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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70) 봉구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8 조회수99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7월18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ㅡ출애굽기14,5-18;마태오12,38-42ㅡ

 

    봉구야

         이순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낮시간! 골목의 승객들은 제 각기 우산을 들고 젖은 신발을 옮기느라고 무거웠다. 그런데 우산도 없는 젊은 아주머니가 저쪽 모퉁이를 돌아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모두들 우산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그 여인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절박하든지 다들 한 번쯤은 경험이 있었던 듯이 혀를 차기도 하고 발길을 비켜주기도 하며 남의 일 같지가 않아 하느라고 일심이었다.

"봉구야. 봉구야. 우리 봉구 어디갔니? 엄마 여기있는데 우리 봉구 어디갔니?"

 

나도 내 아이 어렸을적에는 유달리 개구쟁이였던 녀석을 종종 잊어버리고 꼭 저렇게 저 모습으로 정신을 놓고 소리만 지르며 골목을 뛰어 다녔었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무조건 소리만 크게 지르면서 방향도 촛점도 의식도 없이 무조건 뛰어만 다녔다. 다행히도 내 아들로 살으라는 인연이었는지 남들이 찾아서 안겨주는 게 내 아들이 분명했다. 그러니 비 오시는 날의 젊은 여인의 절박한 목소리와 뜀박질은 골목의 한 낮 승객들에게 충분히 동정심을 사고도 남는 분위기였다.

 

"어이구 애를 잊어버렸구만! 쯧쯧쯔!"

"아그들을 키울적에는 저런 참이 있지. 에미 간장 녹이느라고..."

"근처 어디에 있어. 다 찾다가 보면 어디서 찾아도 찾아."

일시의 순간이지만 우산의 대열들은 골목 가장자리로 비켜서 세로 정열을 하고 그 엄마에게 고속도로를 뚫어주고 있었다. 마침 레지오 회합이 있던 날에 회합을 마치고 돌아가는 교우들이 골목안의 대다수의 승객들이었다. 봉구 엄마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승객들끼리는 서로 안면이 있는.....

 

그런데 뚫린 고속도로의 저 편에 봉구가 보였나보다. 자지러지는 엄마의 괴성이 군중의 청력을 관통하고, 승객들의 시선은 봉구 엄마가 바라보는 쪽으로 일제히 꺽어졌다. 아이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이산의 상봉이라도 목격하려는 듯이 또릿한 눈망울들을 집합시킨 것이다. 그런데 골목의 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산들은 다시 봉구 엄마쪽으로 방향을 틀고..... 봉구 엄마의 눈에는 봉구가 보였을까?! 뜀박질 하던 봉구 엄마는 급제동을 걸은 브레이크장치 처럼 멈추어 서서 더 세차고 확실하며 단음조로 봉구를 불렀다.

"뽕구야!"

 

우산을 쓴 군중의 틈바구니에서 깜찍한 옷을 입은 주먹만한 강아지 치아와가 쫄래쫄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봉구 엄마는 초스피드 로켓 발사포 처럼 뛰어가 봉구를 번쩍 들어 안더니 쪽쪽쪽 뽀뽀를 하고 있었다. 골목이라는 차에 탑승한 승객들의 이마가 찌푸려지고 있었다.

"봉구가 개야?!"

"나는 애를 잃어버린 엄마인 줄 알았네."

"저 엄마 가슴 타는 소리에 내 가슴이 철렁했는...."

 

성당 교우들끼리인 골목안의 승객들은 서로 눈 인사를 나누며 이내 흩어져 갔다. 그런데 얼마나 가슴이 아리든지! 가슴이 너무 아려서 봉구 엄마가 미워지고 있었다. 봉구 엄마가 봉구를 얼마만큼 사랑하든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가슴으로 원망스러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온 세상이 젖어서 무거운 날에 철철 비를 맞으며 넋을 놓고 봉구를 외치던 엄마의 사랑이 개였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너무나 슬프게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개만도 못한 것 같은 서글픔에......

 

어머니께 쉬엄쉬엄 운동 삼아서 폐지를 주으시라고 했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마땅히 벗해 드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성당의 미사에 재미를 붙이실 분도 아니고, 내가 넉넉하여 호위호식을 시켜드릴 형편은 더욱 아니고. 그래서 암묵적으로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더구나 시어머니라는 위치가 며느리의 말을 그리 호락호락 하여 듣지도 않는 것이 인간의 구조이다. 얼마 전에 모아 놓은 폐지들을 갔다 드리러 어머니 집에 들렸더니 주차장 뒤편으로 고물장수 집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집 주인도 싫어 하겠지만 같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불평도 만만치 않을 게 며느리인 내 눈에도 훤히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걸 말씀 드려봐야 노인에게 섭섭한 구실만 될 것이고, 그냥 돌아와 버렸다. 다음에 또 갔더니... 아마도 누군가는 쌓아놓지 말라는 소리를 했을 것이다. 드디어 어머니는 리어카를 하나 꿰차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눈살 찌푸리는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그런 어머니 자신을 정당화 하셔야 맞다.

"쪼끔씩 갖고 다니나 많이 갖고 다니나 매 한가지인디 나는 리아까가 훨씬 편해야."

 

나는 그런 어머니께서 말린다고 해서 들으실 분이 아니란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돌아와버렸다. 내가 운전하는 차의 실내 거울에 어머니와 리어카가 멀어지고 있었다. 큰오빠가 차를 주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 유지비 때문에 나에게 걱정을 표현하셨다. 기름도 비싸고 세금도 내야하고... 그런 소리는 누가 어머니께 고해드리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거울 속을 보면서 내 인생의 이중성에 너무나 벅차서 그대로 차를 몰고 나가서 고속도로 어느 절벽에라도 처박고 죽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고 보험료라도 타서 어머니랑 어머니 아들이랑 호위호식 하게 해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는 내 친정엄마가 너무 억울하고, 내 큰오빠랑 내 새언니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릴 것 같아서 그냥 살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와 마음을 가라 앉히고 생각해 보니 "너는 아직도 친정에서 살리고 있지 박서방이 너를 살리고 있지 않다"는 내 친정엄마의 말씀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차량 유지비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한 것도 짝궁의 힘으로 나를 살려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불편한 심기를 억지로 억지로 누르고 누르고 있었는데..... 비가 추적추적 오시는 날에 미사참례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오는데 산더미 같은 폐지를 싣고 어머니의 리어카가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일흔 넘은 시어머니는 살아보겠다고 리어카 끄집으며 폐지 줍는데 며느리년은 성당에 앉아서 찬송가나 부르고 앉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하나의 모습으로 내가 어머니의 아들과 사느라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몸부림 쳤는지, 왜 망가져버렸는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짝궁과 살고 있는 최대의 굴욕감이다. 배우자의 모든 것이 나로하여금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 시켜버리는!

 

그리고 다시 평일 미사에 가지 않았다. 외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짝궁에게 알렸다. 그런데.... 

"자네 결혼해서 우리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렸어도 그러시든가! 외할머니랑 똑 같제?"

"아니오. 당신 외할머니는 당신 외삼촌이 집도 있고, 생활도 있고, 또 자식이랑 함께 산다는 마음의 여유도 있어서 골목대장하시느라고 하신 일이시니까 천하지나 않았어요. 당신 어머니는 천해요. 아들이 넷이나 있는 당신 어머니가 아들이 하나였던 당신 외할머니 보다 훨씬 천하고 천해요."

 

어머니의 생활비를 드려야할 날자가 지났다. 하늘의 도움이 언제나 짝궁의 척박한 인생에 시련이 먼저라서 소출이 가뭄에 타더니 이어서 물에 녹아버렸다. 전화소리에 짝궁은 웃고있지만 나는 감각으로 알고있다. 타고 녹았으면 생활비가 송금되어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그래서 숨이 넘어가도록 참아야만 한다. 아들도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있다. 아들도 참고 견디어야한다. 전에처럼 융통을 하여 구하지도 않는다. 미련하고 멍청하도록 참아버린다. 짝궁이 나에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언니의 수술로 친정식구들에게 또 발각이 되었다.

 

주고 가시고, 또..... 어머니의 생활비를 먼저 봉투에 담았다. 언제나 척박한 장남인 짝궁과 살아오면서 늘 이런식으로 살아왔으니까. 없으면 안해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 짐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시동생이 술집의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이 나를 실러왔을 때도 나는 가진게 너무나 없었는데 거절하지 못하고 야밤에 집 주인을 깨웠었다. 시동생이 수 년동안에 장부정리 한 번을 하지 않았어도 해고하지 못하는 짝궁과 늘 싸우기만 했었다. 시동생이 상다리로 나를 때렸어도 내가 너에게 맞으려고 내 엄마가 배아파서 나를 낳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아들이 능력이 그 뿐이라서 이렇게 산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했으니 19년을 살은 나는 목숨 줄이 골백번을 이어졌다가 끊어졌다가 했는데, 시댁식구들은 나와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하고..... 늘 방랑자인 짝궁은 언제나 내 곁에 없었고, 나 혼자 융통하여 이러고 저러고, 벌어오면 갚고, 그래서 이번에도 새언니께서 퇴원하는 날에 큰오빠가 주고가신 일련번호가 쫘아악 가즈런한 신권 푸른지폐 스므 장을 세어서 따로 봉투에 담았다. 그러고나니 얼마나 얼마나 억울하든지..... 20년이 다된 세월을 그런식으로 살아왔으니 얼마나 서러워서 그만 짝궁에게 섭섭한 전화를 하고 말았다.

"너네 어머니 생활비 큰오빠가 주신 돈으로 담아두었다."

 

"내 팔자가 기구해서 누구 탓도 할 수 없고. 우리 자식이 고3인데 내 심정도 죽을지경이네. 이 비가 멈추고 나면 금방인데 이 순간을 넘기기가 이렇게 힘이드네. 그러니 처가 식구들이 고3인 우리 자식 보아서 줬지, 나나 우리 어머니 보아서 줬것는가?! 없어서 못 주는셈 치고 그냥 둬! 자식은 키워야 될거 아닌가?! 몇 일 늦는다고 어머니가 죽는당가? 막상 어머니야 돌아가시면 묘 자리 봐뒀는디 묻으면 되지만 자식은 그게 아니잖어?! 내가 주는 돈도 아니고 처가에서 준 돈인데......"

 

그래서 어머니의 생활비를 아직 드리지 못했다. 아니 나도 이제는 드릴 수가 없었다. 내 자식이 돈이 필요하다. 너무나 필요하다. 부모로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주어야 하는데 그 또한 하늘이 허락을 하시지 않으시고...... 그리고 나는 또 이중성의 인생고에 고달프다.

자식을 위해 어머니께 먼저 드리지 않았다는.

어머니는 리어카를 끄집으며 폐지를 줍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는.

나는 일하지 않는데 친가의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그런저런 갈등들로 여름장마가 고단한데, 성당에서 찬송을 부르고 나온 내 자신이 어머니의 리어카 앞에서 굴욕감이 들어 치를 떨었는데, 봉구엄마는 작은 개새끼 한 마리에 혈색을 잃었던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그 골목에 올라탄 승객들의 심장도 놀랐을 만큼 봉구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것이었다. 그럴때 나는 생각해 보았다. 저 봉구엄마는 시어머니가 없어져도 저토록 간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찾아서 저렇게 뽀뽀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어머니 뿐만 아니라 친정어머니를 잃어버려도 저렇게 못할 것 같아서 개를 키우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또 그에 따른 이중성의 잣대로 괴로워 할 것이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봉구 같은 개를 영원히 키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짝궁하고 살면서 내가 먹물이 많이 듦을 괴로워 하고, 자식을 두면서 천하디 천한 여인인 어머니의 삶을 보고 괴로우며, 무식한 시동생들을 보면서 내 노력이면 그들이 달라지는 줄 알았는데...... 결론에는 내가 미친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큰오빠의 배려로 운전을 하면서도 지금의 내 본분을 생각하면 낭떨어지 절벽에 가서 죽어서라도 보상금을 챙겨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또 괴로운! 그렇다고 내 친정 엄마랑 동기간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죽을 수 없어서 또 슬픈!

 

하하하하하하!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고..... 핑계가 이렇게 많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핑계 때문에 살아 있었다. 그것이 태초의 인간이 나에게 마련해준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그 덕택으로 고행하며 잘 누리며 산다. 그러므로 나중에 오신 인간은 분명히 내가 하늘로 올라 가는 날에 구원을 보장하실 것이다. 죄 많은 태초의 값을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나에게 그 구원을 약속으로 오신 분께서 구하지 않으실리가 없지를 않겠는가?! 그래서 아들과 둘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눈 대화는 언제나 희망이있다.

 

"엄마! 가끔은 제가 진로를 변경해서 하느님께서 노하셨을까? 생각을 해 볼때가 있어요. 제 마음이 바뀐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닐 것이고, 하느님의 뜻이었다면 제 마음이 바뀌지 않았을텐데.....  아빠가 힘들어하시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로 부터 받은 인생이 그것일거예요. 우리는 가출하지 말고 묵묵히 아빠를 기다려 드리기만 하면 되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숨막히는 곡예 생활을 해 오면서도 19년이 지나갔고, 내가 벌써 이렇게 컸잖아요. 그러니까 분명히 올 여름에도 이 고비는 넘어가고 곧 풍성한 가을이 오시리라는 것을 믿어요. 그게 우리가 살아온 하느님이었잖아요. 엄마!"

 

그날에 봉구의 팔자가 얼마나 부럽든지!

"봉구엄마! 봉구 잊어버리지 말고 잘 키우시구랴."

내가 키우던 봉구를 잊었다면 나도 그렇게 봉구를 찾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시점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ㅡ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배 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마태오12,39-40ㅡ 

 

 

 

<이녀석은 봉구가 아닙니다. 길가의 어느 집에서.... 이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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