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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곱의 우물(7월 1 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예수님의 초대) ♣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1 조회수927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3주간 금요일(예수님의 초대)♣


      그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9-13)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
      ◆누가 봐도 회색분자처럼 여기저기서 뜯어낸 세금에 붙어 살아가던 세리들을 곱게 볼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세리들과 한자리에 앉지 않았다는 것이 큰 흉거리도 아니려니와 경직된 율법주의자로 비난 받을 일은 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다인들은 상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쓰린 역사를 지난 우리도 세리처럼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교묘히 이득을 취해 온 사람들에 대해 민족 배신자들로 엄징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예수님의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은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스캔들이 될 것이 뻔한데 그의 집에서 공개적으로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신 걸까요? 이런 일이 하느님 나라 선포에 무슨 이득이 될까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오히려 바리사이들의 힐난에 정면으로 대응하시는 듯한 태도(9,12-­13)를 취하십니다. 당시 유다 지식층에게 예수라는 인물은 검증되지 않은 좀 모호하고 정통성이 떨어지는 인물이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자신들에게 예언서의 말씀을 들이대면서 “그 말씀의 뜻을 배우라” 하고, “선한 사람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습니까?

      더욱이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구원적 요청이 율법을 벗어나는 엉뚱한 곳, 열외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리라는 것은 오랜 유다 전통과 권위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여서 어떤 계층이든 (교회 역시) 질서의 근간이 흔들릴까 두려워하는 사람 들은 대체로 그 질서 위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연한 질서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을 주시하십니다. 아니, 당신 스스로 그들처럼 되셨습니다.

      이유는 기득권자들이 누리던 부를 되받기 위함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질서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움이란 당신 식탁에서는 누구도 밀어내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 모든 이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초대되었으며, 앉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초대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자비입니다.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광주대교구 비아 분원)

        하얀 침묵 손문주 한 밤 기다림으로 피는 꽃 소리없는 발자국 마음으로 들려오면 반가운 눈길로 가슴을 열어둡니다 비어있는 뜨락 잔잔히 물결치는 고운 떨림 그윽하게 젖어오는 사랑고운 향기 살며시 고개드는 수줍음입니다 찬 이슬 곱게 머금어 살짝 미소짓는 얼굴 그리운 님께 안기우는 시간 영원의 날개 펼치는 하얀 침묵의 관상으로 날아오릅니다. ~~~~~~~~~~~~~~~~~~~~~~~~~~~~~~~~~~~~~~~~~~~~~~~~~~~~~~~~~~~~~~~ (소스입니다) <br><UL> <br><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299.GIF></br> </br></UL> <BR><BR></UL><PRE><UL><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연중 제13주간 금요일(예수님의 초대)♣</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B> <B> </B><FONT style ="FONT-SIZE: 10pt" color=red> <P> <BR>그때에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BR> <BR>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라. <U>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U></BR> (마태 9,9-13) <img src=http://www.hicomnet.co.kr/flower/image/k022.jpg width=350 height=350>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ace="돋음체">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darkviolet ace="돋음체"> <BR>◆누가 봐도 회색분자처럼 여기저기서 뜯어낸 세금에 붙어 살아가던 세리들을 곱게 볼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세리들과 한자리에 앉지 않았다는 것이 큰 흉거리도 아니려니와 경직된 율법주의자로 비난 받을 일은 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다인들은 상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쓰린 역사를 지난 우리도 세리처럼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교묘히 이득을 취해 온 사람들에 대해 민족 배신자들로 엄징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예수님의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BR> <BR>왜 하필이면 예수님은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스캔들이 될 것이 뻔한데 그의 집에서 공개적으로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신 걸까요? 이런 일이 하느님 나라 선포에 무슨 이득이 될까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오히려 바리사이들의 힐난에 정면으로 대응하시는 듯한 태도(9,12-­13)를 취하십니다. 당시 유다 지식층에게 예수라는 인물은 검증되지 않은 좀 모호하고 정통성이 떨어지는 인물이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자신들에게 예언서의 말씀을 들이대면서 “그 말씀의 뜻을 배우라” 하고, “선한 사람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습니까?</BR> <BR>더욱이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구원적 요청이 율법을 벗어나는 엉뚱한 곳, 열외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리라는 것은 오랜 유다 전통과 권위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여서 어떤 계층이든 (교회 역시) 질서의 근간이 흔들릴까 두려워하는 사람 들은 대체로 그 질서 위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연한 질서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을 주시하십니다. 아니, 당신 스스로 그들처럼 되셨습니다.</BR> <BR>이유는 기득권자들이 누리던 부를 되받기 위함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질서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움이란 당신 식탁에서는 누구도 밀어내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 모든 이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초대되었으며, 앉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초대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자비입니다.</BR>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광주대교구 비아 분원)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 color="#5a6a1f"><UL> 하얀 침묵 손문주 한 밤 기다림으로 피는 꽃 소리없는 발자국 마음으로 들려오면 반가운 눈길로 가슴을 열어둡니다 비어있는 뜨락 잔잔히 물결치는 고운 떨림 그윽하게 젖어오는 사랑고운 향기 살며시 고개드는 수줍음입니다 찬 이슬 곱게 머금어 살짝 미소짓는 얼굴 그리운 님께 안기우는 시간 영원의 날개 펼치는 하얀 침묵의 관상으로 날아오릅니다. <Embed src="http://see.youngnak.net/full/s003/board/db_00/upfile/A5-11. 살아계신_주(W.J.Gaitner).mp3" autostart=true volume=0 loop=-1 width="300" height="40" style="border:2pt 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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