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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4 조회수1,101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1독서 이사야 49,1-6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부족들아, 정신 차려 들어라.

 

주님께서 태중에 있는 나를 이미 부르셨고 내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에 이미 이

 

름을 지어 주셨다. 내 입을 칼처럼 날세우셨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나를 벼리시어 당신의 화살통에 꽂아 두시고 나에게 말씀하셨

 

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그러나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헛수고만 하였다. 공연히 힘만 빼었다.” 그런데도 주

 

님만은 나를 바로 알아주시고, 나의 하느님만은 나의 품삯을 셈해 주신다.

 

주님께서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신다. 야곱

 

을 당신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태

 

중에 지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으로서 할 일은,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

 

제2독서 사도행전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 다윗에 대해서는 ‘내

 

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요, 내 뜻을 다 이루

 

어줄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 예수

 

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요한은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하고 세

 

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이 자기 사명을 다 마쳐 갈 무렵에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형제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형제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복음 루가 1,57-66.80

 

엘리사벳은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께서 엘리사벳에게 놀라

 

운 자비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과 함께 기뻐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던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가리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가 나서서 “안 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

 

다.” 하였다.

 

사람들은 “당신 집안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며 아기 아버

 

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가리야는 작은 서판을 달라 하여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이것을 보고 사

 

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즈가리야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

 

려서 말을 하게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모든 이웃 사람들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일은 유다 산골에 두루 퍼져 이야깃

 

거리가 되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 것이 분

 

명했기 때문이다.

 

아기는 날로 몸과 마음이 굳세게 자라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얼마 전에 제가 큰 맘 먹고서 좋은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다는 내용의 새벽 글을 기억

 

하시는지요? 그런데 그때 자전거뿐만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장비를 구비해

 

서 똑바로 타보려고 필요한 물품 모두를 다 구비했답니다. 즉, 자전거 신발, 장갑, 자

 

전거 전용 옷, 그리고 헬멧까지 모두 구입했습니다.


 

처음 자전거와 함께 이것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요. 매일 아침, 헬

 

멧에 장갑 그리고 자전거 전용 옷과 장갑을 낀 뒤에 해안가를 달리는 저의 모습은 상

 

상 그 자체로 행복해졌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답니다. 대

 

신 지금 현재, 반바지 또는 청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등산화를 신고서 자전거를 타고

 

있지요.

그렇다면 제가 왜 그 모든 장비를 착용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헬멧은 제 머리에 맞지 않습니다. 억지로 간신히 끼운 뒤에 거울을 보면, 마치

 

머리 위에 무엇인가를 올려놓은 형상입니다. 그렇다면 자전거 전용 옷은 왜 입지를

 

않을까요? 도저히 민망해서 입지 못하겠습니다. 꽉 끼는 그 옷은 웬만큼 얼굴이 두

 

껍지 않고서는 입을 수가 없더군요. 자전거 신발은 어떻게 신는 것인지를 모르겠습

 

니다. 자전거 페달에 부착을 시키는 것 같은데 어떻게 부착을 시키는 것인지……. 마

 

지막으로 자전거 전용 장갑은 다른 것들을 하지 않고 장갑만 낀다는 것이 이상한 것

 

같아서 그냥 맨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지요.


 

아무튼 저는 이러한 이유로 비싼 값을 치룬 장비들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

 

치 돼지에게 진주를 걸어 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저는 장비를 구입하

 

면 당연히 착용해서 자전거를 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이렇게 자전거만 타게 되더군요.

이렇게 당연히 될 것 같은 것들도 뜻밖의 일로 인해서 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

 

니까? 즉,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입

 

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은 어때요?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당

 

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데 문제는 내 뜻이라는 것이 화려하고 멋진 세

 

속적인 것 안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과연 주님께서 계실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환희를 주시기 위해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그 모습

 

은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아니 어쩌면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내가 싫어하는 친구의 모습으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오십니다. 하지만 그런 주님을 우리는 받아들이

 

지 못할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대신 이 세상의 화려하고 멋진 것만을 따르려고 합

 

니다. 그래서 참 기쁨과 행복을 얻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 전체는 바로 주님의 뜻

 

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부모도, 즈가리아와 엘리사

 

벳 역시 주님의 뜻을 받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나가면서까지 주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노력했기에, 세상의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을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환희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 이 주님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화려하고 멋진 것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될 때 새로운 기쁨과 환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 본명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지요? 그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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