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차별 정책?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02 조회수889 추천수7 반대(0) 신고




차별 정책?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말씀(민수 12,1-13 ; 마태 15,1-2.10-14 )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형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줄 아느냐?"
표면적으로는 모세가 이방인 아내를 얻었다는 것을 비판했지만
속내는 모세의 지도권에 대한 불만임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다.
주님은 셋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모세의 지도권을 더욱 공고히 해주신다.

모세에게는 직접 당신의 뜻을 숨김없이 알려줄 것이나
다른 이에게는 간접적으로(꿈, 환상) 알려 주실 것이란다.
하느님의 차별 정책에 불만을 갖고 시비를 걸었던 미리암과 아론은
그 자리에서 더 큰 차별만 확인했을 뿐이다.

뿐만아니라,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 대한 본보기로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내린다.
이것을 본 아론은 즉시 모세에게 납작 엎드렸다.
"우리의 영도자여, 우리가 어리석어서 저지른 이 잘못을 벌하지 마시오" (치사하다)

이들은 모세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다.
말을 바꾸면, 이들이야말로 남들보다 그의 결점을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다.
오죽 말을 잘했으면 주님에게 뽑혀 모세의 오른팔이 된 아론이겠는가.
오죽 영민했으면 남존여비의 사회에서도 여예언자로서의 명망을 날렸던 미리암이겠는가.
왜 슬며시 불만이 생기지 않으랴.

그러나 도전자들은 완전 KO패다.
문둥병에 걸린 미리암, 무릎을 끓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아론.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그동안 모세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그들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늘 그에게 도전한 것에 대한 무서운 책벌까지 내리신 주님.
심판관의 편파적인 두둔 때문에 공정한 게임은 애초에 물 건너갔다.

주님을 사로잡은 모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지도력에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주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세는 소명을 받을 때부터 겁쟁이, 핑게쟁이였다.
그는 출애굽 후에도 백성들에게 시달릴 때마다
"이 백성이 모두 제 뱃속에서 생겼습니까? 어찌하여 이 종에게 이런 꼴을 보이십니까?"
"진정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매번 주님께 쪼르르 쫓아가 일러바치고 징징 울고 떼를 쓰곤 하는 모습 뿐이다.
주님은 그럴 때마다 불평과 울음을 그치게 해 줄 해결책들을 내려주셨다.
파파보이 모세와 해결사 아버지?

그랬다.
도대체 모세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그러나 잠시 이런 못난 장면들을 다시 한번 꺼내어 읽어보자.
모세가 불만을 터뜨리고 추한 꼴을 보이는 것은 모두 주님 앞이었다.

어떤 때는 기도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매번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자신의 못난 꼴을
주님께 보이기 낯이 없어서도 그랬고,
자신의 진짜의 모습을 똑바로 보기가 싫어질 때도 그랬다.

아, 그러나 모세는 주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인가?
그가 주님 앞에서까지 체면을 차리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과연 있었던지.
주님의 질책이 두려워 주님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보느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인 적이 과연 있었던지.
(어느 때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형식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나의 기도와 비교해본다.)

솔직하게, 부끄러워 하지않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두려움, 분노, 욕망, 비굴함까지도 용기있게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모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주님이 그에게 당신의 말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해 준다" 하셨지만

모세도 언제나 바로 그렇게 '하나도 숨기지 않고'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칠십 명의 장로들에게 주님의 영을 내려주신 일이 있었을 때,
명령을 어긴 두 명에게까지 은총이 내렸다는 것에 여호수아가 불만을 터뜨리자
모세는 그의 질투를 나무라며 모든 백성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려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오늘의 아론과 미리암과는 다르다. 

 

거의 비슷한 소리를 매일 주님께 와서 투정하듯 해대는 모세.
매일 비슷한 고해를 하기 싫다고 투덜대는 우리와는 다르다.

 

이것은 인간이란 주님 앞에서 용서와 정화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
그것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없이 자신이 완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평생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한번의 실수로 무서운 형벌을 받은 미리암을 위해
진정으로 용서를 하고 그를 위해 탄원을 바칠 수 있는 모세였다.
"하느님, 미리암을 고쳐 주십시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겸손이라 한다.
오늘 독서에서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모세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
주님께 칭찬을 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남에게,
특히 아랫 사람에게 관대하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탁월한 능력, 놀라운 예지, 조리있는 언변보다 더 귀중한 덕목인
겸손과 정직과 관용, 그리고 사사로움에 휘둘리지 않는 품성.
그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공동체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자질이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처럼. 

주님과 주님 백성의 지도자와는 인격적인 친밀함으로 굳건히 결속되어 있어야한다.

그것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 지도자의 권위의 근거임을 가르쳐준다.

 

주님, 저희도 모세처럼.

주님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솔직하고 겸손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어 보이며, 다른 이의 잘못을 너그러이 감싸주는 사람되게 하소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