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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치고 장고치고..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2 조회수927 추천수5 반대(0) 신고

북치고 장고치고

 

독서: 창세 15,1-12.17-18
복음: 마태 7,15-20

 

가만있는 아브람에게 방패가 되어주겠다, 큰 상을 내리겠다 하시는 주님.
아브람은 "매우 큰 상"을 바로 자식이라고 해석한다.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온갖 피임법을 개발하는 이 시대에 과연 이 말이 공감이 갈까 싶다.

안그래도 다산(多産)이 축복의 제 일 순위 표지였던 시대기도 했기에 그랬겠지만,
그런대로의 큰 부(富)를 이룬 상태로 가진 것을 물려줄 자손은 더욱 필요했으리라.
어떻든 그런 아브람에게 있어, 가장 큰 償이란 일단 '자식'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라"며 보다 넓고 높은 지평을 열어주시는 주님.
''하나''만 있어도 소원이 없을 아브람에게, ''별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시는 주님.
게다가 한술 더떠, 자손 뿐 아니라 땅도 주겠다신다.
땅과 후손, 이미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최초로 불러내실때부터 약속하셨던 것들이다.
어떻든 아브람은 믿었고, 그 믿음을 주님은 갸륵하게(原: 의롭게) 여기셨다.

 

왜 이렇게 거듭 거듭 똑같은 축복을 약속하실까?
아브람이 "내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실은 자식을 낳기에도 버거운 나이였고,
땅을 차지하는 것도 호락호락한 일은 아님은 바로 위의 본문(창세 14장)이 증명하고 있었다.
즉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성읍의 왕들이 지속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땅과 후손, 어느 하나도 쉽게 이루어질 축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이미 믿고 있으나 주님은 그를 갸륵하게 여겨 표징까지 보여주신다.
반으로 쪼개놓은 짐승들, 그 가운데를 지나가시는 주님.
이는 당시 사람들의 계약 의식으로, 만일 약속을 어기는 경우엔,
그 짐승들처럼 쪼개져 죽어도 좋겠다는 맹세가 담겨있다.
그런데 쌍방이 다 가운데로 지나가야 하는 계약 체결 의식에서
주님은 맹세를 하고 가운데로 지나가는데 아브람은 이 신비한 광경을 구경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계약의 뜻은 이렇다.
만일 맹세를 어겼을 경우, 주님은 쪼개져 죽어도 좋다는 것이고, 아브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애초부터 일방적인 계약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얼마나 약속에 불충실한 존재인지 그 본성을 아셨기 때문일까?
아브람에겐 절대로 무리한 요구를 하시지 않는 주님.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겠다고 하시고
그 약속을 꼭 지키겠다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맹세까지 하시는 주님.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 하시는 그분의 속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뭘 얻자고 이러시는 것일까?

 

우리를 세례 때 불러내주신 주님!

그 계약에서 당신이 우리를 상대로 맹세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가시나무 같은 우리에게서 포도를 거두시겠다고

엉겅퀴같은 우리에게서 무화과를 거두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처럼

저희도 좋은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열매로 보답드리고 싶습니다.

사나운 이리의 탈을 벗고 양으로 변신하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약속을 이루십시오.

그것이 저희에게 내리시는 제일 "큰 상"이며 축복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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