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유혹에 단련된 사람
작성자김창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1 조회수1,050 추천수5 반대(0) 신고

   어린 시절 봄이면 늘 양식이 모자라 때때로 맛없는 나물밥도 먹어야 했지만 여름방학이면 옥수수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오학년 때라고 기억됩니다.  어느 여름날 어머니께서 텃밭에서 기른 옥수수를 한 바구니 따다가 점심때 삶아주셨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몫을 따로 사발에 담아두고 식구수대로 두개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배고프던 시절이라 누렇게  잘 익은 찰옥수수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죠.


  “어머니, 앞으로 말 잘 들을 테니 하나만 더 주세요, 네?”하고 나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며칠 후 더 많이 따면 더 줄 테니 그만 가지고 가거라.” 하셨지만 난 계속 졸라댔습니다.  “그러면 내 몫을 네게 하나 더 주마.”하시며 하나 더 주시 길래 냉큼 받아들고 물러섰는데 뒤늦게 보니 어머님께서는 알이 듬성듬성 박힌 것을 하나 잡수시고 계셨어요.


   며칠 뒤 장날 아침에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님께서 장에 가시려고 장롱 속에서 옷을 꺼내시다가 종이에 싼 옥수수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삽시간에 오남매가 어머님 앞에 호출되어 추궁을 당하게 되었지요.  “누가 그랬냐?”동생들 셋은 모두 “저는 아니에요.”라고 고개를 내저었고, 형은“제 몫은 다 먹어치웠어요.”라고 대답하니 범인은 얼굴이 새빨개진 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몫까지 받던 날 옥수수를 나중에 먹겠다고 몰래 장롱 속에 감추었다가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거든요.  어머니께서는 “너, 매를 맞을래 아니면 다음에 하나 덜 먹을래?”하고 물으셨을 때, 저는 매가 무서워서 “다음에 덜 먹을래요.”라고 대답하고 위기를 넘겼습니다.  며칠 후 옥수수를 삶았을 때, 다른 식구들은 둘씩 받았지만 나는 하나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고인 저를 바라보던 어머니께서는 드시던 것을 반쪽 부러뜨려 주시면서 “앞으로 욕심 부리면 못 쓴다.”라고 타이르셨어요.


   어린 시절 배가 고파서인지 식욕이 왕성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음식의 유혹을 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입는 것이 또 문제였어요.  아내 옷은 제쳐두고라도, 단벌신사 소리를 듣지 않고 철따라 세탁해서 옷을 갈아입자니 양복만도 최소한 여섯벌이나 있어야 했고, 잠옷, 와이셔츠, 넥타이, 구두, 조깅화, 축구화, 운동복, 등산복, 방한복, 등등... 돈쓸 일만 생겨나더군요. 


   옷 걱정이 잊혀지니 집 문제가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셋방살이 사년에 13평 아파트를 구했고, 부금을 꼬박꼬박 넣어 17평을 분양 받아 이사한 뒤, 몇 해가 지나서 은행대출을 받아  25평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의 행진이 계속되다 보니 옆 돌아볼 틈조차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사내대장부로 세상에 왔으면 출세 한 번 하여 죽어서 무덤가에 비석이라도 세워야 한다.”라는 말을 제가 입버릇처럼 하던 터이라 인사철 마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요. 


   식욕에서 물욕으로, 소유욕에서 명예욕으로 치닫는 '유혹의 사슬'에 얽매여 사는 것이 인생살이인지는 모르나 살다보니 유혹은 그칠 새가 없었답니다.  하나의 유혹이 왔다 가면 또 다른 유혹이 나타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유혹을 어찌 끊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주보성인인 세례자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며 동굴에서 살면서도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마태3,1-4)하면서 큰 소리 치고 성인답게 살았는데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이란 말입니까?


   뱀이 유혹한 에덴동산의 나무열매가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탐스러웠듯이 유혹은 분명 위장한 가면을 쓰고 우리를 시험하고 있으니 누구도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저 역시 유혹의 늪에 빠져 엎어지고 자빠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몸은 유혹에 빠져 상처투성이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유혹을 격고 보니 유혹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아요.  처음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조금 지나면 상상이 따르고, 더 지나고 나면 호기심과 쾌락에 빠져, 끝내는 유혹에 동의하고 말게 되더군요.  그러기에 유혹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 초기에 격퇴하는 게 상책인 줄 압니다.  또한, 유혹의 초기에 마음의 일관성이 없어 흔들리는 게 문제입니다.  방향키가 없는 배가 풍랑을 만나면 출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광야에서 세 번의 유혹을 받으셨던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므로 하느님만을 믿고 세상을 이긴 주님께 “유혹에 빠지지 않게”기도로 청원하면서 용기 있게 유혹과 맞서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황금이 불에 의해 단련된다면 깨끗한 사람은 유혹에 의해 단련되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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