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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71) 신당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9 조회수1,169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5년7월19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ㅡ출애굽기14,21-15,1ㄱ;마태오12,46-50ㅡ

 

     신당

         이순의

 

 

무더운 여름에 뒷집에서는 이층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을 내보내고 수리를 시작했다. 공사를 시작할 때 부터 짐작은 되었다. 1층에서 하는 굿이 이웃에게 소란스러워 말썽이 잦다보니 2층에 방음시설을 하고 잡신들을 2층으로 부르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 주인집 선교사님께서도 짐작을 하시고 계시는 줄 알았다. 그동안 간혹 통돼지들이 마당에 발랑 눕는 큰 굿을 목격한 적은 있었지만 자기네 신들을 불러 모으는 대행사이고 보면 그동안 내가 목격한 어느 굿보다 엄청 날 것이라는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자기네 집에서 어쩌는 것이야 늘 지켜만 보고있던 나이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찜찜하여..... 혹시 찾아온 손님 귀신들이 집을 잘 못 알고 내 집을 기웃거릴까봐서 미리 완전무장을 준비하였다. 일찌기 성수도 매일 뿌리고, 집이 좁아서 장농 깊숙히 모셔둔 성물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아래층 선교사님께서 그냥 순순히 넘어가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귀신을 불러 신당을 앉히는 마당에 내집 현관과 마주하고 있는 무당네 잔치를 그냥 아무런 대책도 없이 멍청할 수는 없었다.

 

때가 되었나 보다. 늦은 저녁에 내일이면 좀 소란스러울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뇌물로 오랜지 쥬스 두 병씩을 들고 이웃을 돌로 있었다. 당연히 나는 거절을 했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는 그런 것 받지도 않지만 당신들 집에서 당신들이 어쩌는 것도 상관을 하지 않는다고 가라고 거절을 했다. 그런데 괜찮다고 현관에 두고 가 버렸다. 얼른 들고 계단을 내려가 담장 넘어로 돌려 보냈다. 내가 그들의 축제에 초대받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너무 싫었다. 당연히 사모님은 야단을 하시고..

"그런 걸 왜 받아? 예수 믿는 사람이 무당 잡신의 뇌물을 받으면 되냐구?"

"제가 받은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이 놓고 가서 돌려주느라고..."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인 줄은 다 알고 있었지만 다음 날에 있을 굿은 밥을 벌어먹으려고 점괘를 보아주는 굿이 아니라 귀신과 잡신들을 불러오는 짓거리가 아니던가?! 더구나 그들을 새 신당이 꾸며진 2층에 앉히는 기분나쁜! 공연을 많이 보고다닌 내 짐작은 적중하고야 말았다. 그날의 내 집 현관 밖 풍경은 3층 검물보다 높은 장대가 서고 이상한 무늬의 짓발이 펄럭였으며 양옆으로는 대한민국 태극기가 걸려진 장대가 보조를 맞추고 형이하학적인 무늬의 만국기들이 줄을 타며 펄럭이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음식물의 빈상자들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숫자는 서로 비례하고 있었다. 은근히 그 통돼야지는 언제쯤 배달되려는지 신경이 쓰이고, 그게 배달되어야 굿은 절정에 오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울리던 각종 타악기들의 소리는 방음의 효과가 확실한 만큰 작게 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마당에는 통돼야지가 발랑 누워버렸다. 그런데 달랐다. 생으로 배 갈라져 온 통돼야지가 달랐다. 다른때는 머리가 없는 돼야지 몸통인데 그날은 머리가 달린 돼야지 시체가 아니든가?! 그것도 엄청나게 큰 어른 등치의 돼야지가 아니고 청소년기 정도 되어보이는 한창 꽃돼야지가 아니든가?

 

걱정이 되어서 선교사님의 집으로 가서 슬쩍 유리창을 처다 보아도 인기척이 없으시고, 그날따라  아래층 사모님께서 너무나 조용하셔서 공연히 조바심이 났다. 따르던 장군님이 공석중이신 것 같은 곤궁한 마음에 나름대로 방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무당집의 마당과 마주보이는 우리집 계단 난간에 테이프를 동원하여 성물들을 붙이고 세우기 시작했다. 내집 현관에서 부터 저집의 담장과 나란한 곳까지 장농에서 꺼내놓은 성물들을 일렬 종대로 호위병을 세웠다. 십자고상이 서서 팔을 벌리고 강복을 주고 계시고, 성모님께서는 자애로운 기도손을 하시고 미소를 머금으며 그들을 내려다 보시고, 성요셉상도 각종 천사들과 김대건 신부님, 벽걸이 커다란 십자가는 아예 계단의 난간 중앙에 테이프를 감아 고정을 하고.... 묵주들과 각종메달들!

 

그리고 성수를 또 몽땅 뿌려서 강을 만들고.... 계단을 올라와서 바라보니 우리집에 그렇게 많은 성물들이 있는지 몰랐었다. 무당집의 만국기는 이유도 아니었다. 아직 반도 꺼내놓지 않았는데 그 숫자는 엄청났다. 내가 신앙을 살아오면서 받아온 기념들이었으니 그 세월과 축복만큼 그 숫자도 버금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절정의 굿잔치를 남겨둔 그들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 보았더니 아래층 여자는 이유도 아닌 예수쟁이 또 있었네."

"이웃지간에 살면서 배려를 해야지 그러면 안되지요? 너무하십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까지 자기들은 이웃을 배려해서 일감(?)만 생기면 그토록 꽝꽝거렸다는 말인가?

 

"어머? 제가 그집 사람들처럼 이웃에 피해를 주는 꽹과리를 쳤나요? 노래를 불렀나요? 그집에 십자가를 달았나요? 그집 귀신들이 너무 가까운 우리 집으로 잘 못 들어올까봐서 내 집은 예수님 믿는 집이라고 표시한건데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그 집 방해안해요. 여기는 제 집이잖아요. 귀신들이 그집을 잘 찾아서 갈거예요."

사실 자기네 마당에 온갖 국기(?)를 걸어놓고 펄럭펄럭거리면서 우리에게 보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 집 계단에 그리스도교의 상징들이 서있는 것은 배려가 없다는 말은 상식적으로도 예의와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삶지도 않은 꽃돼야지 시체가 생으로 배달되었으니 마당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놀이마당에서 본 작두틀이 놓이고..... 지금까지 그집의 마당에서 볼 수 없었던 괴이한 물품들이 동원되고, 엄청난 음식의 상이 차려지고, 하루종일 2층의 신당에서 두둘기던 풍악이 마당으로 나올 차례인 것이다. 그때까지도 선교사이신 아래층 사모님은 조용하시고.... 앞으로 돌아가 보니 차는 있는데 현관문은 잠겨있고.... 작은 굿거리에는 야단을 하시더니 이렇게 엄청난 귀신놀이에는 왜 이렇게 점잖으시다는 말인가?! 어쨌든지 나도 내 나름대로는 드센 귀신 놀이에 방편을 세우고 들어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귀가 째지는 태평소소리가 울려퍼졌다. 놀이마당에서 우리악기들은 참 듣기가 좋다. 그런데 워째서 저집에서 울리는 악기소리들은 들어서 참을 수 있는 그런 연주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엄청난 순간의 소란이 싫어서 성물들의 경호를 믿으며 현관문을 걸어잠궜다. 그런데 그 요란한 굿판에서 울리는 잡음들은 아래층 선교사님을 자극하고야 말았다. 우렁찬! 뻥 뚫린듯이 시원한! 대단한 초성을 소유하신!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수의 이름으로 이 잡귀신들이여 물러갈 지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사모님께서는 집까지 수리하고 방음을 하여서 온갖 소리가 작아진 이유를 배려하시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전 내내 2층의 새 신당에서 들려오는, 방음 벽에 걸러서 들려오는 소리들쯤이야 배려를 하시려고 했던 것이다. 굿을 자주 보신 적이 없었던 사모님은 그들이 그날에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을 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에서도 강남의 복판! 주택 밀집 지역에서도 덕지덕지 붙어사는 한 가운데! 더구나 그 집은 앞이 우리집을 향해있는 손바닥만한 마당에서 허구헌 날에 직업을 삼고 벌이를 삼고.... 그래도 방음공사를 한 덕에 사모님의 노여움은 조금은 유연해지실 요량이셨던것 같다. 그런데 태평소의 칼날 같은 소리는 울려 귀청을 가를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이 나는 만만히 보더니 선교사님이신 아래층 사모님의 뇌성과 같은 외침에는 그 신명이 연속되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 잡귀신들을 몰살할지어다."

"너희가 감히 주님의 권능 앞에서 그짓을 할성부르더냐? 썩 물러가라."

"예의도 상식도 없는 돈벌이에 어두운 더러운 귀신들아.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다. 어서 그만 두지 못할까?"

"너희는 귀신들의 유황불에서 나와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을지어다. 믿을지어다."

 

덩달아 내심의 힘이 밖으로 용솟으며 내가 신이 났다. 주님을 믿는 속내야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셋방살이에 더구나 나는 맨날맨날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침묵을 바탕으로 행동을 보여주는 전략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역시 외침이 훨씬 효과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점쟁이들은 또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어찌되었든지 작두는 탓는지 못 탔는지 모르지만 마당에서의 굿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꾸민 신당에서는 어두운 저녁까지 타악기들을 두둘기느라고 계속 되었다. 그것까지 우리가 어쩌지는 못해도 아래층 사모님의 선교사직은 대단한 힘을 발휘하시고야 말았다.

 

액막이를 하고, 화를 풀어주고, 길을 닦아준다는데.... 그러면 인생이 어찌 고단하겠는가?! 액을 막아서 편안하고, 화를 풀어서 근심이 없고, 길을 닦아서 영화를 누릴 수만 있다면 세상살이가 어찌 복잡하다고 하겠는가?! 그런 기술만 있다면야 팔자소관을 송두리째 뜯어 고칠 수 있지를 않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정신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야할 인생길을 말해준다. 원죄와 본죄로 부터 온 인간의 고행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약속된 구원을 받고 그 영혼의 복락을 누릴 것이다. 가끔은 무당집 식구들의 패싸움들도 목격한다. 그들도 인생의 죄를 액막이 할 수 없고, 화를 풀 수 없고, 길을 보지 못하므로.... 어쩔때는 피가 철철 나게 식구들끼리 치고 받으며 싸운다. 일반적인 가족들의 싸움하고는 난이도가 확연히 다른....

 

창조주의 피조물인 그들이 아무리 기술이 좋다하여도 그들은 액을 풀지 못하며,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길을 예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고행하고 갈등하며 분열하는! 그런데 찾아오는 손님은 많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재주를 그렇게 풀어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하기야 그들은 액도 풀어주고 화도 다스려주고 길도 가르쳐 준다는데 손님들이 돈다발을 안들고 오겠는가?!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액을 막아주기는 커녕 화를 다스려 주기는 커녕 길을 열어주기는 커녕, 제 십자가를 지고 내 영화를 버리고 이웃을 위해 죽으라는데도 찾아가서 봉헌하고 기도하고..... 쩝!

 

아래층 선교사님의 배려가 높아졌으니....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방음공사를 하고, 2층으로 옮겼으니 그들의 신당은 더욱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보며 인간이 나처럼 이렇게도 살지만 저들은 또 저렇게 잡신들을 팔아 살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회가 위대한 이유는 인간에게 인간의 죄와 짐을 내동댕이 치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본연의 모습들을 벗어버리려고 수단을 꿈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 사실들이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정신은 신께서 허락하신 에덴 동산의 영화를 인간이 파괴한 값을 성실하게 지고 보속하라고 하신다. 그 보상의 결실은 예수의 피로써 우리를 구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정신에 한 치의 두려움이나 의구심이 없게 믿어야한다. 신이신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액을 막아준다고 하시지 않았고, 화를 풀어준다고 하시지 않았고, 길을 다스려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서 목숨을 받쳐 죽으셨으며 살과 피로써 직접 희생제물이 되셔서 우리 죄를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죄 많은 인간이 죄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영화를 누리려는 무모한 무당놀이에 목을 맨들 해결 되어질 일이 하나도 없다. 주님을 따라서 제 십자가를 벗으려하지 말고 기꺼이 지고 가야만 한다.

 

하느님의 아들도 사람의 삶을 살아내느라고 고스란히 고통으로 죽어서 다시 살아나셨는데 어찌 우리같이 어리섞은 인간이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신당안에서 인간사를 해결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오늘도 나의 이 길이 그리스도의 길이라고 믿으며 그 길이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기쁘게 그리스도를 따라서 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 내 인생을 자꾸 벗어던지려고 하면 얼마나 더 비참할 것인가?! 주님께서도 벗어던지지 못하고 짊어지신 인생을 나같이 하찮은 미물이 벗어던지려 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섞은 교만일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구원약속을 믿으며 오늘도 내 삶의 십자가에 충실할 것이다.

 

액이 있다면 손잡고 가고, 화가 있다면 가슴에 담고 가고, 길이 있다면 주님이라는 등불을 바라보며 무조건 묵묵히 걸을 것이다.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 잡귀신들을 몰살할지어다."

"너희가 감히 주님의 권능 앞에서 그짓을 할성부르더냐? 썩 물러가라."

"예의도 상식도 없는 돈벌이에 어두운 더러운 귀신들아.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다. 어서 그만 두지 못할까?"

"너희는 귀신들의 유황불에서 나와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을지어다. 믿을지어다."

ㅡ아멘.ㅡ 

 

ㅡ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마태오12,5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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