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버지가 가장 기뻐할 아들의 모습>

수도회 행사 관계로 꽤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한 식사를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메뉴를 아주 간단히 짰고, 형제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숫자가 많다보니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십 명이 함께 준비했지만 얼마나 신경 쓸 일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예산 짜는 것부터 시작해서 시장보기, 나르기, 조리기구 준비하기, 식사장소 꾸미기, 식탁 준비, 꽃꽂이, 서빙, 뒷정리... 행사가 끝나고 나니 몸살이 다 났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라고 하니, 딸린 식솔들까지 하면 적어도 만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었겠지요.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겠지요.

그냥 만 명이 아니라 밥을 먹어야 할 만 명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할 일은 산더미 같았습니다. 사람들을 줄 세워서 그룹별로 나눠 앉혔습니다. 빵의 숫자를 세어 나눠 담고 옮겼습니다. 산더미같이 쌓인 생선도 나눴습니다. 음료수도 필요했겠지요. 뒷정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진 사람들에게 공평한 배식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군기가 필요했습니다. 언성도 높여야 했습니다. 질서유지를 위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니 제자들의 온 몸은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목이 다 쉬었습니다. 완전히 기진맥진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이제 좀 쉴 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가 이토록 큰일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냥 계실 분이 아니지. 맛있는 포도주라도 한잔씩 돌리시겠지? 하면서 은근히 뒤풀이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즉시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누구에겐가 쫓기기라도 하듯이 제자들을 배에 오르게 하십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십니다. 이어서 뭔가 아쉬운 사람들, 환호하는 사람들도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상당히 다급한 모습으로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사람들도 귀가시킨 이유가 무엇일까요?

빵의 기적을 바라본 제자들과 사람들은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고, 제자들도 은근히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당시 그곳에 모인 인원만으로도 ‘창당발기인’의 숫자로서 충분히 넉넉했습니다.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린 예수님께서는 ‘해산’이라는 즉각적인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메시아니즘의 꿈에 도취된 군중에게 휘말리고 싶지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도 귀가시키십니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조용히 기도하십니다. 빵의 기적을 이루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니다.

“아버지, 이 모든 일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입니다. 아버지, 저는 오직 아버지의 도구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하느님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실 모습이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

선배 신부님께서 갑작스럽게 제게 물었습니다. 뜻밖의 질문, 그러나 참으로 근원적이고 진지한 질문에 어리둥절했습니다만, 진정 의미심장한 질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모습, 십자가에 사지가 매달리고 못 박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예수님의 모습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순명의 예수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오로지 아버지의 뜻에 따르신 예수님, 결국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자신의 생명조차 내어맡기신 예수님,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느님 아버지께 돌리신 겸손의 예수님이야말로 참 메시아의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