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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64) 그래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5 조회수987 추천수6 반대(0) 신고

 

        그래서

              이순의

 

 

가슴에 가족을 안고 아이들과 동심의 나래를 꿈꾸며 영혼이 맑았던 화가 이중섭에게 생존이라는 현실보다 벅차고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담배의 은지에 철핀으로 그어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고, 모자란 물감을 아끼느라고 그의 그림은 늘 얇은 인상을 남겨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의 비참을 그림속에 담아 승화시켜버린 그도 정신병원에서 처참하게 요절을 하고야 만다. 천재화가 이중섭의 혼백이 돌아와 가난에 쩔어 빈티가 줄줄 흘러 남겨진 그림들의 경매가를 본다면 어찌 생각할까? 죽지 말걸 하고 후회할까?

 

좁은 골방에서 하염없이 날개짓을 하고도 날지 못했던..... 아니지! 확실하게 날아버린 천재적인 글쟁이 이상은 그리도 답답한 심장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싣고 날아야만 했던 것일까?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는 자아를 도취 삼아 견디지 않으면 존재적 가치조차 불투명했던 혼의 몸부림에 절명하여 떨고. 결국 그의 육신도 하염없이 하염없이 펄럭이는 날개짓에 승복해 버리는 결핵병동에서의 사망! 이상의 혼백이 돌아와 날아보지도 못하고 날개짓만 하다가 승하해버린 서럽디 서러운 억압을 초 단위로도 계산이 불가능한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본다면 어찌 생각할까? 죽은 게 억울하여서 각혈이 도질 것인가?

 

어제는 비중이 무거운 묵상글을 쓰느라고 그만 윗옷이 흥건히 젖고, 시선이 두렵고, 마음이 무거웠었다. 아들녀석이 늦게 온다고 하여 안심을 하기는 했지만 혹시 몰라서 하교 시간에 맞추어 마감을 지었다. 그리고 너무 부담스러운 글이니 만큼 또 세례자 요한의 축일인 만큼 그에 맞는 성화들을 고르느라고 소장하고 있는 서적들을 방바닥의 여기저기에 펼쳐 놓고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찜통의 더위 속에서 늘어진 아들이 귀가를 하고...... <미안해. 마칠건데 그림 한 장만 올리면 안될까?> 그런데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써 놓은 글만 입력을 시키고 집을 나서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나 걷다가 어느 PC방에 들어가 수정을 하고, 생각을 했다. 전에는 여자들이 집을 나서면 갈데가 없는데 지금은 찜질방이 있어서 너무 좋다. 찜질방에서 밤중까지 있다가 어미가 자식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무서운 밤중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밥도 국도 그대로이고, 물만 한 병이 없어진! 굶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밤의 이슬에 젖고....... 그런데 라면 국물 자국이 냄비에 흔적으로 남아 보였다. 그래서 또 자식이 고마웁고!

 

이렇게 생각했다. 가뭄에 날을 밝히며 물을 품는 짝궁의 고적함을 달래주느라고 저녁내내 의식이 돌을 때면 짝궁에게 전화를 해서 위로해 주느라고 내 마음이 힘든 내색을 할 수가 없었고, 방향전환을 한 아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엄마가 되어줄 수 없어서 우울한데 자기의 능력 안에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짝궁에게 아들의 걱정까지 짐을 지워줄 수가 없었고, 돌아보니 후회이고 바라보니 암담한데 연일 뉴스는 비참한 인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업친데 덥친다고 한솥밥 먹고 한이불 덮었을 동료에게 총질을 긁어 댔다는 자국의 비무장 지대 안에서 벌어진 암울한 소식까지!

 

고생하는 짝궁에게 헛소리 하지 않는 길은, 입시준비에 힘든 아들에게서 좀 멀어지는 길은, 잠을 자거나 글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올 시간이면 거의 대부분은 마무리를 하는데 어제는 그렇지 못하여...... 아들은 맨날 그렇지 못했다하고.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큰 탓입니다. 한 번쯤은 짝궁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당신도 없이 나 혼자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이 원하는 학교에 실패하고 진학을 못하게 되면 나에게 그동안 뭘 했느냐고 탓을 할 것인지?>라고. <그렇게 많은 돈을 왜 나에게 주지 않았느냐고, 남들이 먹고 도망간 수 억의 돈을 나에게 주었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들녀석이 저렇게 힘들어 하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고>

 

그래도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열심히 열심히 사는 짝궁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 싫어서, 힘들어 하는 아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도, 가장 크게는 우울증에 다시는 빠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라도 글에 몰두를 하고, 사진에 집착을 해 보았을까? 적어도 아들은 그렇게 말을 했다. 그래서 당분간 글을 쉬어야 할 것 같다. 아니지. 언젠가 어느 교우분께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신부님들을 긁으면 하늘이 **엄마한테 천벌을 내릴 것이다고.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밖에 못 사는거라고> 찜질방에 누워 생각하니 어제 쓴 묵상글이 또 하늘의 천벌을 요하는 글이 되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단호한 결심을 했다. 목표한 1004편의 글은 천천히 쓰지. 뭐! 나는 천벌 받을 게 많은 사람인가 보다. 364편의 글이 부끄럽다.

ㅡ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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