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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른 번의 가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9 조회수1,176 추천수11 반대(0) 신고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마태오 복음 13장 1-23절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서른 번의 가출>


어려움에 처한 여자청소년들을 위해 사목하시는 존경하는 수녀님께서 체험하신 일입니다.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아이였을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도 엄청 많은 상처를 받아온 아이였겠지요. 아무리 기를 써도 그 상처가,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필요 했던가 봅니다. 아이는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다른 아이들에게 미칠 악영향, 가출할 때 마다 파생되는 심각한 문제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들, 성가시기도 할텐데, 수녀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가출한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수녀님, 저예요.”

“응, 너구나. 지금 어디니?”

“**예요.”

“거리 가만 있거라. 내가 바로 나갈게.”


수녀님께서는 아이에게 왜 나갔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왜 거기 있었는지도 묻지 않으십니다. 기쁜 마음으로 데려오는 것,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 그것만 하십니다. 수녀님은 어떤 면에서 씨 뿌리는 농부이십니다. 살아계신 돈보스코이십니다.


농사 중에 가장 큰 농사, 가장 중요한 농사는 사람농사입니다. 언제나 물이 새는 것 같습니다. 무의미한 투자 같습니다. 도저히 싹이 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람농사의 특징은 그 속도가 아주 느리다는 것입니다. 아주 천천히 씨앗이 발아됩니다. 싹이 올라오는 속도가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립니다. 성장도 어찌 그리 더딘지요. 그래서 사람농사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저희 수도원 뒷마당에는 꽤 넓은 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그 밭은 당시 저희 아이들과 수사님들 삶의 일부였습니다. 이른 봄부터 저희는 그곳에 매달렸지요. 땅을 갈아엎고,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농약도 치고 잡초도 뽑으면서 땀도 많이 흘렸지요. 그 오랜 투자 끝에 가을이 오면 저희 모두는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릅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던 탐스런 가을의 결실들이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는 정말 신기해했지요.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봄에는 우리들 눈에 제대로 띄지도 않는 씨앗 하나, 키가 한 뼘도 되지 않던 가냘픈 묘목 하나가 자라고 또 자라서 마침내 아이들의 키를 넘어섰습니다. 가을이 되면 뒷마당은 얼마나 풍성했는지, 그 그늘에서 아이들은 숨바꼭질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씨앗의 수백 배 수천 배 크기로 성장한 가지들에서는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열매들이 수도 없이 계속 결실을 맺었습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변화는 씨 뿌리는 사람들-부모나 교사-들의 인내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아무리 부족해보이고, 아무리 맛이 갔다 하더라도 수확하실 분은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꾸준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변화에 가장 좋은 밑거름입니다.


풍성한 인생의 결실을 위해 기나긴 겨울날들을 잘 견딜 필요가 있겠습니다. 봄날의 투자도 필요하며, 여름날의 땀은 더욱 중요합니다. 풍성한 결실은 좋은 생각이나 계획만으로는 불가능하지요. 하루 온종일 빈둥거리며 공상만 하면서 지내다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회색빛 가을뿐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릴 곳을 달린 바오로 사도의 황혼이 그리도 아름다웠던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잘 견뎌낸 우리의 가을 역시 가슴 설레고 흐뭇한 가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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