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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들에게.....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24 조회수824 추천수6 반대(0) 신고

 

아들에게

“제 몫의 재산을 나누어 주십시오”
네 몫을 요구했던 내 아들아,
이제 곧 내 곁을 떠나겠구나 생각하며    
집 떠난 후 겪게 될 너의 고생이
내 눈에는 이미 훤히 보였지만
난 너를 붙잡을 수가 없었구나.  
스스로 깨닫지 않고서야 막을 수 없으니
말없이 너를 보낼 수밖에.

하지만 아들아,
난 믿고 있었다.  
네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 믿음 하나로
날마다 대문 밖에서 너를 기다리며
기쁘게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아들아,
오늘 마침내 다시 돌아왔구나.
거친 얼굴 지친 발걸음 남루한 옷차림
난 달려 나가 너를 연민으로 품었고    
기쁨의 눈물로 입을 맞추었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너의 목소리
너는 참 아들이 되어 돌아왔구나.
내 믿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아들아,
너의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잊지 말아라
자유는 떠남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임을
고생을 통한 깨달음을 기억 하여라
진정한 자유는 네 마음속에 있음을


  때때로 어이없는 일에 부딪히거나 지독한 절망에 빠지거나 아니면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틈새의 빛을 발견하게 될 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말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번 한 달 동안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탁월한 비유로 들려주는 루가 15, 11-32 의 말씀으로 묵상하기로 해요.

  말씀의 배경은 어느 부유한 농부의 집입니다. 그 농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아버지께 청합니다. 당시 유대 법에 의하면 작은아들은 아버지 재산의 삼분의 일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아들의 요구는 법률상으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보입니다.  

  먼저, 기도 안에서 작은 아들의 마음이 되어 보십시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겠지요. 형 그늘에 가려져 자신은 늘 아버지 관심의 뒷전이라는 서운한 생각에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작은 아들의 갑작스런 재산 분배 요청을 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아버지는 두 말 하지 않고 재산을 아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성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들의 앞날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진정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당연히 철없는 작은 아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붙잡아 두어야 함이 옳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기도 안에서 그 아버지에게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작은 아들에게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고 떠나보냈는지 한번 물어 보십시오.

  아버지는 세상의 경험으로 아들의 앞날을 훤히 내다 볼 수 있었지만 진실의 소리에 귀 막고 있는 작은 아들에게는 자신의 충고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만이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고 배울 수 있음을 알고 계셨기에 작은 아들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자식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분들이 바로 부모님이지요.

  이제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향에서 고생고생하다 돌아온 작은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아버지께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던 그 아들이 이젠 어떤 모습으로 돌아왔는지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물론 그는 처음부터 방탕한 생활을 할 생각으로 집을 떠난 것은 아니었겠지요.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대로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탕한 생활로 쉽게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지닌 많은 돈은 참다운 벗이 아닌 거짓 친구들을 불러 들였고 참다운 벗을 분별하기에는 그는 너무 젊었던 것입니다.

  돈이 있을 때는 목숨이라도 내어줄 것 같은 사람들이 빈털터리가 되자 냉정히 등을 돌렸습니다. 그 많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가고 그는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라도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었고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지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아버지의 간섭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처음으로 깨달게 된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아, 그때가 행복하였다. 이 지경이 된 나는 지금 얼마나 비참한가? 아버지께 돌아가리라"
  가장 비참한 처지가 되고나서야 그는 비로소 마음으로부터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었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려는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떠나올 때와는 달리 막상 돌아가려는 그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뵐 염치도 없었겠고 형의 비웃음을 생각하면 돌아가기가 죽기보다도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몫을 챙겨 떠나올 때는 언제고 이제 거지 형색으로 돌아가자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을 극복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 힘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지요. 말없이 보내주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보자 달려 나가 그를 껴안고 입 맞추고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감동 안에 오래 머무르십시오. 아버지는 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가 돌아올 것을 믿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아버지가 흘리는 기쁨의 눈물과 잃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소리치는 들뜬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보내면서도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들려주시는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기도 안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듯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쉽고도 은근한 비유로서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사슴이 시냇물을 만난 듯 기뻐하며 진리의 갈증을 해소하였을 것입니다.

                                                                              -류해욱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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