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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1 조회수1,01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기 23,1-4.19; 24,1-8.62-67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고 키럇아르바라고도 하는 헤브론 땅에서 죽었다. 아브라

 

함은 빈소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

 

아브라함은 시신 앞에서 물러나 헷 사람들에게 가서 청하였다. “나는 당신들한테 몸

 

붙여 사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으나, 내 아내를 안장하게 무덤으로 쓸 땅을 좀 나누어

 

주십시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막벨라에 있는 밭에 딸린 동굴에 안장하였다.

 

그 밭은 가나안 땅으로 마므레라고도 하는 헤브론 동쪽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이제 몹시 늙었다. 주님께서는 매사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아브라함은 집안일을 도맡아 보는 늙은 심복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내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하늘을 내신 하느님, 땅을 내신 주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여라. 내 며느리

 

감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가나안 사람의 딸 가운데서 고르지 않을 것이며, 내 고향

 

내 친척들한테 가서 내 아들 이사악의 신부감을 골라 오겠다고 하여라.” 종이 물었

 

다. “신부 될 사람이 저를 따라 이리로 오려고 하지 않으면, 아드님을 주인님의 옛

 

고향으로 데려가도 됩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내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다니, 그건 안 될 말이다. 고향

 

에서 친척들과 함께 사는 나를 그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시고 이 땅을 내 후손에게 주

 

겠다고 약속하신 하느님, 하늘을 내시고 땅을 내신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

 

내시어 거기에서 내 며느리감을 데려오도록 네 앞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신부감이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한 맹세에서 풀리게 된다. 다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려가지만은 마라.”

 

[세월이 흘러] 이사악은 라하이 로이라는 샘이 있는 사막 지방에 와서 살고 있었다.

 

그곳은 네겝 땅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이사악은 들에 바람 쐬러 나왔다가 고개를 들

 

어 낙타 떼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리브가도 고개를 들어 이사악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들을 가로질러 우리 쪽으로 오시는 저분은 누구입니까?” 종이 대답하였다. “제 주

 

인입니다.” 리브가는 종의 말을 듣고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동안의 경위를 낱낱이 이사악에게 보고하였다. 이사악은 리브가

 

를 천막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다. 이사악은 아내를 사랑하며 어머니 잃은 슬픔

 

을 달랬다.

 

복음 마태오 9,9-13

그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나섰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

 

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

 

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제 오늘 오전을 끝으로 4박 5일간의 사제 피정이 모두 끝납니다. 이 4박 5일간의

 

피정. 너무나 좋았답니다. 피정을 지도해주신 박정일 주교님의 강의도 좋았지만, 무

 

엇보다도 맛있는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성지 일에 대한 걱정 없이 생활했던

 

시간들이 저게 커다란 만족을 가져다주었답니다. 그래서인지 4박 5일간의 피정 기

 

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지고, 4박 5일이 아니라 한 달 정도의 기간으로 피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네요.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목격하면서 초막 셋을 지어서 이곳에 머

 

물자고 이야기 한 베드로의 말이 이해가 되더군요. 그 자리가 얼마나 좋았으면 그런

 

말을 다 했을까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을 간직할 때가 참으

 

로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머물고 싶은 곳, 안주하고 싶은 곳을 떠나 고통과 시련이 가득한 곳을 향해 나

 

아갈 수 있는 용기는 정말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런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박수를 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이 그런 용기를 지니려고 하면 망설여지게 되지요. 그

 

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용기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즉, 자신에게 좋은

 

것, 편안한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힘들고 지칠 지도 모르지만 선(善)

 

을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래서 주님 나라 건설에 한 몫을 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주님의 뜻과는 반대로 용

 

기와 결단을 선택하기 보다는 대신 포기와 좌절을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오라는 세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는 장면이 등

 

장합니다. 사실 이것이 커다란 스캔들이 된다는 것을 예수님 스스로도 잘 알고 계셨

 

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원수라고 말할 수 있는 로마 측에 빌붙어서 세금을 걷는 세리.

 

비록 세속적인 돈이야 많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매국노 역할을 하는 세리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분위기였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그 세리 중의 한 사람을 당신의 제

 

자로 삼는다는 것. 이것은 ‘예수란 작자가 돈을 모으기 위해서 세리를 자기 제자로

 

삼은 것이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소신

 

을 굽히지 않았던 이유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당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

 

지요.

만약 사람들의 시선과 박해가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소신을 굽혀서 당시에 하느님

 

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죄인 평을 받고 있었던 세리, 창녀, 병자들을 만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대신 당시의 의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만을 만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제가 이런 글

 

을 쓰고 있지 않겠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이면서도 편하고 좋은 자리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

 

다. 따라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편하고 좋은 자리만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 할지라도, 그 안에 주님의 뜻이 담겨 있다면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이 모습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

 

이며, 주님께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구하시는 모습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을 기억하면서 자선을 베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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