다. 꽤 무겁고 큰 나무토막이겠지요.


아무리 우리 눈이 왕방울만큼 크다 하여도 길이가 몇 미터나 되는 들보가 우리 눈에 들어

갈수는 없습니다. 우리 몸길이보다 더 긴 들보가 어떻게 우리 눈 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들보입니다. 몇 미터뿐만 아니라 수십 미터나 되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허물들, 결점들, 잘못들, 죄악들, 오류들, 언행의 불일치, 그릇된 지향, 하늘을 찌르는 위선, 극도의 이기심을 본 것입니다.


저도 가르치는 입장에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찔리는지 모릅니다. 날이면 날마다 속이 다 보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과 삶을, 말과 행동을, 생각과 현실을 조화시키고 일치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이웃의 허물에 목숨을 걸기보다 내 발밑을 먼저 살펴보는 겸손하고 신중하고 진지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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