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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7 조회수1,240 추천수7 반대(0) 신고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수경사' 아동학대가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수경사 미담보도를 했었던 방송3사가 일제히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방송사들은 요즘은 어느 보육시설의 아동학대건을 또 일제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가정에서의 아동학대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남한테 무시당하고 맞아도 억울한데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 가족들한테 이런 범죄행위를 당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아마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불쌍한 이 어린이들의 인권을 보호하시기 위해 이런 가르침을 펼치신 것이 아닐까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 9, 37)

  어린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비가 아닌 나방(?)이 되어버린 나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고 학대받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애벌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들을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것은 아예 그들의 날개를 뽑아버리거나 잘라버리는 잔인한 행동과 기억이 되어  그들은 결코 나중에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리고 날개짓을 잘하여 잘 나는 나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이들이 건전하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그들을 보호해주고 양육해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부정적인 나비효과’를 막으려면 말입니다. 참고로 영화 ‘라디오 플라이어’와 ‘나비효과’에 관한 글들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라디오 플라이어>


  1969년의 어느 시골마을, 마이크와 바비는 남편과 이혼한 엄마 메리와 함께 장거리 여행 끝에 서부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혼자몸으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지친 메리는 재혼을 하였는데, 스스로 ‘왕’이라 불리길 좋아하는 알콜중독자인 계부는 차츰 마이크와 바비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자신들의 환상속의 세계를 비참하고 가혹한 현실에서의 탈출구로 삼는다. 자기들만 알고 있는 모험의 나라, 동물들이 말하고 괴물들이 사는 집을 짓고 용이 날아다니는 신비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가다가 어느날 특히 늘 술에 취해 있는 계부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은 동생 바비는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형과 충견의 도움을 받아 장난감을 개조하여 만든 작은 비행기를 만들어 타고 그 집을 탈출하여 나중에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나비효과>


   끔찍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에반 (애쉬튼 커처 분). 그에게 남은 것은 기억의 파편들과 상처입은 친구들. 에반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예전의 일기를 꺼내 읽다가 그 일기장을 통해 시공간 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에반. 그것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미치도록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사랑 켈리와의 돌이키고 싶은 과거,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들을 고쳐 나간다. 그러나 과거를 바꿀수록 더욱 충격적인 현실만이 그를 기다릴 뿐, 현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주: ‘나비효과’란 중국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tz)가 생각해내어 카오스 이론의 출발점이 된 이 원리는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를 뜻한다.

              


                              <영화 ‘나비효과’를 보고>


   ‘나비효과’는 얼마 전, 비디오로 보았던 영화이다. 애쉬튼 커쳐가 주연으로 나온 이 영화는 주인공이 어릴 때 받았던 끔찍한 상처를 회복하고 고쳐나가려는 시도들을 하나씩 현실로 재생해보는 영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마도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 과거로 되돌아가 상처를 회복시키고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도 고쳐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현실은 인과관계의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촘촘히 얽혀있어서 하나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치유시키면 그것에 따르는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고 내어놓아야만 하는 또 다른 아픔과 한을 수반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결국 현재의 상황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더 큰 아픔과 예상치 못한 더 큰 상처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이르러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그 엄청난 파장을 경험한 주인공은 마침내 과거의 어느 것도 복구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커다란 희생 -자기 생명? 또는 사랑하는 이와의 결별?-을 결심하게 된다. (결말을 이끄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영화를 봐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임)


   어떻든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를 리모델링 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갈라진 성벽을 수축하는 자', '허물어진 집들을 수리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 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 준다면, 과거의 리모델링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그 위에 튼튼히 세워진다는 것이다.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 오리라"

  그것은 비단 한 개인의 전 생애(과거, 현재, 미래)의 재건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 전 이스라엘에게 파급되어야하는 건설이라고 예언자는 말한다.

  "너의 아들들은 허물어진 옛 터전을 재건하고, 오래오래 버려두었던 옛 터를 다시 세우리라."

  복음에서는 병자를 고쳐주시러 오신 의사, 죄인을 회개시키러 오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이분이 죄인을 회개시키러 오시는 이유도 분명하다. 죄인을 오늘 제자로, 사도로 삼는 의도는 그에게 베풀어진 치유와 구원을 그를 통하여 다른 죄인들에게도 베풀라는 것이 아닌가. 한명을 선택하고 구원하는 것은 다른 모든 이의 축복의 샘이 되라는 아브라함의 소명(창세 12,2-3)으로부터의 일관된 주님의 호소이다. 

  나비효과! 이 영화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부정적으로 이끌어졌으나 주님 안에서는 숱한 허물과 상처의 바로 그 슬픈 언덕 안에 다른 이를 위한 풍성하고 맑은 축복의 샘이 묻혀 있다고 오늘 독서와 복음은 외치고 있다!

한 명의 회개는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한 회개로.

한 명의 구원은 다른 모든 이들의 구원으로.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은

그렇게 세상 모든 이를 위한 날개짓으로 전파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또다시 이 죄많은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

 -‘이인옥님의 묵상글’ 중에서-


                                                             (이현철 /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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