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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19 조회수822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5년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1독서 룻기 1,1.3-6.14ㄴ-16.22

 

영웅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때 유다 베들레

 

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시골에 가서 몸붙여 살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거느

 

리고 길을 떠났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두

 

아들은 모압 여자를 맞았는데 하나는 오르바요, 다른 하나는 룻이었다. 거기에서 십

 

년쯤 살다가, 두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이리하여 나오미는 남편을 여읜 데다 두 아

 

들마저 잃고 말았다.

 

그 무렵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어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 모압 시골에 들

 

려왔다. 나오미는 그 소식을 듣고 모압 시골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들 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껴안고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자기 겨레에게로 돌아

 

갔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제 신에게 돌아가지 않았느

 

냐? 그러니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저에게 어머님을 버려 두고 혼자 돌아가라고 너무 성화하시지 마십시오.” 하며 룻

 

이 말했다.“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겠으며,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

 

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나오미는 모압 시골을 떠나 모압 사람인 며느리 룻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를 거두어들일 무렵이었다.

 

 

복음 마태오 22,34-40

 

그때에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

 

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

 

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

 

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어떤 게으른 신자가 주일 미사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

 

습니다.

“주님, 꼭 성당에 가야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제가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성

 

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랑 가득하신 당신께서는 오늘 저에게 미사를 참석

 

한 사람보다도 더 멋진 메시지를 전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눈을

 

감고 성경을 어느 곳이든지 펼쳐서 손가락으로 딱 짚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제

 

게 주신 것으로 믿어 그대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좋은 말씀을 주

 

소서. 물질의 복을 받으라든지, 장수의 복을 받으라는 그런 말씀을 주셨으면 좋겠습

 

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그는 성경을 펼쳐서 손가락으로 아무 곳이나 딱 짚었습니다.

 

근사한 말씀이 나올 줄 알았지요. 그러나 그가 짚은 곳에는 이런 구절이 있는 것입니

 

다.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마태오 27,5)

 

그는 깜짝 놀랐지요. 그래서 하느님께 따지듯이 말합니다.

 

“하느님, 어쩌면 이럴 수 있습니까? 제가 좋은 것을 달라고 했지, 이렇게 나쁜 대목

 

을 달라고 했습니까?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진짜로 좋은 것을 주셔야 합

 

니다.”

 

그리고 다시 성경을 펼쳐서 손가락으로 아무 곳이나 짚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대목이 나왔다고 하네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가 10,37)

우리들은 이렇게 자기 위주의 생각과 판단만을 고집합니다. 심지어는 하느님께도

 

내 생각과 판단을 따르라고 강요한 적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되지 않

 

으면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는 협박도 어떤 분에게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 “선생님, 율법들 중 어느 계

 

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는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

 

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결국 사랑의 계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느님과 이웃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끊임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으며, 그 욕심으로 사람들과 하느

 

님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고양이와 개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웁니다. 그 이유를 서로 신호가 다르기 때문이

 

라고 어떤 인류학자가 설명을 했습니다. 즉,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가 위로 올라가

 

고 기분이 나쁘면 꼬리가 아래로 내려가는데, 고양이는 정반대라는 것이지요. 따라

 

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지요.

 

개가 고양이에게 “I Love You~~”하면 사랑을 표시하면서 꼬리가 위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꼬리가 위로 올라가면 고양이에게는 기분이 나쁠 때라는 표시라는 것이지

 

요. 그래서 고양이는 “왜 너는 나만 보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거야?”하면서 개에게

 

달려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달려드는 고양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

 

니까? 그래서 서로 만나면 싸운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방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자

 

기만의 신호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신

 

호를 버릴 때만이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나만의 신호가 담겨있지 않은 진짜 사랑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싸우는 이유는 서로 신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호를 맞춰서 싸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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