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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혹과 관습앞에서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19 조회수1,163 추천수3 반대(0) 신고

7월 19일 (화)요일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마태오 12, 46-50)

 

7월 19일이 가기 전에 오늘 복음을 주제로 한 강론 말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박준양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목은 흔히 개신교에서 성모님을 부정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함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천 하신 그런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고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소서!" 라고 응답하신 분이십니다. 얼마나 앞길이 험난한지 아시면서도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신 분이 성모님이십니다.

 

내 삶의 선택의 최종 기준이 무엇인가? 자기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상충 될 때 이것을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흔히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하느님의 뜻이 현세의 생활에서 손해와 아픔을 준다 할지라도 참된 신앙인은 그 길을 추구합니다. 더욱 더 많은 유혹과 관습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봉사를 많이하면 할수록 더욱 유혹이 많습니다. 항상 깨어서 영적 투쟁과 식별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듣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일상 안에서 자주 걸려넘어지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난날의 상처와 많이 연결 되는 것 같습니다.

 

루가 복음의 흔히 "돌아온 탕자의 비유" 로 알려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이야기는 "용서하시는 아버지" 라고 주제를 부치는 것이 저도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 너무나 큰 아들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마치 큰 아들이 된 것처럼 불공평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년에 한 두 차례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도 조금씩 변화 되었습니다. 

 

마침 오늘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깨달은 것을 적어 보았습니다.

 

마음에 와 닿았던 귀절은 " '살찐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투덜 거렸다." 이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큰 아들이 되어 보았습니다. 실제로 맏딸로서 장남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가족들을 위하여 결혼하기전에 헌신 하였지만, 어머니께서 막상 여동생도 혼수와 지참금을 해주셨고 남동생도 집도 사주시기도 하였지만 저는 결혼할 때 물질적인 것을 받은 것이 없고 오히려 결혼해서도 친정 동생들과 부모님을 보살펴 드려야 했습니다. 한 때는 이것이 섭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제게 제일 많이 마음으로 의지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이해가 갑니다.

 

심정적으로 큰 아들이 갖고 있는 미성숙함과 억울한 감정들이 살짝 건드려졌습니다. 묵상을 안내하는 글에서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그의 부정적인 태도를 직시하라는 것, 그의 위치를 받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자는 초대에" 대한 관점에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큰 아들의 미성숙함이 다가왔습니다. 인정받으려고 하는 자기 중심적인 면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큰 아들이 하느님 아버지의의 사랑을 좀 더 느끼고 살았더라면 동생에 대한 억울함과 불공평함에 그렇게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뜻이 자기 삶속에서 드러나도록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왔다면 오히려 집나간 동생으로 인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와 함께 동생이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어하고 내것을 챙기려는 아직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맏아들에 대한 상속권이 있는 큰 것을 보기보다 우선 드러난 현상인 작은 것에 집착하여 집나갔던 동생에게는 '살찐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불평하며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큰 아들같이 성실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좀 서운하게 하시는 것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강했으나 이제는 큰 아들의 사랑이 부족한 모습과 모순점도 보여졌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 이 복음 말씀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제가 큰 아들같이 성실한 것 그것에만 너무 촛점을 맞추어, 그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잘못된 식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보다 앞세운 그 성실은 자기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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