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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6-30 조회수96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기 12,1-19

 

그 무렵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다. “어

 

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제

 

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

 

길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아브라

 

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거라.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저리로 가서 예배드리고 오겠다.” 하고 나서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씨와 칼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불렀다. “아버

 

지!” “얘야! 내가 듣고 있다.” “아버지! 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

 

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

 

신단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

 

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은 다음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더

 

미 위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

 

하자 주님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마라. 머리털 하나라

 

도 상하게 하지 마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

 

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숫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

 

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야훼 이레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

 

께서 이 산에서 마련해 주신다.” 하고 말한다.

 

주님의 천사가 또다시 큰소리로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

 

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

 

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할 것이다. 네가 이렇게 내 말을 들었

 

기 때문에 세상 만민이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종들이 있는 곳으

 

로 돌아와서 그들을 데리고 걸음을 재촉하여 브엘세바로 돌아갔다. 아브라함은 브

 

엘세바에 눌러 살았다.

 

복음 마태오 9,1-8

 

그때에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호수를 건너 자기 동네로 돌아오시자 사람들이 중풍

 

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

 

풍 병자에게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 사람이 하느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며 수군

 

거렸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어찌하여 너희들은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 주마.” 하시고는 중

 

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하고 명령하시자 그는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을 보고 무리는 두려워하는 한편, 사람에게 이런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

 

였다.




 

어제 식사 후에 신부님들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어떤 신부님께서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 여기서도 새벽 2~3시에 일어나서 새벽 메일을 보내고 있니?”

 

“그럼요. 많은 분들이 보고 계셔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제 새벽 메일은 멈추지

 

않으려고요.”

그 순간에 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어떤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네요.

“조 신부는 사실 컴퓨터 때문에 사람된거지. 조신부가 신학교 다닐 때 얼마나 게을

 

렀는지 몰라요. 매일 늦게 일어나고, 그래서 전례도 자주 빠지고…….”

사실 많은 분들이 컴퓨터로 인한 피해를 많이 이야기하십니다. 게임 중독에 걸려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가정이 파괴되는 경

 

우도 있습니다. 또한 각종 성인물의 범람으로 인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악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컴퓨터는 부정적인 저의 모습을 긍

 

정적으로 바꾸게 해주었던 고마운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어떤 이에게는 부정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이에게는 긍정적

 

으로 다가설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군다나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

 

는 것들이 100%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 부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자체를 100% 온전하게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100%는 아닐 것입니다. 단

 

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몇 가지 부분 때문에, 즉 10% 정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율법학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예

 

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죄

 

의 용서를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예수님의 모든 면을 100% 배

 

척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인간이 넘볼 수 없는 하느님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

 

부분, 죄인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부분, 지도자들이라 말할 수 있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맹렬하게 비판하는 부분, 이러한 부분만을 두고서

 

예수님을 배척했었던 것이지, 모든 부분을 두고서 배척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

 

다. 그래서 율법학자 중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었지요. 그러나 그렇

 

게 배척하는 10%의 마음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습니다.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그 10%의 부정적인 마음이 한 사람을 죽이기도 또 반대로 살

 

리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마음 안에는 얼

 

마나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요? 그래서 그 부정적인 마음들로 인

 

해서 하루에도 몇 명을 죽이고 있는지요?

 

 

     어떠한 일이든 먼저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본 뒤에 판단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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