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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시의 광야」에 오신 주님
작성자김창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29 조회수1,091 추천수12 반대(0) 신고

   저희 교회에서는 6월에 대구교구에 계시는 배임표 요한 신부님과 홍재근 주간님을 포함한 열두 분의 평신도지도자들을 초청하여 두 차례의 피정을 가졌습니다. 국제 비즈니스와 금융의 중심지로 “도시의 광야”인 홍콩에서 이런 봉사자  피정을 갖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바쁜 일상의 삶을 훌훌 떨쳐버리고 피정을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신청초기에는 지원자가 적었습니다. 주임 신부님께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게 무엇입니까?  생명이지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입원해야 합니다. 사업도 가족도 돈도 소용이 없습니다. 3박4일 입원하는 셈치고 다녀오십시오.”라는 권고 말씀에 그 수가 늘어나 남성 16명 그리고 여성25명이 피정참가를 신청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닥터가 계시는 「주님병원」에 3박4일간 입원환자가 되었습니다. 

 

   봉사자 피정이라니 십년 전의 일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본당의 Y 수녀님께서 제게 다가와 “좋은 선물주신다면 받으실래요?”라고 귓속말을 했을 때 “무슨 선물인지는 모르나 주신다면 받아야죠?”라고 응답한 것이 피정참가를 위한 주님 부르심에 대한 저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피정준비를 하던 저에게 수녀님은 “세면도구와 미사예물이나 갖고 가시면 됩니다. 들어가신 후 마음은 비우시고 주는 것만 담아 오시면 됩니다.”라고 일러주셨지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마태 9:12, 마르코 2:17)는 주님 말씀처럼 저도 환자였던 게 분명합니다. 

 

   홍콩섬 남쪽 스탠리 해변 언덕 위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피정센터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피정은 침묵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세상의 소란함을 피해 한적한 곳에서 침묵하며 묵상에 잠기는 이 시간은 분명 은총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를 묵상하고 또 묵상 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존재하는 그대로, 위선과 가식도 벗어던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동안 남이 알새라 꼭꼭 싸매고 숨기었던 마음의 봇짐을 하나씩 풀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어두운 밤하늘에서 천둥은 그렇게도 요란히 울어대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라고 재촉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갑니다. 주님의 날개 밑 외에는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감출 곳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모습을 내면으로 곰곰이 바라보았습니다.  회개와 용서와 사랑의 삶을 성찰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가? 예수님은 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신 채 조건 없이 용서하셨는가?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을까? 양복바지 가랑이를 나부끼며 성전을 드나들었던 우리는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이윽고 참된 자아를 발견한 진실의 순간에 참회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틀이 지나갑니다.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묵상해 봅니다. 주님께 늘 달라고 청하기만 했던 자신의 삶이 빛이신 하느님 앞에서 드러납니다. 연속극을 볼 시간은 있어도 기도할 시간은 없는 삶을 살아 온 우리들입니다. 각자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세상은 좋아질 터인데, 혼자만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않는다면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될 터인데 말입니다.

 

   고해성사 후 주님을 모시니 은총의 성사임을 실감했고 건성으로 알았던 성체는 주님의 몸이요 생명의 빵임을 깨달았습니다. 은총의 샘에서 솟아오르는 생수를 마시니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만난 지금 우리는 산 정상에 와있는 느낌입니다.  하느님을 만난 진실의 순간에 기쁨의 눈물은 또다시 샘솟았습니다. 

 

  사흘이 지나갑니다. 먹구름에 궂은비가 하염없이 내리더니 마지막 날에는 동녘이 밝아옵니다. 여명이 밝아 오던 때 새벽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교우들의 성가가 천사들의 합창인양 은은히 들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작은 가슴을 다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제 주님과 함께하는 가운데 채우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토록 찾고 찾았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찾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마음은 푸근합니다.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가족의 사랑도, 기초공동체의 나눔도, 교회에의 참여도 소중하기만 합니다. 이웃을 새롭게 발견한 진실의 순간, 주님주신 은총에 감사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사내들도 울었고 자매들도 울었습니다. 참회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을,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분명 주님주신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만을 바라고, 주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위해 작은 사랑도 실천하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만을 믿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주신 사랑의 선물을 거저 받았으니 이웃을 위해 거저 내놓겠다는 다짐을 하고 피정센터를 나서는 우리들에게 가족과 공동체가 보내준 환영의 꽃다발이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주님, 이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당신 보시기에 좋은 종이 되겠으니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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