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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별사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28 조회수848 추천수4 반대(0) 신고




    독서: 출애 40,16-21.34-38
    복음: 마태 13,47-53
    
    오늘 복음의 비유는 마태오에만 있는 것으로,
    종말의 심판을 배경으로 한 비유이다.
    
    어떤 어부들이라도 그물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들을 
    먹을만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가려내는 작업은 할 것이다.
    그렇지만 유다인 어부들은 그 선별작업에 더 추가되는 것이 있었으니
    유다인들에겐 율법에 거슬리는 어종(레위 10,10-12)이 있었기에, 
    그것들을 가려내는 작업이 더 신중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어부들의 생활풍습을 배경으로 
    예수께서는 종말에 있을 심판에 대해 비유로 가르치신다.
    바로 그런 신중한 선별 작업이 세상의 종말에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먹음직하고 신선해보이는 물고기라 하더라도
    유다인들에겐 자신들의 율법상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일반 사람들 눈에는 휼륭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최후의 감별자이신 당신은 그 사람을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다인 어부들에게 있어 물고기 선별 기준이 율법의 조항이었던데 비해
    당신의 선별 기준은 최후의 심판 설교(마태25, 31-46)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즉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그 기준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의 계명'.
    바로 이웃에게 행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율법이 옛 구약의 율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마태오 복음의 가르침이다. 
    오히려 율법의 기본 정신이 사랑의 정신임을 감안할 때
    율법은 폐지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의 계명에 의해 완성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
    그것이 마태오 복음의 율법관이다(5,17-20)
    
    이런 의미에서 하늘나라의 비유 설교(13장 전체)의 대단원을 마치는 결어(結語)로써,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 즉 예수의 제자들은 
    옛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의 율법들을(5-7장) 
    모두 꺼내어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이.
    
    그렇다. 
    사랑이라고 해서 완전히 자유 방임적일 수는 없다. 
    마태오 공동체 내에는 모든 율법이 이제 다 소용없어졌다는 
    '완전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옛 계약은 이제 끝났고, 새로운 계약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구원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이미 이루어졌다고.
    새로 지켜야할 법률은 이젠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태오 복음은 분명하게 말한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율법은 한 자 한 획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5,18)
    
    다만 율법의 외형적인 준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그 근본 정신을 살아야 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더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롭게 살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5,20)
    
    그렇다면 의롭게 산다는 것, 곧 의(義)를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행함, 그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행한 작은 사랑의 실천.
    그것이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임을. 
    마태오 복음서는 곳곳에서 외치고 있다. 
    
    오늘 독서는 모세가 주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세우고 
    십계명이 적힌 증거판을 궤 안에 넣어
    진지가 이동할 때마다 모시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랜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이 궤는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 뜻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는 곳마다 늘 들쳐 메고 다니는 것이었기에 
    하느님도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궤가 있는 한, 하느님은 항상 자기 편일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고
    하느님은 이 환상을 깨 버리기 위해 불행한 역사를 허락하게 되었다.
    
    종말 심판의 비유.
    그것은 바로 이 이스라엘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듯이.
    그런 환상과 착각을 모두 깨 버리라는 예언적인 말씀이다.
    예수님을 "주님, 주님"하고 부르는 우리, 신자라고 해서 그걸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옛 구약의 율사들보다 더 의(義)를 실천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
    그것이 하늘나라에 궁극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추신) 마침, 오늘 우연히 지나간 글들 중에 보지 못한 것들을 열다가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들과 헌 것들을 
    꺼내 주는 집주인과 같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를 묻는 질문을 보게 되었습니다.(No.11726)
    부족하지만, 이 글이 그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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