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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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석가루 같이 아름다운 것들/ 박준양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8 조회수1,440 추천수6 반대(0) 신고

 

일요일이었던(7월 17일)어제 오후에 가톨릭 출판사에서 열리는 관상피정 미사에 다녀오려고 늘 다니는 새벽미사를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새벽5시가 되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미국에 있는 딸인가하고 전화를 받아보니 새벽미사에 봉사를 맡은 자매님께서 갑자기 몹시 아파서 대신 해줄 수 없는지 부탁하는 전화였습니다. 새벽에 이집 저집으로 전화를 할 수도 없어서 제가 그냥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새벽미사가 끝나고 저희 본당의 박준양 신부님의 강론말씀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신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있었던 예수회의 이경영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너무 좋았습니다. 두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제가 받아 적으면서 놓친 부분도 많지만 아쉬운대로 옮겨보려고 합니다.

 

 

7월 17일 (일)요일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주인의 대답이 '원수가 그랬구나!' 하였다. (마태오 13, 27-28) 

 

여름에 잔디밭을 가꾸다 보면 어느새 잡초가 또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고 답답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잡초를 뽑다보면 옆에 있는 잔디까지 뽑게 됩니다.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속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라지의 비유는 세상을 향해서도 적용될 수 있고 교회 공동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것이 더 압도하는 것 같이 보여도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하실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제가 로마에 유학을 갔던 해로부터 올해가 10년째 됩니다. 저는 기대와 희망을 안고 로마에 도착하여 베드로 대성전을 바라보며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관광지어서인지 사기꾼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하고 동양인에 대한 알게 모르게 나타나는 차별이 힘들었습니다.

 

외국말로하는 신학공부보다 더 어려운 것은 생활상의 적응이었습니다. 은행은 오후면 문을 닫았고 가게도 오후에 문을 닫았다가 저녁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빨리빨리 하는 것에 젖은 저로서는 참으로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얼마후에 저는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여 학비와 중요한 서류를 잊어버렸습니다. 오전에만 문을 열어서 강의 시간에 행정관청에 가서 줄을 서면 다음에 오라고 하였습니다. 밤잠도 못자고 공부를 해야 되는 저는 너무 힘이 들어 그 나라의 후진성에 대한 미움이 깊어졌습니다. 왜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해야되는지 불평불만으로 가득찼습니다. 

 

그 이듬해의 여름방학에 이탈리아의 북부 작은 성당이 있는 곳에서 언어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알레르기 체질이었는데 과로로 감기와 몸살을 앓게 되어 그곳의 동네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약물쇼크를 일으키어 악성 피부염이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얼굴이 두배 이상 퉁퉁부어서 시골 병원의 응급실에 입원하였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홀로 누워 있는데 이제는 분노를 넘어서서 서글픔이 가득하였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병원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이튿날 그곳의 본당교우들이 하나씩 둘씩 찾아와 주었습니다. 교우들이 죽같은 스프를 끓여오고 번갈아 가며 정성껏 돌보아 주었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대하듯하는 태도가 아니라 한 가족같이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피부, 인종, 국적이 다른 이방인인 동양인 신부에게 극진한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 마음의 아픔이 나았습니다. 내가 치유받아야 할 것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바로 마음의 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사랑에 전과는 전혀 다른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넘기고 다시 로마로 돌아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싫어하였을 때는 언어가 잘 되지 않았는데 그 체험을 하게 된 후에 제 생활 속에 변화가 일어나 그 나라의 언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정들이나 불편했던 것들로 불평불만하고 분노와 미움으로 바라보던 것들에서 보석가루 같이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씩 둘씩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적 깊이, 예술적 깊이, 학문적인 깊이 이런 아름다움에 비하면 생활 속의 불편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에 매료되자 그 때는 더 이상 게으른 나라, 마피아가 있는 나라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예술적 문화적 전통으로 가득찬 나라, 창조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나라로 다가왔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내 자신의 선택은 빛과 그늘, 선과 악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그 중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체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내가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차 있다면 어두운 면만을 바라볼 것입니다. 가정안에서 사랑보다는 미움과 분노로 차 있다면 자녀들도 밖에 나가서도 싸움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각도는 빛인가? 어두움인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밀과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이 가라지만을 바라본다면 어쩔 수 없이 가라지 처럼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지들이 불편하게 불의하게 존재하지만 내 발목을 잡더라도 걸려 넘어지지 않아야겠습니다. 가라지는 언젠가는 정리 될 것입니다. 이 세상안에 가득차 있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세상을 체험한다면 가라지들에게 걸려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안에 있는 아름다움속에서 이 미사를 봉헌 합시다. 우리가 어떤 쪽에 시선을 맞추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은총의 시간도 되고 저주의 시간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라지에 얽메이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체험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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