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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슬픈 나무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1 조회수1,299 추천수15 반대(0) 신고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마태오복음 7장 15-20절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슬픈 나무>


저희 수도원 뒷마당에는 꽤 여러 종류의 유실수들이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포도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모과나무...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않는데도, 자신들의 때만 되면 보란 듯이 주렁주렁 빛깔 좋고 그런대로 먹을 만한 열매들을 생산해내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릅니다.


모과나무 같은 경우 그리 크지도 않은데도 얼마나 야무지게 결실을 맺는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입니다. 크고 단단할 뿐만 아니라, 향기가 보통이 아닌 모과들을 설탕에 재어 겨울 내내 향긋한 모과차를 끓입니다.


모든 나무들이 다 기특한 것은 아닙니다. 눈에 거슬리는 나무도 있습니다. 복숭아나무가 그렇습니다. 초가을이 되면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엄청 많은 복숭아를 주렁주렁 달고 서있지만, 그 맛이 별로입니다. 달지도 않을뿐더러 크기도 그저 그렇습니다.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한바구니 따서 간식시간에 올려놓아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식욕이 왕성한 까치들마저도 외면합니다. 그저 땅에 떨어져 썩습니다. 날 파리들만 수도 없이 날아와 윙윙거립니다.


작년 가울,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열매들을 힘겹게 달고 서있는 복숭아나무가 너무 불쌍했던 저는 인정사정없이 가지치기를 해버렸습니다. 원뿌리만 남겨두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강경한 어조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계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과수원 주인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열매를 맺는다하더라도 맛이 없을뿐더러, 별 의미도 없는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열매들만 주렁주렁 맺는 과일나무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입니다. 빨리 베어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고 싶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와서 따가고 싶을 정도로 향기롭고 달콤한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는 좋은 과일나무는 너무나 사랑스런 나머지 늘 손길을 주고 싶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이 반성해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나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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