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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04 조회수77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5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제1독서 민수기 20,1-13

 

그 무렵 정월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은 씬 광야에 이르러 카데스에 자리를 잡

 

았다. 거기에서 미리암이 죽어 땅에 묻혔다.

 

거기에는 먹을 물이 없었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서 따졌다. “우리 겨

 

레가 주님 앞에서 죽을 때 우리도 함께 죽지 못한 것이 한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

 

님의 회중을 이 광야로 끌어내어 우리와 우리 가축이 함께 죽게 하느냐?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 못된 고장으로 이끌었느냐? 어찌하여 우리를 곡

 

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라지 않고 마실 물도 없는 이곳으로 끌어내었느냐?”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떠나 만남의 장막 문에 이르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주

 

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리고 형 아론과 함께 모든 사람이 보

 

는 앞에서 이 바위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이 바위에서 터져 나

 

오는 물로 회중과 가축을 먹일 수 있으리라.”

 

모세는 분부대로 주님 앞에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그 바위

 

앞에 회중을 불러모아 놓고 외쳤다.

 

“반역자들아, 들어라. 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주랴?”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니 물이 콸콸 터져 나왔다. 회중과 가축이 그

 

물을 마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꾸중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회중에게 줄 땅

 

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그 샘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과 다투었다고 해서 므리바 샘이라고 불리지만, 주

 

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신 곳이기도 하다.

 

복음 마태오 16,13-2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

 

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

 

하자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

 

히 당부하셨다.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

 

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

 

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

 

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꾸짖으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

 

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런데 솔

 

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짧은 머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길러

 

보고 싶은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머리

 

를 길러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귀를 아주 조금 가릴

 

정도까지만 길러 본 것이 최고로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머리카락을 지금

 

까지 한 번도 기르지 않았을까요?

바로 제 머리카락 자체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뻣뻣하고 두꺼운 머리카락이

 

다 보니, 조금만 길어도 사방팔방 뻗치기 때문에 도저히 기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미장원에 가면, 항상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손님, 짧게 자르실꺼죠?”


 

저의 머리카락은 짧게 자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늘 저는 짧은 머

 

리를 하고 다니면서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지요. 그런데 저의 어

 

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세요.

“네 형들 보니까, 장가가면 모두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더라.”

이 말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형들이야 장가가서 이제 더 이상 뻗치는 머리가 되지 않

 

았지만, 저야 장가를 가지 않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런데 이런 저에게도

 

요즘 하나의 징조가 보입니다. 글쎄 머리카락에 약간 힘이 없어지면서 머리를 길러

 

도 뻗치지 않고 많이 차분해진 것입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한

 

번 머리를 길러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께. 저는 또 다시 짧게 이발을 했습니다. 분명히 머리카락은 길러도 문제

 

가 없을 만큼 많이 차분해졌습니다. 문제는 제가 이제까지 한 번도 머리카락을 길러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더운 여름날 전보다 길어진 저의 머리카락을 감

 

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또 다시 짧은 스포츠머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내 뜻대로 이 세상이 돌아간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세상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

 

게 된다면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을테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의 자살률이

 

가장 높고, 반대로 가장 못사는 나라라고도 말할 수 있는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것을 보면서,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잘 아시기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을, 그리고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서 당신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여전히 그러한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

 

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베드로처럼, 때로는 예수님께 그래서는 안된다

 

는 충고의 말까지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뜻대로 하려고 할 때, 바로 하느님까지도 내 밑으로 두려는 교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는 아주 심한 말씀까지도 하십

 

니다. 사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말을 함으로

 

써 교회의 반석이 된 베드로였습니다. 하지만 마음 안에 교만이 싹트는 순간, 사탄이

 

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나는 예수님께 어떤 말을 들을 것 같나요? 사탄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이제

 

내 뜻만을 내세우지 맙시다. 대신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

 

니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맞다고 우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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