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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씨줄과 날줄의 짜임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18 조회수865 추천수4 반대(0) 신고

8월 18일 (목)요일 (마태오, 22, 1-14)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소?' (12절)

 

박준양 신부님 강론 말씀입니다.

 

이번 주간 복음은 계속해서 하늘나라의 비유를 말합니다. 오늘 말하는 하늘나라의 비유는 혼인잔치에 관한 것으로 두가지 종류의 불충실함에 대한 것입니다. 마치 혼인잔치와 같이 하늘나라로부터의 초대에, 각자의 부르심에 불충실한 유형의 첫번째는, 부르심에 아예 응답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마태오 5, 5-6) 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거절하고 던져 버리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는 아무 사람이나,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였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하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은 것과 다를바가 없는 유형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 시켜 보면 우리의 삶은 부르심과 응답의 연속으로 마치 씨줄과 날줄의 짜임과도 같습니다. 매순간 내가 어떤 응답을 하고 있는가? 나의 응답에 따라 아름답고 귀한 천으로 짜여지기도 하고, 잘 짜여지지 않고 얼키설키 엉망으로 된 천으로 짜여지기도 합니다.

 

이 부르심은 각자에게 다 고유합니다. 어떠한 사람도 똑같이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가지 부르심, 가정의 일이나 직업을 통해서 그 부르심안에 하늘나라의 초청이 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거나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제가 짜고 있는 어떤 천일까? 조금은 언밸런스하기도 하고 색의 조화가 과히 아름답지 않게 짜여진 부분도 있고 헐렁하게 짜여진 부분도 있고, 아주 정교하게 아름답게 짜여진 부분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교하게 아름답게 짜여진 부분들은 몰입해서 행복하게 천을 짰던 시기인듯 싶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행복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은" 이란 책에서 행복하게 천을 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행복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은

 

"나 자신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순간부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자신의 행복을 찾기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행복을 발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러시아의 시인 투르게네프는 자기자신을 찾는 것을 포기했을 때 행복한 삶을 영위한 체험을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더 이상 찾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행복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매우 위험한 처지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는 자신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결국 행복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행복을 약속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포기하고자 하는

뜻 속에 이미 공명심이 들어 있고,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기를 원하는 곳에 이 자아가 맴돌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은 다르게 열려 있다. 오직 내가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을 향해 온전히 나아갈 때, 나는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멈추어 서서 나를 벗어 버리려 하면, 나는 내 주위를 맴돌며 헛수고만 하게 될 뿐이다. 나를 포기하기 위한 노력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나의 자아는 나의 노력에 들러붙어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아름다운 새가 나뭇가지에 맵시 있는 자태로 앉아 있는 모습이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을 때, 그 새에게 다가가는 것을 통해서 나는 나의 자아를 잊어버릴 수 있다.

 

나를 잊어리는 순간에 나는 온전히 그곳에 있고 행복하다. 나는 의식적으로 나를 잊어버릴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어떤 것에, 어떤 사람에게 몰두함으로써 나를 잊어버릴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만약하느님께 온전히 몰두한다면, 나를 하느님안에서 온전히 포기한다면,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의 자아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고자 하는 것마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아무 조건도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나의 행복을 잘못 설정한 자아로부터 해방시킨다. 나를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은총중에서도 가장 큰 은총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을 위한 왕도이다.

 

                            <행복한 선물 / 안셀름 그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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