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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성력 대 침체성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2 조회수935 추천수2 반대(0) 신고

생성력 대 침체성


해결점은 돌보는 것
남성이나 여성 모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돌보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중년의 위기를 극복한다. 에릭슨은 돌봄의 덕목이나 과제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생성력과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기 몰입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본다. 다른 사람에게 주기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탈진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고, 자신의 내적인 공허함에 부딪칠 위험이 있다.*

 * 타인에 대한 돌봄이 자기 돌봄과 건강한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다음과 같은
왜곡된 돌봄의 형태 속에 빠질 수 있다. 1)자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한다. 2)다른 사람들이 원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도움을 준다.
3)내가 주고 싶지 않는 도움을 준다. 4)나나 도움받는 사람이나 무언가를 기대하면서도 서로에게 요구하지는 못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기만 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 하거나, 삶을 생성력으로 촉진시키는 어른이 결코 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이상적인 것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마태 22,39).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홀로 있음. 친밀한 인간관계, 레크리에이션, 취미 생활, 피정, 기도,일기 쓰기, 새로운 학문의 탐구 등을 통해서 내적 여정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자기 성격의 다른 측면들을 성장시킨다. 사고 중심적인 사람은 좀더 정서적으로 되고, 내향적인 사람은 좀더 외향적으로 변하고, 그리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남성들은 그들의 여성적인 면(anima)를 발달시키며서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음악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자녀과 손자들에 대한 애정을 깊게 한다. 여성들은 그들의 남성적인 면 (animus)을 발달시키면서 교육을 받고, 솔선 수범하고, 자신에 대해서 더욱 굳건해지며 확신을 가진다. 나(마태오)는 부모님이 가족을 부양한 후에, 아버지는 예술을 시작하고 어머니는 새로움 돌봄의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시는 것을 보았다. 중년의 위기를 피하거나 극복하고자 한다면 단순하게 “나는 어쩌다가 나 자신과 나 자신의 덜 성숙된 면을 돌보는 일에 실패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자신만을 돌보는 것은 문제를 단지 반만 해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 다가가는 생성력도 없이 침체되어 활기를 잃은 자기 몰입에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정신 지체인들과 장애인을 위한 ‘라르쉬 공동체’를 200개 이상
창설한 장 바니에는 왜 어떤 공동체는 쇠락해 가고, 어떤 공동체는 사랑 안에서
성장하면서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봉사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그 이유를
발견했다.*
* Jean Vanier, Community and Growth : Our Pilgrimage Together(new York;
Paulist press, 1979)

장 바니에는, 성장하는 공동체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양쪽 모두를 돌보는 생성력 있는 돌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기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적어도 한 명의 친구와 친밀한 애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장 바니에는 우정을 베풀 수 있는 성숙하고 생성력 있는 사람을 각 공동체에 한 사람 이상씩 배치했다. 하지만 바니에는 단지 한 사람의 친구만 가지고 잇는 공동체는 침체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동체에서는 한 사람의 친구외에,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키우도록 요구하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아주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바니에는 알아냈다. 성서는 250회나, 심지어 원수에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을 의미하는 아가페(Agape)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도록 인도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이상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가 사랑하기 가장 힘든 사람들은 종종 우리와 가장 다른 사람이다. 옷을 입을 때 허리띠와 멜빵을 메는 전통적인 행정가들은 실용적으로 옷을 입는 법이 결코 없는 구습타파주의 예술가들을 보면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공동체는 전통을 보존하는 사람들과 창의적으로 꿈을 꾸는 사람들 모두가 필요하다.
진정한 공동체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는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곳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한 정신과 의사 스콧 펙은
공동체는 네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잘 지내는 척 가장하고 서로가 충돌을 피하는
‘유사 공동체단계‘.

둘째.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차이점을 표출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말살하려고 하거나 혹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독재자를 찾는 ’혼돈 단계‘,

셋째.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세계가 다르다는 서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관념이나 선입관, 기대감 등을 없애는 ‘비움 단계’.

마지막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항상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공동체 단계’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게 들린다면 이는 사로 사랑하는 친구의 사랑을 우리가 왜 충분히 받아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ㄴ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줄 사랑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받는 것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5년 전에, 우리 친구 조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달만에 조는 술을 끊었다. 조는 오랜 술친구들과 자신이 받았던 치유에 대해 함께 나누기를 원했다. 조는 친구들에게 가서 금주 모임에 가입하도록 격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조는 다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들과
금주 모임 후견인과 공동체는 그와 연락했고, 그가 다시 술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조는 적극적인 회원이 되었고, 결국 다른 많은 사람들의 후견인이 되었다. 우리는 조에게 자신이 음주의 재발 위험이 있게 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를 물었다. 조는 만약 자신이 다른 알코올 중독자를 도와주려고 찾아 나서지 않게 되면 그는 위험에 빠지게 되고 성장을 멈추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엇다고 말했다. 회복 초기에 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잇는 준비는 아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에린슨과 금주 모임의 관찰에 의하면 한 사람이 생성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하고 (조의 경우는 알코올 중독자로서)그리고 친밀한 관계(조의 경우는 자신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을 위한 후견인이 되는 것에 대한 투신)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5년 후에, 조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 가장 필요하게 되었다. 처음에 조에게 재발을 불러 온 남을 돕는 행위는 이제 조에게 더욱 깊은 치유를 가져다 주었다.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주고받는 그 양에 적절한 균형를 이루는 것이다.
[...]
(내 삶을 변화시키는 치유의 8단계 / 마태오 린, 데니스 린, 쉐일라 P./ 생활성서)
p.225~228

 

 

침묵의 샘  

작성 s.사도요한 2005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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