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0 조회수1,617 추천수13 반대(0) 신고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마태오 복음 10장 34절-11장 1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어제 한 아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직 새파란 나이임에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꾸부정한 어깨에, 잔뜩 주눅이 들고 삭은 얼굴로 찾아오니 마음이 짠해왔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이제는 더 이상 방황은 없다며 굳은 각오를 세웠지만, 와 닿는 현실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습니다. 취직하는 곳 마다 뭔가 꼬여서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쫓기다시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고 있는 십자가가 너무 커보여서 어떻게 무게를 덜어줄 수 있나 어제 하루 온종일 걱정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녀석이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어깨 딱 펴고 힘내라고, 잘 될 거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지만, 피식 웃고만 있었습니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이렇게 말해서 저는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무도 날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다시 ‘그 곳’으로 들어가는 게 오히려 편할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자리든, 있을만한 곳이든 조만간 알아봐주겠노라고 타일러 겨우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짠한 마음이 들어 혼났는데 오늘은 또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전국 소년원, 분류심사원 천주교 봉사자들의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멀리 제주에서부터, 춘천, 부산, 대전, 서울 등등 안 온 지역이 없었습니다.


이분들이 하시는 봉사는 조금 특별한 봉사입니다. 주말마다 갇혀 있는 아이들을 찾아갑니다. 들개처럼,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이 세상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일 곳 없어 방황하다가 그곳까지 온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심각합니다.


많은 경우 이렇습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을 버렸습니다. 가족친지들은 남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 살기 바쁩니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한명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 봉사자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다가갑니다. 그저 아들 같아서, 너무나 짠해 보여서, 무엇 하나라고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십니다.


주말마다 열심히 아이들을 찾아가지만 회의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닐텐데,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닐텐데...그래도 꾸준히 찾아가십니다.


기껏 어렵게 쪼갠 시간, 설레는 가슴으로 찾아갔건만 쓰라린 가슴만 안고 돌아온 날도 많았을텐데...그래도 10년 세월 한결같이 찾아가십니다.


또 어떤 봉사자께서는 오랜 염원이었던 출소한 아이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여 갈 곳 없는 10여명의 아이들과 오순도순 살아가고 계신답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십자가인 문제청소년들을 그저 내 몫이려니 생각하고 기쁘게 자신들의 등에 지고 열심히 걸어가시는 봉사자분들의 삶이 참으로 대단해보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적군인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찾아가셔서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한 곳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일깨워주시는 봉사자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는 분들, 잠시 스쳐지나가는 만남이지만 혈육 못지않은 진한 사랑을 나눠주시는 분들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자기 십자가뿐만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놓은 십자가 까지 묵묵히 지고 걸어가시는 우리 봉사자들의 삶이 더욱 고귀하게만 여겨집니다.


자기 십자가 지기에도 너무 힘겨워 허덕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자기 십자가도 지기 싫어서 난리들인데 상처받은 아이들의 십자가까지 자신의 십자가에 얹어 기꺼이 지고 가시는 우리 봉사자들의 모습이 유난히 사랑스러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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