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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78) 지루한 기다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21 조회수90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8월21일 연중 제21주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 없음 ㅡ이사야22,19-23; 로마서11,33-36; 마태오16,13-20ㅡ

 

            지루한 기다림

                             이순의

 

 

역시 사람의 인생은 백지 한 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모두가 이웃 사촌 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글의 내용에 따라서 나타나는 반응들은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묵상글이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또는 각자의 경험과 입장에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내 스스로가 이미 써버린 묵상글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성격이 아닌데다 묵상글로 인한 반응 또한 가급적이면 관여하지 않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 대하여 혹자들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대의 입장이나 상황이 동반되지 않은 가족관계의 이야기는 결코 이해도 용서도 해 줄 수가 없어 보이나 보다. 그러므로 오늘은 가급적이면 상대가 나에게 해 오는 언어들을 제공할까 한다. 말하자면 어느 면으로는 공개재판 같은 엄청난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구조가 산다는 게 거의가 서로 얽히고 섥히고 살다보니 모두들 입장들이 있고, 하고 싶은 말들이 있지만 자기의 이야기는 공개할 수 없고, 남의 일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바라보시기로 하신 것 같다.

 

나는 토요일로 치면 3일째, 일요일로 치면 4일째 짝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타는 속이야 진을 짜느라고 지쳐 이 밤에 잠도 못자고 이러고 있지만 19년을 살아오면서 늘상 있었던 일이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는 엄연히 영업허가가 있는 상인이다. 그럼에도 짝궁은 농사를 지으러 산으로 갔다. 그 첫째 이유는 수 년 전에 장사밑천이 거덜나버리는 엄청난 고비가 있었으므로 운영할 수 있는 회전 자금이 고갈 되었고, 둘째는 급할 때 큰언니의 도움을 받는 이외의 금전 관계에서 내가 손을 땠기 때문이다.

 

가정사 과거의 잘잘못은 접어두고 내가 잠을 자지 못하고 짝궁의 소식을 기다리는 최근의 근황을 밝혀 보고자 한다. 봄에 비 피해가 커서 짝궁은 특별한 소출을 보지 못하고 후작을 넣은 농산물들이 최근에 출하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물건들의 판매권이다. 우리는 영업허가가 있지만 올해는 남에게 위탁하여 판매하기로 다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그것을 믿고 있었고, 꿈에도 다른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나는 꾸는 꿈조차 맞지를 못해서 늘 개꿈의 명사수라고 짝궁이 놀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 나이 마흔여섯에 꿈이 맞았다. 생시처럼 똑같이! 그래서 나는 혼자서 가만히 시장에를 가 보았고 시동생이 팔고 있는 물건이 짝궁의 물건인지 다른 사람의 물건인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어찌되었든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짝궁에게 전화를 했다. 시장에서 보고 온 이야기를 한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의 물건을 팔아주나 보다고 짝궁이 거짓말을 할 것 같은 판단이 생겼다. 그래서 시장에서 본 사실은 말하지 않고 꿈 이야기를 사실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내내 잠을 설치며 궁리를 해 보았더니 그렇게 선명한 꿈을 꾸었을 때는 주님께서 거저 꾸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이 되어 나는 짝궁에게 그대로 꿈 이야기를 했다. 물론 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짝궁은 매우 선한 사람이며, 양순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말 한 마디를 대꾸하지 못하더니 "시끄러"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 후로 전화는 단절되었다. 대화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럴때 나는 19년 세월의 비통함을 곱하기 하고만다. 그래서 시동생에게 전화를 하고, 역시 당황하는 기색에 나의 융단 폭격을 감당하느라고 졸지의 입장이 된다. 그리고 어느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차단 해버린 짝궁의 열리지 않은 입을 생각이 짧은 시동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잡아낸다. 한두 번 해 본 일이 아니라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시동생은 늘 제 입으로 다 발설해 놓고 형님을 개 잡듯이 다루는 인간성 때문에 라도 내가 몹시 싫어한다. 형이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형이 말했다고 착각하는 게 시동생이다. 아무리 형이 제 농간에 놀아나는 등신이라고 하더라도 해야할 짓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다. 짝궁은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절대로 쉽게 나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생들은 그만큼 짧기 때문에 후려치면 술술 다 나온다. 지금부터 시동생의 말들을 나열할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만 써지는 글들이 못마땅하신 분들이 계셔서 부득하게 열거해 보기로 한다.

 

<형님의 물건은 이제 겨우 두 대 올라왔고, 그 두 대분의 서류는 동업자가 가지고 있으며, 수수료가 아까워서 형님의 물건을 남에게 위탁시키는 것 보다는 우리가 열심히 팔면 형님 실적도 올라가고, 남에게 이익금을 주느니 형님이랑 셋이서 수수료를 똑 같이 나누면 서로 좋을 것 같아서 했습니다. 이제야 두 대분인데 형수가 알아버려서 그것도 틀렸습니다.> 정말로 타당성과 당위성이 분명한 명답이다. 물론 이만큼의 대답이 나오기 위해서는 나의 무차별적인 융단폭격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고 나면 나는 어느 정도의 라인을 가지고 짝궁의 전화기에 음성을 남긴다. 그리고 조용해지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전화가 온다. 그리고 짝궁은 내가 전화기에 음성을 남긴 만큼의 확인만 해 준다. 역시 짝궁이라고 해서 나의 융단 폭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서로 19년동안 살아오면서 그런 작전에서 줄다리기의 명수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단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동업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음성을 남겼다. 좀 만나시자고! 초면인 사람들은 전화로 대화가 위험하며 남편의 체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두 번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잊어버릴만한 시각에 전화가 왔다. 그리고 만났다. 나는 그분이 그분의 영업번호로 짝궁의 물건을 위탁 받아서 판매하는 줄 알고 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명목은 사장님이시지만 역활은 그게 아니었다. 짝궁의 가게에서 짝궁의 물건을 그분과 시동생이 판매를 해 주고 셋이서 수수료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었다. 

 

내 필름은 빨랐다. 그럴거면 예전처럼 시동생에게 모든 판매권을 주고 우리 형제들 끼리 벌어먹는게 낮지 그것은 좀 안맞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짝궁이 지난 봄에 어머니집 이사돈을 셋째 동생이 갈취해가는 사건을 격었으므로 나의 반대를 이겨낼 재간이 없어서 시동생에게 독자적인 판매권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약속은 지킨 것이다. 자세한 근황은 모르지만 그분이 짝궁을 찾아가서 동생이랑 같이 열심히 팔을테니 믿어주라고 사정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짝궁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적도 올리고 또 그첨저첨 동생도 먹고 살고, 또 제 가게 두고 남의 가게로 판매를 넘기는 면구스러움도 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충분한 이해가 따른다. 그리고 숨길만한 일도 빌미도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왜 거짓말이 필요한가?! 그런데 그분은 나에게 엄청난 사실을 누설하고야 말았다. 짝궁은 이제야 겨우 두 대분의 판매만 허락한 것이 아니었다. 7월달 부터 계속 해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인 그분은 제외하고라도 짝궁도 시동생도 나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어야한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시댁식구들에 대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므로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면 말을 해 주었어야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또한 계속 가리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로 시동생은 형의 일을 하고 싶었다면 깨끗이 승복을 하고 용서를 청하든가? 그것도 어려운 것이라면 다른 때는 술먹고 전화도 잘 하든데 전화라도 해서 사정이라도 해 보든가?! 했어야 한다. 그런데 시댁식구들은 결코 자기들의 의무나 도리는 뒷전이고 또 그 덤탱이는 나의 몫이었을 것이다. 지독한 년이라는! 그래도 생계가 달린 문제라면 당연한 처사를 행해야 한다. 지금도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으며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악다구니를 쓰는 나는 배가 고픈 사람이고 그들은 아직 배가 덜 고프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 나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짝궁과 시동생의 습관을 알고있다. 그러므로 그분께 당연한 요구를 청했다.

<사장님께서 사장님의 가게에서 저희물건을 팔아오셨다면 100원에 팔든 1000원에 팔든 제가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으나 저희 가게에서 저희 물건을 판매하시고 그 수수료를 제 남편과 사장님과 제 시동생이 똑 같이 나누기로 하셨다면 그 서류의 결재권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넘겨주시지요? 저는 그것을 확인해야겠습니다. 남편과 시동생은 두 대뿐이라고 했는데 사장님의 말씀 대로 7월달부터 출하가 되었다면 제 남편과 시동생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그 서류들을 시동생에게 있다고 미루었고, 시동생은 그분께 있다고 미루었다. 출하된 양이 몇 대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당일당일 짝궁에게 결산 보고는 되었을 것이고..... 무슨 이유인지 짝궁은 나에게 아직도 두 대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에는 시동생이 혼자하니까 결산보고 끝나고 농민들 장기금 보내주고나면 항상 상당한 액수가 차질이 생겼다. 수수료라도 남아야 먹고살고 나눌 것이 있는데 항상 부족하여서 꼭 땅파서 농사꾼 장사만 해 주는 것 같은 허망함이란! 서류란 당일을 제외한 어느 때든지 펼쳐 볼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시동생은 단 한 번도 그 서류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러니 농민의 장기금 송달 후의 결산은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외상 수금해서 이것이 다요 하고 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마는 짝궁이었다. 얼마가 덜 수금이 되었는지 얼마가 남았는지 얼마가 부족한지도 모르는 세월을 믿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겨우 이제야 두 해! 나의 결제하에 영업이 이루어졌고, 그런데 올 봄에 셋째 시동생이 늙으신 어머니의 등골을 처 먹는 불상사를 격으며 짝궁에게 그만 얽혀 살자고 나는 애원을 하고 목을 맸었다. 시동생의 말은 이렇다.

<나는 최선을 다 해서 다 주었다. 형이 돈을 뗀 것은 업자들이었는데 나에게 왜 그 덤탱이를 쒸우느냐?>

 

이 말은 법적으로 하면 형사처벌감이다. 사업을 하다가 투자를 잘 못하여 돈을 떼이고 실패를 했다고 해서 영업상의 서류정리를 안해도 된다는 말은 세상천지에서 우리 시동생만 하는 소리다. 서류정리를 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받아야 하는 지탄에 대하여 덤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시동생 뿐일 것이다. 말하자면 짝궁의 가게에서 시동생은 실무자다. 짝궁은 사장이라서 영업상의 이유로 늘 출타 중이고, 그 가게의 실무자는 시동생이다. 짝궁이 영업상의 손실을 가져왔다고 해서 가게의 모든 영업의 최종 서류를 아예 배추장사 문서 쪼가리 한 장도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형사적 책임이 따른다. 어느 기업의 사원이 이따위 발설을 한다면 당장 해고에 쇠고랑을 차야한다. 그러나 동생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감당이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농민에게 출하금을 다 지불하고 외상을 맡았을 때, 그것이 최종의 이익금으로 남았다고 하자. 그것이 얼마인지를 짝궁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시동생은 다 내어 놓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아무리 시동생이 자기주장을 하여도 모순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종이 조각 하나 없이 시동생의 머리속이 장부정리라고 믿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 시간까지 시동생들의 인건비를 비롯하여 단 돈 일원도 피해를 주거나 불확실한 처사를 행한 적이 없다. 오히려 벌이가 솔찬할 적에는 빚을 못 갚아내는 한이 있어도 시동생들에게 나누어 줄 때는 하늘을 우러러 결코 인색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나다.

 

어찌되었든지 이제라도 지난 2년동안 시동생은 나에게 서류정리하는 법과 결산 보는 법을 훈련했고, 매일 나에게 와서 결재를 받았다. 그렇다면 올해는 나의 개입이 없이 셋이 동업하여 수수료를 나누기로 했다면 형의 물건을 형수가 결재할 때보다 더 정확해야만 한다. 판매의 결과는 당일당일 짝궁에게 보고 되었을 것이므로 짝궁은 그것들을 적어두었을 것이고, 거기까지는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판매를 담당한 두 사람이 나머지 최후의 나눔을 위해서라도 신뢰를 보장해야만 한다. 그 신뢰는 정확한 서류정리이며, 전에 시동생처럼 <다 팔았소, 다 주었소> 라고 말로 끝나서는 동업일 수가 없는 것이다.

 

수수료에서 식대라든지 소소한 지출들을 제외한 나머지 돈으로 셋이서 똑 같이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똑같이 나누기 위해서는 속임이 없어야 하고. 그런데 그들은 나에게 아직도 소식이 없다. 짝궁의 가게에서 짝궁의 물건을 파는 일이지만 나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수수료를 셋이 나누는 이 제안에 대하여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시동생도 배운거 없이 형 품에서 벗어나면 그 나이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분이 있어서 형 것이라고 제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던 시동생의 나태함도 방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짝궁의 가게에 운영실적이 가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셋이서 짜고 나에게 서류를 넘겨주지 않는다면 나는 수수료도 연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의도적인 심보라고 단정지을 것이다. 거기에는 서로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어떠한 보장도 없다. 짝궁은 산에 있으니 모를 것이고, 둘이서 정확하지 않다면 나는 더 이상 이런 무모한 관계를 유지시키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짝궁의 가게를 두고 짝궁의 수수료를 남에게 포기 할 때는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다. 그들은 이번 일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셋을 각각 대하여 확인하는 나의 유도심문에 말려들었다고 표현했다. 그것이 왜 유도심문인가? 당연한 진실을 숨기려다가 당연하게 드러난 것이지, 아직도 그들은 제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소식을 하루 종일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다. 만약에 서류를 나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면 그 분 보다도 나는 시동생에게 더 큰 감정을 또 쌓게 될 것이다. 전에는 <몰라서 못한다고, 지나서 못한다고, 형하고 짬봉되서 못한다고....> 벼라별 핑게를 다 대며 서류정리를 기어이 하지 않고 버텨온 시동생이었지만 지난 2년동안 매일 나에게 와서 철저하게 서류정리를 해 온 시동생이 남과 동업을 하는 상황에서도 또 다시 그런 핑계를 동원한다면 결과와 관계 없이 고의적인 의도라고 간주할 것이다. 시동생의 주특기가 <다 팔았소. 다 주었소.> 이다. 그리고 그 흔한 종이 쪼가리 한 장 없이 끝이다. 그래도 짝궁하고 살아서 기다려왔었으므로 오늘도 나는 기다리고 있다.

 

묵상방 가족들 중에 간혹은 나에게 매우 불만스러운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안다. 가정사를 거론하는데 거의 시댁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밝혀두지만 19년 세월동안 나는 변하지 않은 마음이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 내가 시댁 식구들을 밀어낸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으시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시동생들이 과분한 짓을 삼가해 준다면 오늘도 기꺼히 수용할 의사가 분명한 사람이다. 둘째는 서류를 분명히만 해 준다는 믿음이 있으면 되고, 셋째는 거짓말을 그만하고, 무리한 금전을 요구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동생들은 자기들도 배운거 없고, 가진거 없으면서, 생산라인의 절대 주자인 형의 형편과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로 무례하다.

 

그러니 실패의 연속인데다 척박한 인생까지 겹쳐 사는 형의 등에 멍애를 쒸우다 못해 올가미까지 감아버리는! 올해는 셋째를 그만두게 하고 일을 하여보니 이렇게 조용하고 좋다. 그 대신 그 삯은 남의 몫이 되었다. 둘째마져 그만두게 하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물론 영업의 수수료는 상당한 액수이지만 그것조차 포기하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세상의 모든 생산자가 자기 물건을 자기가 팔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가 꼭 팔아야한다는 법은 없다. 올해 셋째를 대신하여 남을 고용하여 보니 우선 심리적으로 너무나 고요하다. 우리가 그 가족들까지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도 그만두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짝궁은 나에게 그 약속을 어겼다. 나는 두 대가 되었든 몇 대가 되었든 서류만 분명하다면 셋이서 동업하는 판매는 허용할 참이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날 그날 시장의 시세는 빤히 드러나는 것이고, 차 댓수 맞춰서 계산 해 오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년도 흠없이 동업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판매라는 노른자 위에서 그들의 양심이 산에 있는 짝궁의 믿음만큼 버금갈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내가 전화했을 때 시동생은 곧장 서류를 가지고 와서 열심히 하겠다는 한마디면 되었다. 그러나 그걸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욕설을 퍼 붓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이래도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지금도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더욱 욕심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시동생의 양심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빚이 갚아지고 나면 모든 이익금 조차도 고루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다. 실제로 나는 좀 더 벌어들인 해에는 빚을 갚지 못했어도 목돈을 챙겨 주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동생은 나에게 서류를 넘겨 줄 것이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수수료뿐만 아니라 일원 한 장도 시동생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수수료는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다. 가게의 사장이 영업허가를 내어 상품을 팔아주고 그 댓가로 얻는 수입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에서 복비를 받아 종업원과 똑같이 나누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수입으로 인건비도 주고, 세금도 내고, 먹고도 사는 것이다. 내가 시동생에게 의무적으로 주어야 하는 몫은 인건비 뿐이지 동업자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시동생은 형의 사업에 자본을 투자하는 사람도 아니요, 그렇다고 생산자를 섭외하여 가게에 이익이 되는 일은 더욱 해본적도 없으며, 단 돈 1원이라도 형의 빚을 대신 져 주는 일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할 사람이 아니다. 오로지 형의 흥망과 관계없이 (아니 어쩌면 흥하면 태도가 달라지고 망하면 절대로 같이 짐을 질 수 없는) 인건비만 받고자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영업 수수료를 나눈다는 것은 감히 넘 볼 수도 넘 보아서도 안되는 위치의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빚을 못 갚아도 가을이면 인건비 이외의 대접을 분명하게 해 왔다. 그러나 시동생은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단 한 번도 정확한 의무를 이행한 적이 없다. 시동생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짝궁을 어떻게 움직여서 올해는 수수료를 동업하기에 이르렀는지 나는 모른다.

 

끝으로 쓰지 말아야 할 말을 한마디만 쓰고 싶다.

<만약에 그들이 짝궁에게 조차 외상장부를 보여줄 수 없다면, 짝궁의 가게에서, 짝궁의 물건을 팔고, 짝궁의 수수료를 나누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을 쳐 보겠다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늘은 공연한 꿈을 나에게 꾸라하시진 않았던 것이다. 가을까지 모르고 있다가 올해의 소출이 다 끝난 후에 그냥 입으로 또 <다 팔았소. 다 주었소.> 라고 한다면 그 상황을 어찌 감당할 뻔 했는가?! 주님께서도 이제는 그 엄청난 소용돌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게지! 동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열쇠는 그들에게 달려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인내심을 가지고 짝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참! 시동생의 변론 하나 더! <자기는 최선을 다 해서 형의 일을 도왔다.> 인정한다. 혈육이니 욕심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나 그 나이, 그 학벌, 그 기술, 그 능력, 그 형편, 등등을 다 동원하여 형의 가게를 책임지는 일 보다 더 보수가 많고, 더 당당하며, 더 수월한 일이 있었다면 과연 형이라는 울타리에 머물러 안주하고 있었을 것인가?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해 보았기 때문에 묻는 말이다. 이 형수는 그런 가족사 조차도 수용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였다는 결론에 이르고야 말았다. 정말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위치를 냉정한 시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시동생들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며, 그들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온 모습처럼 맹목적인 수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의절을 택하고야 말은 것이다.  

 

역시 사람의 인생은 백지 한 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모두가 이웃 사촌 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글의 내용에 따라서 나타나는 반응들은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묵상글이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또는 각자의 경험과 입장에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아~! 피곤하다. 

 

ㅡ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이시니 너는 복이 있다. 마태오16,17ㅡ 

 

<꼬리글은 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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