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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61) "엄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2 조회수1,00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6월22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놀라의 성 바울리노 주교, 또는 성 요한 피셔주교와 성 토마스 모어 순교자 기념 ㅡ창세기15,1-12.17-18; 마태오7,15-20ㅡ

 

                     "엄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순의

 

 

 

 

<그는 너무 순수해서 

  그래 너무 순수해서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 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국을 남긴 신발에

  눈이 묻어나는 것 조차도 싫어하였다.

  눈이 그대로  있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나중에 해가 뜨고 따스한 바람이 불면

  하얀 눈을 녹이고 질펀한 바닥을 보이는 게 두려워

  속 앓이만 계속 해야 했다.

  그는 너무 순수하였다.

  그래 그는 너무 순수해서

  발자국의 그림자에도 아파하고 용납하지 않았다.

                             박 막시밀리아노 M 꼴베>

 

 

이런 글을 연습장에 끄적거려 들고 엄마의 방으로 가져와 아들녀석이 제목을 붙여보라 하고 갔다. 읽어보니 "나"였다. 공부를 하다가 말고 무슨 마음이 들어서 이런 글을 쓰고 싶었을까? 그래도 나는 "엄마"라고 제목을 써 주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눈사람"이라고 제목을 써서 책상위에 가져다 주었다. 의자에 앉은 아들녀석이 돌아 앉으며 서있는 나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중년의 쿨렁한 뱃살에 얼굴을 묻으며 "우리 엄마!"라고 살포시 중얼거린다.

 

사관학교에 가겠다고 해서 사관학교 출신인 전임 신부님께 보내 보았다. 내 주관이 <가신 신부님들 찾지 말고 계신 신부님이나 잘 받들자.>이다. 실제로는 계신 신부님도 잘 받들지 못하지만...! 그런데 자식을 생각하여 먼저 다녀왔다. 신학교에 마음이 있어보이면 본당의 주임 신부님을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놈의 마음은 갈수록 콩밭에만 있으니 어미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바라는 대로,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이루어 성취 되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 본당의 전임 신부님께서 사관학교 출신이라서 혹여라도 그놈의 심중에 부채질을 하셨나 하여 부득히 찾아가 뵈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낌새는 전혀없고.....! 짐작했던 바와 달리 그냥 헛탕을 치고 돌아와서 아들 녀석을 보냈었다. 그런데 다녀온 아들녀석의 눈치는 아무리 돋보기를 쓰고 살펴보아도 그 표정이 쌩뚱 맞기만 하다. 그리고 어찌된 신부님이신지? 성소상담은 하시지 않고 재미있는 군대이야기만 들려주셨나 보다.

 

그러니 신부님께 다녀온 이놈은 신학교가 재미있다는 소리는 해 보지도 않고, 온통 사관학교만 재미있다고 한다. 공부도 열심히 열심히 하고! 더구나 신부님이라는 분께서 신학교 추천서를 써 주신다거나 주임신부님을 찾아 뵈어라는 소리는 하지 않으시고, 사관학교에 제출할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했다하니! 어쨌든지 갑작스런 아들놈의 진로 변경으로 합격이 보장 되지 않은 입시 준비임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그런데 아들녀석은 이런 글을 써서 엄마에게 보여준 것이다. 슬쩍 물어보았다. <신부님이 엄마 흉 보았어?> 그런데 이놈 왈! <응. 엄청 많이 보셨어. 그리고 나 도착했다고 전화 안하셔도 된데. 엄마가 무섭데. 히히히히> 농담처럼 말을 하는 아들녀석의 대답을 들으며 많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놈아. 그래서 신부님은 신부 밖에 모르는거야. 신부님이 자식을 둔 어미의 복잡스런 인간사를 어찌 알것냐? 어미가 본당 신부님도 아닌 신부님께 자식을 보낼때는 보낸다고 요청을 해야하는 것이고, 돌아오면 제 자식이 무사히 도착했으니 안심하시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거야.> 

 

아들녀석이 공부를 하다가 말고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암시하는 의미는 분명히 "나"였다. 그래도 나는 "엄마"라고 제목을 써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들의 마음에 무엇이 자리하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눈사람"이라고 쓴 그 제목도 멋졌고 만족했다. 아들녀석은 글 재주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을 썼을 때는 크게 칭찬을 해 준다. 글이란 꾸밈보다는 진솔함에 더 깊은 혼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어쩐지 아들이 끄적여 쓴 저 글에서 깊은 무엇이 느껴지고.

 

눈사람

 

그는

  순수해서

그래 너무 순수해서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국 남을 신발에

  하얀 눈

  묻어나는 것 조차

  싫어했다.

  눈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해가 뜨고

 

따스한 바람이 불면

  하얀 눈이 녹고

  질펀한 바닥

  보는 게 

  두려워

  속 앓이만 속 앓이만

  하여야 했다.

  그는

 

순수해서 

그래 너무 순수해서

  발자국의 그림자에도

  아파하고 슬퍼했다.

 

ㅡ박 막시밀리아노 M 꼴베ㅡ

 

 

ㅡ그러므로 너희는 그 행위를 보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마태오7,20ㅡ

 

 

절두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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