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구하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작성자권태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3 조회수936 추천수5 반대(0) 신고
 

얼마 전에 평화시장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도시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고 있었던 지게를 진 사람을 보았다.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든지 “어! 어! 저 지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동그랗게 말린 양복천 같은 모직 롤 여러 개를 지게 위에 얹은 그 사람은 전시관 유리창 안에 있던 지게가 갑자기 밖으로 나와 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여서 내가 어,어! 하며 놀라는 사이에 상인들이 통로에 내 놓은 상품과 인파로 붐비는 비좁은 틈새를 요리조리 지게를 돌려가며 잽싸게 빠져나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계화가 되기 전까지는 지게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운반수단이며 기구였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나 들일을 하러 나갈 때는 물론이고 도시의 역 앞이나 시장에는 항상 지게로 짐을 날라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경운기에 밀려서 농촌에서조차 구경하기 힘들다는 지게를 보니 마치 옛날 어릴 적 고향친구를 서울거리에서 만난 것처럼 반가우면서 기억 저편의 내 아린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지게를 한번 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키가 작아서 어른들이 쓰는 지게는 멜빵끈을 아무리 조정해도 지게 다리가 땅에 질질 끌려서 질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일꾼(머슴)이던 용선이 아베에게 나한테 맞는 지게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계속해서 졸라댔다. 그 아베가 동네 목수 일을 하는 분에게 부탁을 해서 내 몸에 맞는 지게를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그게 얼마나 좋던지 수시로 어른들을 따라 산에 나무를 하러 가기도 하고, 학교에서 여름방학 숙제로 내 준 퇴비용 풀을 지게에 한 짐 가득히 지고 학교 운동장에 가지고 가서 아이들을 놀래켜 주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겨우 멜빵으로 묶어서 풀단을 어깨에 지고 왔으니 풀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게에 차곡차곡 얹어 갔으니 다른 아이들 몇 배나 많은 풀을 갖다가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게를 생각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은 내 어릴 적의 추억보다도 나이가 들어서 어떤 분에게서 들은 지게에 얽힌 다음과 같은 실화 한 토막이 먼저 떠오른다.


그분이 6.25 직후 공군부대 중대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다. 상부의 명에 의해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구월산 정상에 레이더 기지를 건설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부대원 약 60명을 이끌고 현장에 갔다 한다.

그때가 여름철이었는데 산악지대의 이상기류 때문에 미군 헬리곱터가 아무리 산 정상에 레이더 자재를 내려놓고자 시도를 해도 접근이 불가능하여 결국은 레이더 자재를 몽땅 산 중턱인 8부 능선에 내려놓고 기류가 좋아지는 9월에 그것을 다시 날라 주겠다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미군 레이더설치기술 고문관이 파견 나와 있어서 이들이 만약에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설치가 어려우니 무조건 8월 중순까지 기자재 운반을 끝내라고 계속해서 닦달을 했다.

생각다 못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부대원들에게 지게를 지게 해서 레이더 몸체를 제외한 부속품일체를 우선 산 정상에 올려놓았다 한다.

그리고 나서 레이더 몸체를 운반하기 위해 미군 헬리곱터가 다시 날아와 몇 번 더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포기를 하고 되돌아갔다. 전파저항이 크기 때문에 레이더 몸체는 분해를 하거나 용접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니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는데도 상부에서는 계속 독촉을 하고 그로서는 숨이 막혀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하들에게 산 정상을 향해 레이더 몸체가 지나갈 수 있는 폭으로 길을 내라고 명령했다. 거추장거리는 나무는 모조리 베어내고 바위나 돌은 폭파를 해서 비록 가파르기는 하지만 넓은 직선 길을 냈다 한다. 그리고는 지게 20개를 제작하여 옆으로 나란히 병열연결을 해서 부하들에게 그 빈 지게를 지게하고 하나!, 둘!, 하는 구령을 붙여가며 보조를 맞춰 산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훈련을 했다.

10여 일간 아침저녁으로 계속해서 반복훈련을 시킨 다음, 드디어 D-day에 기중기로 레이더 몸체를 20개의 지게 위에 얹고는 20명의 부하들이 그걸 지고 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비탈진 길을 한발 한발 옮겨놓는 부하들을 보며 목이 메였다 한다.

끝내 산 정상에 그 것을 내려놓고는 부대원 들이 감격하여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려가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며칠 뒤 헬리콥터가 뜬 사실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옮길 수 있느냐고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던 미군고문관들이 현장에 와서 연결된 지게 20개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원더풀 코리언 지게 넘버 원” 하면서 “이런 정신이 있는 한 한국은 이 전쟁에서 분명히 이길 것이며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다”하며 감탄하여 마지 않더라는 얘기이다.

가끔은 곤경에 처한 친구나 후배들에게

“방법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새로운 길이 반드시 열린다.”는 뜻의 격려나 충고를 할 때마다 내가 자주 써먹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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