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방주(方舟)가 되리라 | ||||||
|---|---|---|---|---|---|---|---|
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5-06-23 | 조회수1,09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
독서: 창세 16,1-12.15-16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자식을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
이런 일은 고대 사회에서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처럼 대리모(代理母)를 통해서 양자를 얻어야 할만큼
그렇게 되자 더 신세가 처량해진 사래, 아브람에게 자기 처지를 하소연해보는데
분수를 모르고 판단착오를 일으켰다가 졸지에 전세가 역전된 하갈.
막상 도망은 쳤으나, 살 길이 막막한 하갈.
생계의 보장도 없는 빈 들판으로 무작정 피신해올 정도의 강인한 성격과 행동파인 하갈.
가나안 주변 사막에서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들나귀처럼 떠돌아 다니며 생활하는 베두윈 족의 강인한 모습은 바로 하갈과 이스마엘의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성서 편집자는 해설하고 있다.
한편, 집으로 돌아간 하갈은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자식을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의 성취자는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주님은 사래의 박대와 아브람의 방관, 하갈의 교만 등을 나무라며
그분 안에서 선택을 받지 않은 이는 사실상 없다. (라하이 로이-"나를 돌보시는 하느님"이란 뜻.: 하갈이 천사를 만난 후 붙인 샘의 이름이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한다고, 그 신앙을 실천한다고 그렇지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고백이, 신앙행위가 가치없다는 말인가? 그렇진 않다. 문제는 뭘 좀 안다고 떠들 것도 없고, 뭘 좀 한다고 안심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사실 아브람을 불러 후손을 주겠다는 축복의 약속은 그에게 특별한 사명, 즉 만인에게 복을 끼쳐주는 사람이 되게하기 위한 선택이었다(창세 12,2). 그의 아들, 이사악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그의 손자, 야곱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그 사명은 하늘의 별처럼 널리 퍼진 그의 신앙의 후손인 우리에게까지 이어져야 할 사명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