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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남자는 멋있었다.
작성자이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08 조회수988 추천수14 반대(0) 신고

며칠 전,

하늘은 흐린데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는

뜨거운 바람이 훅훅 끼치는

그런 날이었다.

 

병원의 동료와 점심 식사를 하러

근처 돈까스 가게에 들어가 앉았다.

음식점 안은 넓고 시원했으며

가운데 몇 자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자리에

사람들이 빼곡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앞에 앉은 동료와 조근조근 얘기를 나누는데

음식점의 자동 유리문이 스르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그저 또 하나의 손님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문 안으로 들어선 그 남자는 좀 남달랐다.

진한 감색 양복을 차려 입고 있었고

하얀 와이셔츠에 고운 넥타이까지 꼼꼼하게 맨 그는

한여름에 보기 드문 신사였다.

 

그러나 그 남자가 정말 남달랐던 건

팔과 다리의 길이가 다른 음식점 안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짧았다는 것이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

본능적으로 돌아가는 눈동자를 수습하느라 작은 동요가 일었지만

정말 작은 키의 그 남자는 조용하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남은 식탁에 앉아 작은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메밀국수가 식탁에 놓여지자

그 남자는

왼 손을 가슴에 얹더니

오른손으로 크게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아주 천천히.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 작은 팔이 그렇게 크게 성호를 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숨 죽인 음식점 한쪽에서

작은 동요가 일었고

구석의 어느 식탁에서인지는 조그맣게

그러나 부끄럽게 키득거리며 성호를 따라 긋는 아가씨들도 눈에 띄었다.

그녀들의 행동도 예뻤지만

나는

그 남자의 옆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봐도봐도 또 보고 싶었다.

내 가슴에 그렇게 차올랐던 게

뿌듯함이었는지

기쁨이었는지

자랑스러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한재상 세례자 요한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사랑하면 자랑하고 싶은기라요.'

 

주님을 사랑한다는 걸 그렇게 자랑할 수 있었던 그 남자의 당당한 성호가

그 날의 더위를 날려버렸다.

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조그맣게 긋던 나의 성호가

그날 이후 더 커지고 정확해졌다.

나도 주님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으니까.

한여름의

그 남자는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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