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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11 조회수1,243 추천수13 반대(0) 신고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마태오 18장 21-19장 1절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클라라’란 이름이 지닌 의미는 ‘찬란한 빛’입니다. 클라라 성녀는 한 평생 자신의 이름처럼 찬란하게, 그리고 영롱하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언젠가 성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도시 아씨시를 들렀을 때의 좋았던 느낌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클라라 성녀께서 수십 년 간 사셨고, 또 임종했던 다미아노 성당에 들렀을 때, 그 가난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처참할 정도의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자매들과 함께 찬미가를 불렀던 클라라 성녀의 삶은 더 이상 영웅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찬란할 수가 없었습니다.


클라라 성녀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신앙의 모범은 얼마나 탁월한지, 그리고 얼마나 깊이가 있고 다양한지, 부족한 우리로서는 도저히 추종이 불가능해보입니다.


겸손-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당시 아씨시의 교구장이셨던 귀도 주교님께서는 극구 사양하는 클라라를 대수녀원장에 임명하였습니다. 클라라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 직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수녀원장인 클라라였지만 수녀원의 굳은 일은 자신이 다 맡아했습니다. 수녀원의 허드렛일은 당연히 자신의 일이려니 생각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해치웠습니다.


클라라라 유독 좋아하는 일이 있었는데, 수하 수녀들이 식사할 때 ‘서빙’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밭일을 끝내고 흙 먼지투성이의 발로 들어오는 동료 수녀들의 발을 씻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발을 다 씻긴 클라라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재빨리 수녀님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랑-클라라가 동료 수녀들에게 보여주었던 사랑은 보통 각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올 때마다 황소바람은 수녀원의 허술한 문이나 창문 틈을 뚫고 수녀들을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든 수녀들의 추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그 긴 겨울밤을 꼬박 지새우곤 했습니다.


또한 수녀들의 부족함에 눈에 띄면 그 어떤 어진 어머니보다도 더 다정한 사랑으로 권고하였습니다. 그래도 효과가 없을 때면,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가난-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 오랜 세월 클라라의 잠자리였습니다. 냇가에서 주워온 돌이 베개였습니다. 작디작은 빵 한조각과 물 한잔이 매끼니 식사였습니다.


실내장식이나 난방은 고사하고 아무런 설비도 안 갖춰진 누추한 거처에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클라라는 가난이 무엇인지, 추위에 떤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피로에 지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 모두를 더할 나위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 섭리에 대한 확신-스승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따라 클라라의 가난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그 고집은 교황님도 막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클라라와 수녀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당시 교황님은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약간의 부동산을 소유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끝끝내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클라라가 한 평생, 혼신을 다했던 투쟁 가운데 하나가 물질과의 투쟁이었습니다. 최소한 다음날 먹을 양식만이라도 확보해놓으면, 수도공동체는 먹는 것으로부터 걱정을 덜게 되고, 그만큼 더 열심히 관상생활에 투신할 수 있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의견과 맞서 클라라는 한평생 싸웠습니다. 절대로 내일을 생각하지 않게 했습니다.


클라라에게 있어 내일에 대한 보장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클라라는 언제나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주님의 말씀만 되풀이 해주었습니다.


클라라는 ‘거룩한 가난’과 얼마나 깊이 관계를 맺고 사랑했던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소유를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딸들에게도 무엇 하나 가지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자신의 딸들이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고, 그분께만 마음을 쓰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씨시의 빈자 성 프란치스코의 가장 뛰어난 제자요, 첫 여성제자로 프란치스코 성인으로부터 가장 극진한 사랑을 받은 영적인 딸 클라라는 프란치스코가 탄생한 후 12년 뒤인 1193년에 출생했다가 125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클라라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의 정원에 핀 첫 꽃송이로서 마치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희고도 순수한 봄꽃과도 같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 프란치스코의 딸이었으며 가난한 클라라회의 창설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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