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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20 조회수766 추천수1 반대(0) 신고

 

 

             2005년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제1독서 룻기 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는 남편 쪽으로 친척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의 일

 

가로서 유력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라 했다.

 

하루는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청했다. “저를 밭에 나가게 해 주세요. 행여 무던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의 뒤를 따르며 이삭이라도 주워 오고 싶어요.” 나오미가

 

룻에게 허락을 내렸다. 룻이 밭에 나가 추수하는 일꾼들의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

 

데, 공교롭게도 그 밭은 엘리멜렉의 일가인 보아즈의 것이었다.

 

보아즈가 룻에게 말했다. “악아, 내 말이 들리지? 다른 사람 밭에는 이삭을 주우러

 

갈 것 없다. 여기서 다른 데로 가지 말고 우리 집 아낙네들과 어울려 다녀라. 추수하

 

고 있는 밭에서 한눈 팔지 말고 이 아낙네들의 뒤를 따르며 이삭을 주워라. 머슴들이

 

너를 성가시게 못하도록 분명히 일러 두마. 목이 마르거든 머슴들이 항아리에 길어

 

다 둔 물이 있으니, 가서 마셔라.”

 

그러자 룻은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저를 이렇게까지 귀엽게 보아

 

주시고 마음을 써 주십니까? 저는 한낱 이국 여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아즈가 말했다. “나는 다 들었다. 네가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도 시어머니를 극진

 

히 모시었고 고향을 버리고 부모를 떠나 낯선 이 백성에게로 왔다는 말을 들었다.”

 

보아즈는 룻을 맞아 아내로 삼고 한자리에 들었다. 주님께서 점지해 주셔서 룻이 아

 

들을 낳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축하하여 말했다. “오늘 이처럼 당신 가문이 대

 

를 이어 내려가게 해 주셨으니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 이 아기의 이름이 이스

 

라엘에서 기림을 받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며느리가

 

낳아 준 아들, 아들 일곱보다 더한 며느리가 낳아 준 아들이니, 이제 그가 당신에게

 

살맛을 되돌려 주고 노후를 공양해 줄 것입니다.”

 

나오미는 그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자기 자식으로 길렀다.

 

이웃 아낙네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구나!” 하며 그 아기에게 오벳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요, 이새의 아버지였다.


 

 

복음 마태오 23,1-12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

 

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

 

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

 

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

 

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

 

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

 

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광고회사의 젊은 광고 문안 작성자가 새로 나온 비누를 위한 광고문을 들고서

 

회사로 들어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료 광고 제작자들에게 다음의 광고문이 어떻

 

겠냐고 물었지요. 그 광고문의 문안은 이렇습니다.

 

“이 제품에 포함된 알칼리 성분과 지방질은 최상 질의 비누로써 쓰이도록 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위에 뜰 수 있게 특수한 인력장치가 되어 있어서 샤워하다가 목

 

욕탕 바닥에 가라앉은 비누를 더듬어 찾는 번거로움과 괴로움을 제거해 줄 것입니

 

다.”

 

사람들은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그 광고문의 문안을 칭찬했습

 

니다. 하지만 좀 더 경험이 많은 광고 제작자는 이 내용을 단 두 마디의 말로 압축해

 

서 말합니다.

 

『이 비누는 뜹니다.』


어때요? 어떤 광고의 문안이 더 확실한가요? 아마도 뒤의 “이 비누는 뜹니다.”라는

 

표현이 강하면서도 확실하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러면서도 앞선 그 긴 광고의 내용도 정확하게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이 짧은 표현으로도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습니

 

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한 설명을 해도 더 복잡해서 무슨 말인지 모를 때도 참 많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렇게 길게, 그리고 자세히 설명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 될 것 같거든요.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렇게 말로만 길고 자세히 설명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하십니다. 즉, 몸으로 실행

 

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의미도 없음을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주님의 뜻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뜻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사람들 앉혀놓고서 몇 시간동안 주님의 뜻을 설명하면 될까요? 아무리 좋은 이야기

 

를 한들, 사람들은 말만 듣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이

 

아니라, 몸으로 주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그들의 행동을 보

 

고서 변화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변에서 참 많이 볼 수가 있습니

 

다.

 

주님으로부터 세상 끝까지 당신 말씀을 전하라는 선교사명을 받은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혹시 말로만 그럴싸하게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자

 

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길고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더 사람들에게 강하게 와 닿는 것은 주님을 위해

 

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실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참 많이 씁니다. 말만 하지 말고, 그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을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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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프랑스의 디종 근처에서 태어난 베르나르도 성인(1090-1153년)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모든 영화를 물리치고 수도 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학덕과 성덕이 뛰어났던 그는

 

저서와 신심으로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다. 그는 ‘꿀처럼 단 박사’라는 칭호와 함

 

께 교황 비오 8세에 의하여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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